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웹툰 등 스토리 IP, 게임에서만 유독 힘 못쓰는 이유는
최근 다양한 스토리 IP가 게임으로 영역을 넓히는 가운데 인기 스토리 IP 기반 게임의 성과가 부진한 경향을 보인다. 문제는 인기 스토리 IP 기반 게임 중 장기 흥행 성과를 올리는 게임이 사실상 없다는 점이다. 인기 스토리 IP 기반 게임 부진 원인을 살펴봤다.
10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부터 웹툰 ‘나 혼자만 레벨업’, 드라마 ‘아스달 연대기: 아라문의 검’ 등 인기 스토리 IP 기반 게임이 출시된다. 이처럼 인기 스토리 IP를 게임으로 확장한 사례는 많다.
실제 국내 초창기 온라인 게임은 대부분 만화가 원작이다. 엔씨소프트의 ‘리니지’는 신일숙 한국만화가협회 회장의 만화 ‘리니지’가 원작이다. 넥슨 ‘바람의 나라’, 그라비티 ‘라그나로크’도 동명의 원작 만화가 존재한다.
하지만 최근 출시된 웹툰 ‘고수’, ‘여신강림’ 등 다양한 스토리 IP 기반 게임은 앱 마켓 인기순위와 최고 매출 순위에 이름을 ‘잠깐’ 올리는데 그친다. 1월 10일 기준 구글플레이 최고매출순위 50위권 안에 인기 스토리 IP를 기반으로 한 게임은 한 건도 없다.
넷마블 ‘신의 탑: 새로운 세계(원작 웹툰 신의 탑)’가 54위, 그라비티 ‘라그나로크X(원작 만화 라그나로크)’가 83위, 엑스엘게임즈 ‘달빛조각사: 다크 게이머(원작 웹소설 달빛조각사)’가 99위다.
패키지 게임은 되고 라이브 게임은 힘들다
반면 PC·콘솔용 패키지 게임으로 IP를 확장한 사례는 최근에도 준수한 성적을 거두고 있다. 소니인터랙티브엔터테인먼트(SIE)의 ‘마블 스파이더맨(Marvel’s Spider-Man)’은 SIE가 플레이스테이션5(PS5) 성능을 알리기 위해 출시작으로 낙점한 게임이다. 마블 스파이더맨은 2018년 플레이스테이션 독점작 최고 판매 기록을 경신했다. 게임인포머 등 외신에 따르면 마블 스파이더맨2는 지난해 10월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게임에 이름을 올렸다.
같은 IP로 게임을 만들어도 패키지 게임은 성공하지만 모바일게임은 부진한 사례도 있다. 소설 ‘해리포터’ 시리즈 세계관을 기반으로 하는 ‘호그와트 레거시’는 지난해에만 글로벌에서 2200만장이 팔린 패키지 게임이다. 하지만 중국 넷이즈에서 만든 ‘해리포터: 깨어난 마법’ 등의 모바일게임은 최고매출순위 100위권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업계와 전문가들은 이를 결말(엔딩) 없이 계속 서비스해야 하는 라이브 게임 특성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게임이 아닌 인기 스토리 IP는 대부분 완결됐거나 하나의 결말을 향해 나아간다. 스파이더맨을 좋아하는 이는 스파이더맨이 어떻게 슈퍼히어로가 됐는지, 스파이더맨이 어떤 빌런들과 싸웠는지, 주변인물은 누가 있는지 안다. 해리포터가 마법학교 ‘호그와트’에 다니며 누구와 친하게 지냈는지, 어떤 이에게 수업을 들었는지 아는 식이다.
원작 IP 사용료와 BM 문제
문제는 이런 IP를 게임으로 만들 때 발생한다. 등장인물은 한정돼 있고 이야기의 결말도 정해져 있다. 라이브 서비스 게임은 패키지 게임과 달리 꾸준한 업데이트가 필요한데 추가할 신규 캐릭터나 신규 스토리를 추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게임 전용 오리지널 스토리는 이야기의 큰 줄기에 영향을 주지 않는 ‘서브 퀘스트’거나 본편 이전의 에피소드를 다룬 ‘프리퀄’ 또는 본편 이후를 다룬 ‘시퀄’일 수밖에 없는 셈이다. 이로 인해 신규 캐릭터도 추가하기 어렵다. 이는 게임사가 매출을 올릴 수익구조(BM)를 만들기 어렵게 한다.
