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우스·스마트폰·자율주행…CES 57년 혁신의 발자취

옥기원 기자 2024. 1. 11.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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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S 2024에 전시된 엘지(LG)전자 시그니처 올레드 티. 연합뉴스

컴퓨터 마우스, 시디(CD)플레이어, 태블릿피시(PC), 3디(D) 프린터….

해당 ‘혁신 제품’들의 공통점은 미국 소비자가전박람회(CES·시이에스)를 통해 선보여졌다는 점이다. 시이에스는 지난 57년 동안 우리 삶을 바꾼 정보기술(IT) 제품들이 공개되는 무대를 넘어 인류 미래상을 미리 그려볼 수 있는 첨단 기술의 장으로 자리매김했다.

뉴욕 작은 행사가 세계 최대 기술 전시회로

행사를 주관한 미국소비자기술협회(CTA) 설명을 종합하면, 시이에스는 현재 개최지인 라스베이거스가 아닌 미국 뉴욕에서 시작했다. 1967년 6월 열린 1회 대회는 가전 업체 100여곳, 방문객 1만7천명이 참가한 소규모 가전 행사였다. 1978년부터 1994년까진 1월 라스베이거스, 6월 시카고에서 매해 두 차례 개최됐다. 집중도가 분산돼 6월 참가 기업 수가 크게 줄면서 1998년부터 매해 초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행사로 자리 잡았다.

2000년 초까지도 시이에스 위상은 그리 높지 않았다. 2000년대 중후반 전자 제품과 정보통신기술(ICT)이 융합하는 시기에 탄생한 많은 빅테크(대형 정보통신기업) 본사는 미국에 몰려있었고, 시이에스는 이러한 배경을 토대로 빠르게 성장했다. 시이에스와 함께 세계 3대 기술 전시회로 꼽히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엠더블유시(MWC, 2월 말 개최)와 독일 베를린의 이파(IFA, 9월 초 개최)가 각각 모바일 통신 분야와 가전제품에 특화한 행사인데 반해 시이에스는 정보기술, 모빌리티, 우주 등 미래 신기술을 아우르는 행사라는 특징도 성장 배경이었다. 1년 중 가장 먼저 열리는 기술 전시회라는 시기적 이점도 있다. 기업들은 “시기적 특성상 신년에 제품(기술)을 공개한 뒤 한 해 계획을 짤 수 있어 시이에스 참가에 공을 들인다”고 설명했다.

CES 2024가 1월9일(현지시각)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막했다. 연합뉴스

인류를 바꾼 혁신 제품들

실제로 시이에스에선 우리 일상을 바꾼 수많은 제품이 소개됐다. 1967년엔 휴대용 포켓 라디오가 전시된 뒤 다음 해엔 컴퓨터 필수품인 마우스가 공개됐다. 1970년엔 필립스가 최초의 가정용 비디오카세트리코더(VCR)를 선보인 뒤 비디오 시대가 도래했다. 1981년엔 소니와 필립스가 시디(CD)플레이어를 들고 나왔고, 1988년엔 역사상 가장 유명한 비디오 게임인 테트리스가 처음 공개되기도 했다.

2000년대 들어서 시이에스는 전자 제품을 넘어 다양한 미래 기술의 향연장으로 확대됐다. 빅테크인 마이크로소프트는 2001년 시이에스에서 콘솔 게임인 엑스박스(Xbox)를 공개했고, 2005년엔 인터넷 기반 스트리밍 방송인 아이피티브이(IPTV)가 등장했다. 2011년엔 안경을 착용해 시청하는 3디(D) 텔레비전, 2014년엔 3디 프린터, 2015년엔 가상현실 등 첨단 기술, 2016년엔 자율주행 기술이 줄줄이 소개됐다. 지난해엔 메타버스 관련 기술·제품들이 전시됐고, 올해엔 챗지피티(Chat GPT) 열풍을 계기로 인공지능 관련 기술이 주를 이룰 전망이다.

