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은행들, 대출 공화국 오명 벗으려면

이정필 기자 2024. 1. 11.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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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어디 내 집인가요. 은행에 평생 이자 내면서 얹혀사는 거죠."

은행의 가계대출은 지난달 1095조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대출 고객들을 발판으로 은행권 수익은 해마다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는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중이다.

매달 월급이 들어오기가 무섭게 대출이자로 빠져나가는 수많은 고객은, 연초부터 상생을 외친 은행의 진정성 있는 결단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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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이정필 기자 = "이게 어디 내 집인가요. 은행에 평생 이자 내면서 얹혀사는 거죠."

집을 산 주변 지인들에게 시세가 많이 올랐는지 물어보면 한결같이 돌아오는 대답이다.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 부동산 정책 역효과로 집값이 폭등하면서 주택 마련을 위한 최대한도의 대출은 이제 일반화가 돼버렸다.

은행의 가계대출은 지난달 1095조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연간 37조원 불어난 규모다. 이 기간 주택담보대출은 51조6000억원 급증한 850조4000억원으로 전체의 약 77.7% 비중에 달한다.

대출 고객들을 발판으로 은행권 수익은 해마다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는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중이다. 4대 금융지주의 연간 순이익은 2022년 15조원, 지난해 16조원을 돌파한 데 이어 올해 17조원을 넘어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는 은행들이 고금리 이자장사로 돈 잔치를 벌인다며 압박 수위를 높였다. 이에 은행권은 이른바 '상생금융'을 앞세우며 이미지 쇄신에 나섰다.

금융지주 회장단과 은행장들은 올해 신년사에서 이구동성으로 상생을 내세웠다. "경쟁과 생존에서 상생과 공존으로 패러다임의 전환, 금리 체계의 산정방식을 원점에서 재검토" 등의 내용이 언급됐다. "많은 수익을 내는 기업이 좋은 기업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는 기업이 좋은 기업"이라는 자성의 목소리도 내부에서 나왔다.

이 같은 행보는 금융당국의 압박과 함께,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인구구조의 급격한 변화 속에서 기존의 성공 방식은 한계가 있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단기적으로는 이자이익에 의존하는 방법이 여전히 유효하지만, 중장기적 관점으로는 상생금융과 ESG경영에 진심인 '좋은 기업'으로 변모해야 계속 성장하고 장수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사실 은행권은 그동안에도 여러 상생 행보를 보여 왔다. 갖가지 재난 재해가 발생할 때마다 발 빠르게 지원에 나섰고, 매년 취약계층을 위한 기부금을 쾌척해 왔다. 고금리로 대출을 받은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을 중심으로 내놓은 2조원 규모의 민생 대책도 대표적인 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주들 사이에서는 실질적인 이자 부담이 줄지 않는데, 은행이 무슨 혜택을 주고 있냐는 반문이 주를 이룬다. 이자 캐시백을 비롯해 여러 대책을 내놨지만 아직까지 국민적인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대상을 확대한 대출금리 인하 등 보다 직접적인 방식을 도입할 필요성이 커지는 배경이다.

이 경우 은행의 단기 수익성에는 하방 압력이 예상된다. 그러나 멀리 보면 미래세대로 이어지는 지속 가능한 성장의 발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매달 월급이 들어오기가 무섭게 대출이자로 빠져나가는 수많은 고객은, 연초부터 상생을 외친 은행의 진정성 있는 결단을 기다리고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roman@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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