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인 유골서 자가 면역질환·당뇨 치료 단서 찾을까

문세영 기자 2024. 1. 11.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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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코펜하겐대

수천 년 전 살았던 조상의 해골 DNA에서 다발성 경화증 등 여러 질환에 대한 단서가 발견됐다.  당시엔 생존을 도왔던 유전자 돌연변이가 오늘날에는 질환을 일으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에스케 윌러슬레브 덴마크 코펜하겐대 동물학과 교수 연구팀은 10일(현지시간)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다발성 경화증과 고대인의 유전 및 건강에 관한 논문 3편을 발표했다. 

자가면역질환인 다발성 경화증은 ‘엡스타인-바’라는 바이러스가 원인으로 추정된다. 이 바이러스에 의해 면역체계가 신체 조직과 세포를 공격하고 시력을 잃거나 말하거나 걷는 데 장애가 생기는 등의 증상을 일으키는 것으로 보인다. 

아직 다발성 경화증 발병 원인은 불분명하다. 연구팀이 5000년 전 서아시아 평야 지대를 가로지르며 소몰이를 했던 유목민 부족의 해골 DNA에서 다발성 경화증에 대한 단서를 발견했다. 

● 5000년 전 살았던 유목민 ‘얌나야족’ 이동 경로 확인 

연구팀은 10년 이상 고대인의 뼈에서 DNA를 추출해왔다. 고대인 유골에 남은 유전물질을 현대인의 유전물질과 비교해 고대에서 현대로 이어지는 이주 경로를 추적하고 있다. 가령 현재 터키에서 농부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8000년 전 유럽을 가로지르며 이주한 경로가 연대순으로 확인된다. 이들의 이동 경로에서 초기 수렵·채집인의 DNA가 사라진 점이 확인되면서 폭력적 갈등이 발생했음을 암시하는 흔적이 확인됐다. 

유럽에서 발견된 5000년 전 해골의 DNA에서는 우크라이나에서 카자흐스탄으로 이어지는 평야 지대에 살았던 유목민 얌나야족의 유전적 특징이 확인된다. 얌나야족은 말을 타고 소, 염소, 양을 몰며 생활했고 죽은 사람을 매장할 때 금과 보석을 함께 묻을 정도로 수 세기 동안 번성했다. 청동기 시대에 이들은 영토를 확장해 유럽에서 아시아 지역으로 이동했다. 그들의 이동 경로에서 마주쳤던 농부들이 전멸된 흔적이 발견된다. 

오늘날 북유럽인 조상 대부분은 얌나야족으로 추정되며 남쪽으로 갈수록 초기 수렵·채집인의 유전자가 많이 남아있다. 

● 얌나야족 ‘다발성 경화증’ 위험 높이는 변이 보유...당시 이점으로 작용

연구팀은 고대인이 어떤 유전적 변이를 가졌는지, 건강 상태는 어땠는지 확인하기 위한 연구도 진행했다. 영국 바이오뱅크에서 43만3395명의 DNA 정보를 수집하고 유전자 변이와 질병 위험 사이의 연관성을 분석한 뒤 고대인 해골에서 추출한 유전자와 비교했다. 

그 결과 서유럽 수렵·채집인들은 고콜레스테롤, 고혈압, 당뇨병 위험을 높이는 변이들을 갖고 있었다는 점이 확인됐다. 고대 동유럽 농부들은 불안증 등 기분장애 관련 변이를 가지고 있었다.

단 이러한 변이가 오늘날 질환의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는 의미는 아니다. 가령 당뇨병은 오히려 오늘날 더 흔해지고 있다. 식단과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얌나야족에서는 다발성 경화증 위험을 높이는 변이가 확인됐다. 당시 이 변이는 오히려 얌나야족의 생존을 도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변이가 있던 얌나야인은 그렇지 않은 얌나야인보다 자손이 많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얌나야족의 DNA에는 페스트 등 질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와 박테리아의 DNA가 포함돼 있었다. 당시 얌나야족은 목축업을 하며 고기와 우유에 의존하는 생활을 했는데 가축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감염병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한 유전자 돌연변이가 일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돌연변이가 오늘날에는 다발성 경화증 발병 위험을 높이고 있다. 현대로 오면서 위생적인 환경이 갖춰지면서 감염병 발생 위험이 크게 줄어들었다. 얌나야족 후손들은 감염병에 대항하기 위한 민감한 면역체계를 갖고 있다. 오늘날에는 자가면역질환이 발생하기 쉬운 상태가 되는 데 이같은 면역체계가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는 추정이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는 다발성 경화증의 뿌리를 이해하고 더 나은 치료법을 찾는 데 통찰력을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팀은 3000~1만1000년 전 포르투갈과 시베리아 사이, 노르웨이와 이란 사이에 거주했던 사람들의 유전체도 분석하고 있다. 이는 다발성 경화증뿐 아니라 당뇨병, 조현병 등 현대인이 앓고 있는 질환의 유전적 뿌리를 추정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문세영 기자 moon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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