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PF 국산화’ 주역, ‘요리매연 필터’로 세계 사로잡다

박상현 기자 2024. 1. 11.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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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기업 독점하던 DPF 기술
8년 만에 국산화 성공시킨 한대곤 대표
DPF 응용해 세계 최초 요리매연 필터 제작
“모방·수입에 의존하던 환경기술, 이젠 수출할 때”
9일(현지시각) 미국 라스베가스에서 열린 'CES 2024'에서 인간 안보(human security) 부문 혁신상을 받은 칸필터 한대곤 대표가 상패를 들고 있다. /박상현 기자

9일(현지시각) 개막한 ‘CES 2024′에서 세계 최초로 DPF(디젤차 미세먼지 필터) 기술을 응용한 요리 매연(cooking emission) 필터를 개발해 혁신상을 받은 한대곤(58) 칸필터 대표는 업계에서 ‘숨(breath) 엔지니어’로 불린다. 그의 족적이 늘 인간의 숨쉬는 문제가 결부돼 있기 때문이다. “환경오염이 계속 되면 인간의 기본 생존 행위인 ‘숨쉬기’가 결국 위협받을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의 첫 번째 ‘숨 엔지니어링’은 LG화학 연구원 시절이었다. “디젤차가 뿜어내는 매연은 우리 국민의 호흡 건강이 걸린 문제인데 이를 해결할 DPF는 전량 해외 수입에 의존해야 한다는 현실이 서글펐다”고 했다. 그는 2002년부터 8년간 DPF 핵심 소재인 세라믹 필터를 연구해 당시 일본 독점이던 DPF의 국산화에 성공한다. 대당 240만원에 들여오던 DPF가 자체 생산으로 24만원까지 단가가 떨어졌다. 이후 LG화학 측 권유로 DPF 개발·생산 회사를 창업했고, 기술을 더 다듬어 2011년 300억원에 회사를 매각했다.

그가 ‘인생 2막’으로 택하려던 건 통닭이었다. 섭씨 300도 숯불 사이에 닭을 가둬 심부 온도를 빠르게 끌어올리는 기술로 3분 만에 통닭을 구워내는 기계를 발명했다. 전국 이름난 맛집을 돌아다니며 레시피를 전수받아 4종 소스도 개발했다. 숯불을 써도 매캐한 연기가 나지 않는다는 게 이 통닭 사업의 핵심. 통닭 기계에 DPF식 미세먼지 저감 장치를 부착해 닭껍질을 직화하며 발생하는 유증기(油蒸氣)를 잡아내는 아이디어였다. 그가 요리 매연을 처음 잡았던 순간이다.

그는 2014년 가족을 만나러 샌디에이고에 갔다가 캘리포니아 주 정부 프로젝트로 요리매연 필터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요리 매연은 기름이 산화하며 나온 발암성 물질이 연기와 섞인 것이다. 호흡기로 들어와 폐에 달라붙어 폐암을 일으키는 것으로 밝혀졌다. 캘리포니아주는 대형 레스토랑을 대상으로 요리매연 규제 법안을 마련했지만 필터 기술이 없어서 법을 시행하지 못하고 있었다. 한 대표는 디젤과 요리매연이 같은 유증기라는 점에 착안해 DPF를 적용한 공기청정기 필터 기술을 개발했다. 통닭 대신 택한 그의 두 번째 ‘숨 엔지니어링’이었다. 지난 9년간 조용히 특허장벽을 쌓아 5국에서 15개 특허를 획득했다.

반응은 미국에서 먼저 나오고 있다. 세라믹 필터가 적용된 요리매연 공기청정기는 기존에 없던 기술이라 어느 카테고리로도 제품 인증을 받기 어렵자 미국 공식 인증기관인 UL에서 이 기술을 특정해 인증 기준 마련에 착수, 올 하반기 마무리 될 예정이다.

재작년 학교 급식실 조리사의 폐암 산재(産災) 인정을 계기로 “죽음의 급식실을 바꾸자”며 대책 마련을 호소해온 급식 노동자들도 이 기술을 반기고 있다. 서울 서초구가 작년부터 이 공기청정기를 관할 초중고 26곳에 처음 도입했는데 반응이 뜨겁다. 한 조리사는 “조리실에 매캐한 연기도, 악취도 사라졌다”며 “폐질환에 쉽게 노출되던 작업 환경에서 안전해진 것 같다”고 했다.

한 대표는 CES가 끝난 후 글로벌 기업인 할톤과 손잡고 본격적인 미국 시장 진출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환경 기술은 여전히 해외 기술 모방과 수입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이젠 해외에서 기술 제휴를 맺으려 한국을 찾아오도록 만들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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