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측 불가’ 영장실질심사, AI로봇 활용 어떤가 [핫이슈]

김병호 기자(jerome@mk.co.kr) 2024. 1. 11.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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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오후 문재인 정부의 국가 통계 조작에 관여한 혐의를 받는 윤성원 전 국토교통부 1차관이 탑승한 호송 차량이 영장실질심사가 진행될 대전지법에 들어서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지난 8일 문재인 정부 때 부동산 통계 조작 혐의를 받는 윤성원 전 국토교통부 차관과 이문기 전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만일 구속됐다면 전(前) 정부 통계 조작 의혹 관련 첫 구속 사례가 될 터였다. 영장 기각의 주된 사유는 형사소송법 제70조에 나온대로 피고인이 도망하거나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형소법이 피고인 구속 사유로 규정하고 있는 ①일정한 주거가 없는 때 ②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는 때 ③도망 또는 도망할 염려가 있는 때 라는 판단에는 판사 주관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이날 대전지법 윤지숙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수사기관에서 관련자 진술 등 다량의 증거를 확보했고...도주와 증거 인멸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하지만 다량의 증거는 어느 정도 수준을 뜻하는지, 도주와 증거 인멸 여부를 무엇으로 판단하는지 등은 너무 주관적이다. 이로 인해 유사한 사안을 놓고도 누구는 구속되고, 누구는 풀려난다. 대전지검이 “피의자들이 도망이나 증거 인멸 염려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법원 판단은 권력형 조직적 범죄임에 비춰 납득이 쉽지 않다”고 반발한 것도 이해가 간다.

지난 9일 용산 대통령실 진입을 시도한 대학생진보연합(대진연) 회원 10명의 구속영장이 기각된데 대해서도 반론이 많다. 판사는 “집단적 폭력행위를 계획 및 실행하지 않았다”며 ”연령, 직업, 주거 관계 등을 고려하면 구속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했지만 반대 논리도 얼마든 가능하다.

지난달 18일 서울중앙지법 유창훈 영장 전담판사는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해 구속영장을 발부했지만 석달 전 이재명 민주당 대표 영장은 기각했다. 구속 여부를 놓고 이들 간 운명이 갈린 이유는 같은 판사라도 ‘증거 인멸’에 대한 판단이 그때그때 다르기 때문이다. 송 전 대표에 대해선 “당 대표 경선 관련 금품 수수에 관여한 점이 소명되며 증거 인멸의 염려도 있다”고 한 반면 이 대표는 ‘위증 교사’ 혐의가 있지만 “증거 인멸 염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전·현직 야당 대표로서 둘 다 신원이 확실하고 거주지가 분명한데도 증거 인멸 가능성 판단은 달랐다.

판사가 신이 아닌 이상 피의자를 풀어주면 증거 인멸을 할지, 도망할지 100% 장담할 수 없다. 부정확한 판단이 불가피한데다 더 큰 문제는 유사한 사안을 두고 판결이 달라지는 것이다. 구속을 앞둔 피의자나 피고인 입장에서는 엄청난 리스크다. 만일 어떤 사안을 놓고 판사 10명이 각자 영장실질심사를 해본다면 그 결과는 100% 일치하지 않을 것이다.

지난해 8월 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건으로 민주당을 탈당한 무소속 윤관석 의원이 구속됐다. 반면 같은 사건의 또다른 피의자인 이성만 의원은 구속을 피했다. 이 둘의 차이는 영장심사를 담당한 판사만 달랐다. 한 법조인은 “같은 사건에 가담한 피의자들의 증거 인멸 염려를 달리 판단한 것은 설득력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영장실질심사 결과가 이렇게 달라지다보니 복잡한 본안 사건의 경우 어떤 재판부를 만나느냐에 따라 판결에 큰 차이가 날 것은 자명하다. 법적 안정성을 기대하기 힘들다. 판사 성향과 학연, 지연 등을 따져 재판부를 고르는 ‘판사 쇼핑’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정도면 딥러닝으로 엄청난 분량의 판례를 습득할 수 있는 인공지능(AI) 로봇에게 영장실질심사를 맡겨보는 것은 어떤가. 괴상한 판사를 만나 남보다 불리한 결과를 얻었다는 불만이나 불공정함은 사라질 것이다. 최근 정치인 재판을 지체시키는 일부 판사들 행태를 보고있노라면 본안 판결도 AI에 맡기고 싶지만 영장실질심사부터 먼저 해보는 것이다.

판사도 인간인 만큼 피의자 신분과 지위 등을 의식해 모순된 판단을 내리거나 개인적 호불호가 판결에 반영될 수 있다. 반면 AI로봇을 쓰면 그럴 걱정은 줄어든다. 이렇게 돼야 헌법에 명시된 평등권(11조)과 신체적 자유(12조)가 온전히 지켜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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