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빵언니 인기 끈 이유 있었네…‘여자가 대세’ MZ들 열광하는 우먼 스포츠 [올어바웃스포츠]
1991년 초대 여자월드컵 챔피언인 전 미국 여자축구 국가대표 줄리 푸디는 월드컵 우승 이후의 겪었던 일화를 이처럼 묘사했습니다. 우승을 차지하고 뉴욕 공항에 도착했을 때 대표팀을 환영한 사람은 운전기사를 포함, 단 세 명뿐이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이 대회는 월드컵으로 불리지도 못했습니다. 공식 명칭은 ‘엠앤엠스컵을 위한 세계 여자축구선수권 대회’였습니다. 엠앤엠스는 유일한 대회 후원기업인 식품기업 마즈가 만든 초콜릿 캔디 이름입니다. 당시 국제축구연맹(FIFA)이 여자 축구가 월드컵이란 초대형 브랜드와 연관되는 것을 마땅찮아 했기 때문이죠.
그러나 20여 년 후 상황은 180도 뒤바뀝니다. 지난해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열린 여자월드컵은 사상 최대의 흥행성적을 기록합니다. 개최국 호주와 잉글랜드의 4강전을 시청한 호주인은 713만2000명이었습니다. 경기장을 찾은 관중은 197만명으로 이전 기록(2015년 캐나다월드컵·135만명)을 아득히 추월했습니다. 수익도 5억7000만달러(약 7500억원)로 치솟아 예측치를 뛰어넘였죠. 대회 성공에 고무된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는 축구 등 여성스포츠에 약 1700억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우먼파워’를 실감할 수 있는 곳은 축구뿐 아닙니다. 여자스포츠는 매년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눈치 빠른 기업과 투자자들이 기민하게 이 시장을 공략하는 것은 물론입니다. 스포츠세계에선 조연에 불과했던 여성이 메인 무대를 노리고 있는 현실과 배경을 알아봤습니다.
특히 북미에서 여자스포츠에 대한 관심은 고삐가 풀린 듯 폭발적으로 증가중입니다. 미디어 리서치센터 닐슨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대학체육협회(NCAA) 여자농구 토너먼트 결승전의 시청자수는 전년대비 약 103% 늘어난 1000만명에 달했습니다. 미국 여자프로농구(WNBA) 드래프트 시청자수 역시 2022년보다 42%나 늘어났고, 여성 시청자는 89% 증가했습니다.
구단가치가 커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엔젤시티FC는 2020년 전미여자축구리그(NWSL)에 참여하기 위해 200만달러의 수수료를 지급했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4월, 한 사모펀드가 주축인 컨소시엄은 샌프란시스코에 NWSL 팀을 유치하기 위해 5300만달러의 유치비용을 약속한 바 있습니다. 3년만에 여자축구팀의 가치가 10배 넘게 증가한 것입니다. 지난해 2월엔 WNBA 소속 시애틀 스톰은 구단의 지분 14%를 1억5100만달러에 매각했는데 이는 직전 WNBA 매각 기록보다 10배 이상 높은 금액입니다.
영국 여자축구의 인기 상승세도 심상치 않습니다. 2017년 여자 유럽축구선수권대회(우먼유로 2017)의 영국내 시청자수는 1170만명이었지만, 2019년 여자월드컵은 6860만명이 지켜봤습니다. 지난해 열린 우먼유로 2022 역시 5790만명의 시청자를 끌어들였습니다. 시청율 상승은 주로 35세 이상 여성이 주도했지만 젊은 세대의 남성 시청자의 증가도 눈에 띄었습니다.
