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피는 팔도 사투리, 버라이어티 K-드라마
아이즈 ize 신윤재(칼럼니스트)
요즘 드라마 좀 본다는 사람 중에 사투리 하나 구성지게 따라 해 본 경험이 있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갈수록 드라마는 현실로, 실제로 있는 것들을 향해 달린다. 그런 이유로 배경이 지방이라면 사투리는 공간의 실재감을 배가하는 수단이 된다. 한여름 판타지로 달리던 드라마들은 2023년 말과 2024년 초 지방의 펄떡이는 이야기를 건져 올리려 애쓰고 있다.
지난해 안방극장에서 사투리를 주된 소재로 쓰던 작품은 조금씩 늘어났다. 상반기 안소희 역 이선빈이 전라도 사투리를 쓰던 티빙 '술꾼도시여자들 2'와 여수 사투리가 주를 이루던 KBS2 '오아시스', 역시 전라도 광주의 사투리가 등장한 KBS2 '어쩌다 마주친, 그대' 등이 있다.
충청도 사투리 조연이 등장하던 JTBC '힙하게'를 거친 후에는 11월부터 본격적으로 관련 드라마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주인공 서목하(박은빈)이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하던 tvN '무인도의 디바', 1989년 충남 부여를 배경으로 단 한 명의 배역을 빼고는 모두 충청도 사투리를 구사한 쿠팡플레이 '소년시대', 경상남도로 보이는 거산시에서 경상도 사투리가 구수하게 등장하는 ENA '모래에도 꽃이 핀다', 배경이 제주라 제주도 사투리가 등장하는 JTBC '웰컴투 삼달리'도 있었다. 지역 역시 전라도, 충청도, 경상도, 제주도로 고르게 분포했고 사투리가 지역색을 드러내는 결정적인 소재로 사용됐다.
흥미로운 부분은 배역의 분포다. 과거 드라마 또는 영화에서 사투리는 주로 조단역의 차지였다. 보통 서울말, 표준어를 쓰는 주인공들의 옆에서 사건의 해결을 조력하거나 사건을 일으키는 문제인물로 여겨지는 사람이 주로 사투리를 썼다. 그러한 이유로 전라도 사투리는 '건달'의 이미지, 경상도 사투리는 '막일을 하는 아낙'의 이미지, 충청도 사투리는 '무기력한 부모'의 이미지를 뒤집어쓰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작품들에서 사투리는 극의 핵심에 있으며, 주인공들도 당연히 구사한다. '무인도의 디바' 서목하 역 박은빈은 전라도 사투리에 대해 줄거리가 진행될수록 서서히 그 빈도를 줄이는 부분에 대해서도 제작진과 상의를 했으나 결국 진정성을 지켜가야 한다는 판단으로 끝까지 사투리를 고수했다.
'소년시대'의 주인공들도 강선화 역 강혜원을 제외하고는 모두 충청도 사투리를 구사한다. 부산 출신인 배우 임시완은 장병태 역을 소화하기 위해 충청도 사투리 개인교사를 채용했고, 어학연수(?)를 위해 직접 충남 부여를 찾아가는 등 노력을 기울였다. 이는 다른 조단역 학생 역의 배우들도 다르지 않아 촬영현장은 충청도 사투리 교습장을 방불케 했다.
'모래에도 꽃이 핀다'의 경우에는 주인공들을 경상도 사투리를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배우들로 캐스팅했다. 오유경 역 배우 이주명은 부산 출신으로 극 중 배역의 사투리를 자연스럽게 구사하는 것은 물론 주변 배우들의 사투리를 감수했으며, 김백두 역 배우 장동윤은 대구 출신으로 경상북도 사투리를 구사한다. 장동윤은 경상남도로 설정된 극의 배경에 맞추기 위해 미묘하게 다른 경상남도와 경상북도의 사투리를 구분하기 위해 애썼다.
사투리의 사용은 일단 지역색을 확실하게 드러내 전형적인 이미지를 드러내기도 하고, 거꾸로 그 전형적인 이미지를 깨기도 한다. '무인도의 디바' 서목하의 사투리는 그의 털털하고 밝은 이미지를 강조하며 지역색 특유의 의리와 끈기를 상징해 가수로 거듭나려는 그의 캐릭터를 부각한다.
'소년시대'에서의 충청도 사람들은 모두 생각처럼 말이 느리지 않다. 오히려 '아산 백호' 정경태(이시우)가 쓰는 사투리는 나지막하면서 짧아 위협적이다. 고등학생들의 싸움을 주로 다뤘던 드라마는 충청도 말도 충분한 위협의 수단이 될 수 있음을 보였다. 또한 장병태 역 임시완이 충청도 사투리로 넋두리를 하는 장면은 극의 애잔함을 더욱 키웠다.
이 밖에도 '모래에도 꽃이 핀다'의 사투리는 극의 호감이 되는 인물과 그렇지 않은 인물을 구분하는 기제로 쓰인다. 거산 외부에서 온 민현욱 역 배우 윤종석과 주미란 역 배우 김보라는 표준어를 구사한다. 이들의 모습은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하는 분위기와 배치되면서 이들의 존재를 미스터리하게 만든다.
사투리가 활발하게 구사되는 드라마는 문화적 다양성의 상징이 된다. 마치 현란한 컴퓨터 그래픽(CG)이 판타지 드라마의 전유물이 되고, 화려한 무술이 액션 드라마의 전유물이 되는 것처럼 사투리가 구사되는 드라마는 서울 중심의 배경에서 벗어나 좀 더 넓은 지역의 이야기, 지역색을 드러내는 작품이 될 수 있다. 말 하나가 거대한 장치가 돼 출연자들을 휘감고, 전반적인 작품의 색깔을 결정하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과정을 거쳐 지역의 유산인 사투리를 남기고 보존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현재의 지역은 지나친 서울 집중, 특히 문화적인 집중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사투리를 사용하는 절대적인 숫자 역시 줄어든다. 드라마에서의 사투리는 문화유산을 남기는 일뿐 아니라 지역의 중요성을 상기하는 요소로 쓰일 수 있다.
'소년시대'를 즐겨보던 시청자들은 "뭐여?" "기여?" 등 유쾌하게 나오는 사투리를 하나씩 배울 수 있었고,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었다. 지금 안방극장의 사투리는 대한민국 드라마를 더욱 다채롭게 윤색하고, 그 원형질을 길게 지키는 원동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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