BM 구축이 어려우면 게임 운영 및 유지가 힘들어진다. 원작이 존재한다는 건 원작 팬덤 유입을 기대할 수 있지만 IP 사용료를 내야 한다는 의미다. 거기다 모바일게임은 구글·애플에 앱 마켓 수수료도 내야 한다. 이런 수수료는 순이익의 일정량이 아닌 매출의 일정량을 줌으로 게임사의 손실이 클 수밖에 없다.
게다가 게임을 유료로 판매하는 패키지게임과 달리 모바일게임은 부분유료화(Free to Play)가 많다. 그렇다고 이용자 과금을 최대한 유도하는 BM을 구성하면 이용자에게 외면받는다. 이용자들은 이미 십수년 이상 확률형 아이템으로 인한 과금 피로도가 높다고 호소해 왔다. 인기 IP 기반 게임은 지속가능성이 떨어지는 셈이다.
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닌텐도, 소니, 스퀘어에닉스 같은 게임사의 경쟁력이 강력한 이유는 자체 IP를 가지고 있어서다”라며 “욕심 있는 게임사가 자체 IP까지 보유하고 있으면 IP 사용료로 나갈 돈을 게임 품질 고도화에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체험형 콘텐츠 ‘게임’의 특성도 영향
게임이 다른 문화예술 콘텐츠와 달리 체험형 콘텐츠라는 점도 인기 스토리 IP 기반 게임 부진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분석된다. 웹툰·만화·소설·영상 등은 보는 콘텐츠다. 그림이 영상이 되고 글이 그림이 되면서 독자의 상상이 시각화되는 셈이다.
반면 게임은 하는 콘텐츠다. 직접 작품 속 주인공이 돼 그 세계관을 탐험하고 모험한다. 여기서 문제는 주인공이 매번 모든 상황을 전투로 해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스토리 IP 기반 게임은 원작 캐릭터 디자인과 용어 정도만 차용한 퍼즐게임 같은 캐주얼 장르거나 롤플레잉게임(RPG)이 대부분이다. 주인공 역할을 이용자가 연기한다는 점에서 RPG류가 특히 많다.
이런 RPG를 결말이 존재하는 패키지 게임으로 만들면 프리퀄이든 시퀄이든 원작 스토리를 그대로 구현했든 상관없이 세계관을 탐험하는 느낌을 줄 수 있다. 하지만 모바일게임 같은 라이브 게임으로 만들면 이미 봤던 이야기, 한정된 등장인물의 등장 반복에 그친다. 그나마도 수집형 RPG라면 기존 등장인물이 여름엔 수영복을 입은 버전, 겨울에는 산타복을 입은 버전 등 색깔놀이 버전이 ‘시즈널 한정판 캐릭터’로 출시되는 정도다.
다른 게임업계 관계자는 “주인공 일행이 n명이라 제목에 그 숫자가 들어가는데 게임으로 만들면서 주인공 일행을 늘릴 수 없지 않겠냐”며 “그나마 그래픽, 액션 등 게임성으로 원작을 모르는 게임 팬덤을 잡아둘 수 있겠지만 봤던 스토리에 봤던 캐릭터가 반복되면 원작 팬덤은 물론이고 게임 팬덤도 지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영진 청강문화산업대학교 게임콘텐츠스쿨 교수는 “게임사가 게이머의 높아진 눈높이를 맞추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보인다”며 “앱 마켓이나 OTT 대중화로 다양한 글로벌 콘텐츠 접근이 손쉬워진 현실에 기존 IP의 두터운 팬덤에 관한 다면적·입체적 분석을 바탕으로 한 게임기획이 다소 부족한 점이 더해져 게임사가 기대한 반응이 나오지 않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게임업계가 국내외 게이머들의 변화하는 요구사항이 무엇인지, 해당 IP가 상호작용이 가능한 게임 콘텐츠와 만나 갖게 되는 매력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IT조선 변인호 기자 jubar@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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