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치품에서 비만의 원흉으로…단맛에 가려진 설탕의 역사
(서울=연합뉴스) 이세원 기자 = 주방에 있는 포장 식품의 성분 표시를 보면 설탕이 들어가지 않은 것을 찾기가 쉽지 않다. 식생활 전반을 설탕과 함께하는 현대인이 공감하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200년 전만 해도 백설탕은 사치품이었다.
과거에는 원료 식물에서 설탕, 즉 분자식이 C₁₂H₂₂O₁₁인 복잡한 자당 분자를 추출하는 수작업에는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었다. 그 시절 설탕은 왕궁 연회나 의식, 혹은 의학적 용도로 조금씩 사용되는 귀한 물건이었다. 19세기 중반에도 설탕의 가치는 20세기의 석유와 맞먹었다.
산업 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상황은 달라졌다. 압착기, 보일러, 원심분리기를 갖춘 거대한 공장이 대량 공급된 사탕무나 사탕수수를 몇 시간 만에 흰색 결정으로 변화시킨다. 오늘날 북미 사람들은 1인당 연간 60㎏에 육박하는 설탕과 감미료를 소비한다.
역사학자 윌버 보스마는 신간 '설탕'(책과함께)에서 설탕이 대량 생산되고 소비되는 시스템이 구축되는 과정을 추적하고 현재와 같은 설탕 소비가 바람직한지 의문을 제기한다.
유럽인들이 설탕을 좋아하게 되면서 공급량을 늘리는 과정에서 잔혹사가 펼쳐졌다. 책에 따르면 아프리카에서 납치돼 배에 실려 대서양을 건널 때까지 살아남은 흑인 1천250만명 중 적어도 ½∼⅔가 사탕수수 플랜테이션 농장에 끌려갔다. 농장주들은 노예의 노동력을 최대한으로 짜냈으며 식량까지 스스로 재배하도록 했다. 노예들은 저녁이나 일요일에도 일을 했지만 영양이 부족했다. 이들은 쥐, 도마뱀, 뱀 등을 잡아먹기도 했으며 각기병 등에 시달렸다.
노예들은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 죽음을 택하기도 했다. 18세기 말 자메이카의 한 플랜테이션 농장주가 남긴 노예의 죽음에 관한 기록은 충격적이다.
"몇몇은 두려움을 무릅쓰고 펄펄 끓는 솥으로 뛰어들었고, 어떤 이들은 나무나 문에 목을 맸으며, 급류에 몸을 던지는 자들도 있었고, 어떤 이들은 칼로써 절망적 삶을 끝내려 했다."
노예제가 폐지된 후에도 사탕 원료를 생산하는 노동자들의 삶은 비참하기 그지없었다.
인류는 설탕을 대량 생산함으로써 토양에서 탄수화물을 과도하게 뽑아냈으며 광산 채굴과 비견될 정도로 극심한 환경 파괴를 초래했다.
설탕과 에탄올 수요 증가는 원료인 사탕수수 재배 면적 확대로 이어졌다. 사탕수수 재배 면적은 1960년에서 1985년 사이에 두배로 늘었다. 에탄올을 생산하기 위해 숲을 사탕수수밭으로 전환한 결과 탄소 흡수 능력을 감퇴까지 고려하면 화석 연료를 사용할 때보다 탄소 배출량이 더 늘었다.
사탕수수 재배에는 다량의 물이 필요하며 이 역시 생태계에 큰 부담을 지웠다. 인도 서부 마하라슈트라주의 사탕수수 재배 지대는 2010년대 강수량 감소로 심한 물 부족을 겪었다고 한다.
과도한 설탕 섭취는 건강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권위 있는 의학 저널 '런덧 랜싯'에는 1845년에 이미 비만과 진성 당뇨병의 원인으로 설탕과 녹말을 지목하는 논문이 실렸다. 일찍이 많은 이들이 설탕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왕실을 포함해 영국 상류층을 위해 활동했던 장의사 윌리엄 밴팅은 1863년 발표한 소책자 '비만에 관하여 대중에게 보내는 서한'에서 주치의의 조언에 따라 식단에서 녹말과 설탕을 대부분 치워버렸더니 체중이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소개했다. 그의 책은 4차례 증쇄됐고 여러 식이요법의 단초가 됐다.
하지만 20세기 내내 설탕 산업은 밴팅을 매장하려고 애썼다. 이들은 심장 혈관 질환의 책임을 지방에 돌리는 영양학 연구를 원해 설탕 섭취를 줄여야 한다는 점에 주목하기 어렵게 했다. 영국 생리학자이며 영양학자인 존 유드킨은 비만의 급증, 고혈압, 심장 혈관 질환의 원인이 설탕이라는 주장을 담은 '순수하고 하얀, 죽음의 설탕'(1972)을 펴냈다가 학계의 아웃사이더가 됐다. 유드킨은 게리 타우브스가 2007년 출간한 '좋은 칼로리, 나쁜 칼로리'에서 경의를 표해 비로소 명예를 회복했다.
저자는 설탕 산업, 식품 산업, 음료 산업의 광고와 로비가 설탕이 비만과 제2형 당뇨병의 주요 원인이라는 사실을 흐리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설탕의 요람인 인도의 당뇨병 환자가 7천700만명에 달하고 설탕의 섬 모리셔스에서는 인구의 22%가 당뇨병을 앓고 있다며 독자들의 각성을 촉구한다.
조행복 옮김. 624쪽.
sewon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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