여성스포츠의 광고 효과가 좋다는 점도 광고주들의 귀를 솔깃하게 하는 부분입니다. 닐슨에 따르면, WNBA 팬들이 스폰서십을 제공하고 있는 브랜드 웹사이트에 방문한 비율이 44%로, NBA팬의 방문율(36%)보다 유의미하게 높았습니다. 해당 브랜드에서 제품을 구매했다는 답변 비율 역시 NBA팬보다 4%포인트 높은 28%였습니다. 또 여자월드컵 팬의 69%는 스포츠 스폰서십에 참여할 때 브랜드가 더 매력적이라고 생각해, 일반인보다 15%포인트 높은 수준이었습니다.
스포츠이노베이션랩은 팬들의 스포츠 스트리밍서비스 구독, 상품 구매 등을 수치화한 ‘커뮤니티성장점수’를 매년 발표하는데 이 분야에서 여성스포츠팬은 2022년 일반 스포츠팬보다 높은 수준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딜로이트 스포츠 비즈니스 그룹 리더인 제니퍼 헤스켈은 “지난 몇 년 동안 우리는 전 세계적으론 여성 스포츠의 놀라운 성장과 상업적 가치 향상을 봤다”며 “투자자들의 관심도 증가하며, 여성 스포츠는 남성 스포츠와 구별되는 독특한 제품으로 인식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미국 아이오와 대학의 가드인 클라크는 미국 여자 대학농구 역사상 가장 뛰어난 공격수라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화끈한 공격력으로 40점 이상을 동반한 두번의 트리플더블(득점·리바운드·어시스트·스틸·블락중 세 분야에서 두자리수 이상 기록)을 달성하기도 했고, 지난해 2월 이후엔 한 경기 득점이 20점 이하로 묶여본적 없는 폭발적인 슈터입니다. 화끈한 셀레브레이션과 거침없는 제스처, 입담까지 스타가 지녀야 할 모든 덕목을 갖추고 있기도 합니다. 덕분에 아이오와대 여자농구팀의 지난 시즌 티켓은 모두 매진됐으며, 클락크가 출전하는 원정경기도 더 많은 관중이 찾아왔습니다.
기세를 탄 클라크는 뻬어난 활약으로 지난해 NCAA 여자농구 결승전까지 도달했지만, 왕좌를 차지한 것은 상대팀인 루이지애나주립대학(LSU)였습니다. 클락크의 꽃길을 방해한 것은 LSU의 또다른 스타포워드 엔젤 리스였습니다. 리스는 승패가 사실상 결정된 경기 막판 클라크에게 다가가 ‘You can’t see me(넌 내수준이 아냐)’ 셀레브레이션을 하며 자신의 손가락에 우승 반지를 가리키는 제스처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이 광란의 경기는 최고 시청자수가 1260만명에 달할 정도로 흥행 초대박을 터뜨렸습니다.미국 경제전문매체 포브스는 2024년 주목할만한 30세 이하 스포츠스타 30명에 리스를 포함한 18명의 여성을 포함시켰습니다. 역대 가장 높은 여성비율이지요.
또 미국 여성 스포츠팬은 스트리밍 플랫폼에 지출할 가능성이 남성보다 20% 더 높으며, 2022년 기준 여성 스포츠팬이 53%가 경기장 방문을 위해 티켓을 구매하면서 남성팬(38%)을 뛰어넘기도 했습니다.
여자스포츠 스타들가 소셜미디어를 적극 활용하는 것도 팬들을 유입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미국 여자스포츠 종사자들과 협회는 소셜미디어를 팬들과의 소통 창구로 적극 활용했고, 이것이 쌍방향 소통에 익숙한 젊은 세대들에게 먹혀든 것입니다.
2021년 3월 오리건대학의 농구선수 세도나 프린스는 여자농구부의 열악한 훈련실 상태를 보여주는 짧은 영상을 틱톡에 올립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여자부와 남자부가 격리된채 훈련이 이뤄졌는데, 완벽한 시설이 갖춰진 남자부에 비해 여자농구선수들에게 주어진 것은 덤벨 단 12개뿐이었기 때문이죠. 이 틱톡 영상은 1230만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그날 밤 한 스포츠업체가 무료로 훈련장비와 시설을 제공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
여자프로리그와 구단 역시 소셜미디어 활용에 진심입니다. 2022년 6월 미국 대법원이 여성 낙태권을 폐지하는 판결에 대해 WNBA를 비롯 수십개의 여성 스포츠리그, 팀과 여성 운동선수들이 자신의 SNS에 이 판결에 대한 반대 의사를 표시했고, 이는 북미 4대 남성 스포츠리그(NBA, NFL, MLB, NHL)의 침묵과는 대비되는 모양새였습니다.
