'꽃 내던지고 자르고 갈아엎는 농심'…화훼 농민들 뿔났다

SECA 체결로 수입 꽃 넘쳐…국산 화훼농가들 "이러다 망한다"
화훼산업진흥법 개정안 통과 촉구…국회·농림부 항의 시위하기로

(김해=연합뉴스) 최병길 기자 = "자식처럼 곱게 키운 꽃을 바닥에 내던지고 작두로 자르고 갈아엎어야 하는 절박한 상황을 알려주세요."

11일 경남 김해시 대동면 초정리 한 화훼농가 시설하우스에서 머리띠를 맨 한 농민이 밭을 갈기 위한 관리기(로터리)로 정성껏 돌봐 키운 꽃을 갈아엎었다.

성난 농민들은 애지중지 키운 꽃을 흙바닥에 내 던지고 작두로 싹둑 싹둑 잘랐다.

현장에는 형형색색 화려하고 향기를 내뿜어야 할 장미, 거베라, 국화가 내버려지고 잘려 흙바닥에 파묻혔다.

부산경남화훼생산자 연합회 등 전국에서 온 화훼농가 대표들은 한국과 에콰도르 전략적경제협력협정(SECA) 체결 등으로 꽃이 무분별하게 수입돼 국산 화훼농가들이 고사 위기를 맞았다며 분노했다.

이날 화훼 농사일을 접고 머리띠를 묶고 모인 농민들은 약 80여명.

부산경남생산자 연합회 공동대표 오완석 김해화훼작목회장은 "기름값, 전기세, 인건비 등을 합쳐 힘들게 국산 꽃을 키워 내놔도 무분별한 수입 꽃의 가격 경쟁력에 밀려 사실상 화훼농가들은 숨을 쉬기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오 회장은 "카네이션 농가는 과도한 수입 증가로 사실상 폐농 수준이며 국화도 10년 전에 비해 60배가 넘는 수입 증가로 다들 전업을 준비하고 있을 정도"라고 털어놨다.

화훼 폐기 시위에 함께 한 정수영 경기도장미연구연합회장은 "이번에 정부가 에콰도르와 SECA를 체결했는데 해당 국가의 중저가 장미가 대량으로 쏟아져 들어오면 국산 장미는 이제 설 자리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에콰도르 장미는 한 단에 3천∼4천원인데 국산 장미는 한 단에 생산 원가만 7천∼8천원"이라며 "정부의 무분별한 꽃 수입은 사실상 국내 화훼농가를 말살하는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한 여성 농민은 "한겨울 어떻게 키운 꽃들인데 이렇게 잘려져 흙바닥에 뒹구는 모습을 지켜보니 눈물이 난다"며 안타까워했다.

농민들은 정부와 국회가 국내 화훼농가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원산지 표시 의무 등을 담은 화훼산업진흥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를 요구했다.

또 SECA 국회 비준에 반대하는 화훼 폐기 시위에 이어 오는 22일에는 국회 항의 방문, 26일에는 농림축산식품부를 항의 방문해 시위를 벌이기로 했다.

choi21@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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