2020년 전후 모빌리티 관련 신기술이 시이에스를 점령하며 ‘라스베이거스 모터쇼’라는 별칭까지 나왔다. 전기 자동차 시대가 열리면서 자율 주행 및 인포테인먼트 전기 장치 등 차와 전자 기술 산업 간의 경계가 허물어졌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 제네럴모터스(GM), 독일 베엠베(BMW) 등 완성차 업계 최고경영자들이 시이에스 기조연설자로 무대에 올랐고, 올해는 현대자동차그룹의 7개 계열사가 총출동해 수소 에너지 전략 등을 공개할 계획이다. 미국소비자기술협회는 시이에스에서 그동안 발표된 신제품·기술만 70만개가 넘는다고 설명했다.

일본 지고, 한국·중국 뜨고

시이에스 무대는 각국 주요 기업의 흥망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경연장이었다. 2000년 전후만 해도 시이에스 전시장은 소니와 샤프 등 일본 전자기업들의 ‘세계 최초’ 신기술이 줄을 이었다. 샤프가 2007년에 공개한 당시 세계 최대 108인치 대형 엘이디(LED) 텔레비전과 3mm 두께의 디스플레이를 탑재한 소니의 세계 최초 유기 이엘 티브이(EL TV)가 대표적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소니의 가정용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을 겨냥해 시이에스에서 엑스박스를 공개하기도 했다. 당시 미국 시장에서 일본 기업 인지도가 커지는 것을 의식해 소니, 파나소닉 등 일본 기업이 시이에스의 메인 무대를 차지하는 것을 견제하는 미국 기업도 있었다고 한다.

이후 미국과 중국, 한국 기업들이 약진이 이어졌다. 미국 애플이 아이폰을 발표하면서 스마트폰 시대가 도래했고, 비슷한 시기 넷플릭스가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인터넷 및 텔레비전 산업의 대전환이 이뤄졌다. 일본 전자기업의 ‘황금어장’인 텔레비전 사업의 수익성이 약화했고, 혁신에 뒤처진 소니와 샤프, 파나소닉의 시이에스 영향력도 점차 약해졌다.

지난해 9월 개장한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 있는 대형 구형 공연장 스피어. 사진은 1.5㎞ 떨어진 곳에서 찍은 모습으로 옆 유명 호텔 팔라조와 비교된다.연합뉴스

반면 1970년대 중·후반부터 시이에스에 참가한 엘지(옛 금성사, 1973년), 삼성(1979년) 등 국내 기업의 영향력은 점차 커졌다. 초기엔 한국 제품을 공개하는 목적보다 최신 기술을 배우기 위해 참가했지만, 현재는 산업 흐름을 주도하는 핵심 기업이 됐다. 삼성전자는 지난 10년간 시이에스 포문을 여는 기조연설 무대에 7차례나 올랐고, 엘지전자는 올해 시이에스를 앞두고 33개 제품에서 혁신상을 받았다. 정기선 에이치디(HD)현대 부회장은 올해 시이에스 기조연설 무대에서 첨단·무인 자동화 기술력을 활용한 차세대 건설 현장 미래상과 육상 혁신 비전 등을 발표할 계획이다. 올해 국내 참가 기업 750여개 중 약 500개가 스타트업일 정도로 국내 참여 기업과 산업 범주도 넓어지고 있다.

중국 기업의 영향력도 빠르게 확대했다. 하이센스와 티시엘(TCL) 등 주요 중국 기업들은 2010년 이후 빠르게 발전하는 기술 역량을 내보이려는 무대로 시이에스를 활용했다. 2010년 기준 500여개였던 중국 참가 기업 수는 코로나19 확산 전인 2020년에 1300여개로 늘었다. 올해 시이에스에도 중국 기업 1100여개가 참가해 개최국 미국(1190개)에 버금간다. 중국 참가 기업들은 올해 대회 트렌드로 꼽힌 인공지능 관련 노트북과 텔레비전, 스마트폰, 전장 디스플레이 신제품(기술) 발표를 예고해 미국 본토에서 ‘중국 굴기’를 목격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라스베이거스/옥기원 기자 o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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