남녀 우승상금 차이에 대한 논란을 촉발했던 테니스에서도 상황을 비슷했습니다. 2018년 테니스 4대 메이저대회중 2개 대회(US오픈, 윔블던)에서 여자단식 결승전의 시청자수는 남자단식 결승전보다 높았습니다. 그러나 80개 이상의 언어로 작성된 25만개의 뉴스 기사를 분석한 결과 여자 메이저대회 이벤트 보도는 남자보다 41%나 적었습니다. 여자스포츠가 인기에 비례한만큼 주목도가 떨어진다는 선입견과는 다르게, 몇몇 사례에선 명백히 기존 매체의 취재·보도 관성이 성장을 가로막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연구입니다.
다만 최근 들어서는 변화가 생기고 있습니다. 미국 스포츠마케팅업체 와서맨은 2022년 방송과 스트리밍·소셜미디어 및 디지털 출판물 등 미국 스포츠 미디어 보도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15%에 달한다는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이는 2019년 미국 ESPN 스포츠센터의 평균 보도율(5.7%)의 3배에 달하는 수준입니다. 특히 스트리밍 분야에서 여자스포츠의 성장이 두드러졌는데, 2022년 여자 대학과 프로스포츠 관련 스트리밍시간은 2만2065시간으로 직전년의 5124시간보다 4배 가량 늘었습니다.
이제는 초대 여자월드컵을 ’엠앤엠스컵‘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선수들이 정당한 경쟁을 통해 얻은 승리는 성별이 무엇이냐에 관계없이 기려야 할만한 성취라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없습니다. 여성 스포츠를 바라보는 시선에 필터가 한꺼풀 더 씌워져 있는지, 저부터 되돌아봐야겠습니다.
≪[올어바웃스포츠]는 경기 분석을 제외한 스포츠의 모든 것을 다룹니다. 스포츠가 건강증진을 위한 도구에서 누구나 즐기는 유흥으로 탈바꿈하게 된 역사와 경기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문화, 수백억원의 몸값과 수천억원의 광고비가 만들어내는 산업에 자리잡은 흥미로운 내러티브를 알게 된다면, 당신이 보는 그 경기의 해상도가 달라집니다≫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하루 6억원 번다”…슈퍼카 24대에 강남에 빌딩까지, 성공한 사업가 ‘정체’ - 매일경제
- 1주일에 1억 썼다고?…1만명 매일 밤 파티 여는 ‘이곳’ 어디 - 매일경제
- ‘반값 우유’ 나왔다…1L에 2100원 우유 파는 곳 어딘가 보니 - 매일경제
- “소시지빵·약과 100개씩 쟁여놔야 안심”…미국 빵부심 눌러버린 K베이커리 - 매일경제
- ‘삼성 S24 울트라’ 50번 떨어트려봤더니…“고릴라, 이 정도였어” - 매일경제
- 신종피싱 ‘통장인질극’…“1시간 안에 풀어드린다”는 이 은행 어디? - 매일경제
- 오늘의 운세 2024년 1월 22일 月(음력 12월 12일) - 매일경제
- 2년새 중산층 1억명 넘게 사라졌다는 이 나라…“경제 다 무너진다” - 매일경제
- 대형마트 공휴일 의무휴업 없앤다…단통법 전면 폐지 - 매일경제
- 우리가 아는 ‘월드컵 영웅’ 조규성 어디 갔나…바레인·요르단전서 연신 ‘홈런’만 날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