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의 ‘작은 곳간’, 출산 대책이 버겁다

김다은 기자 2024. 1. 11.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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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적인 현금 지원의 한계가 꾸준히 지적돼왔음에도 지자체의 출산 지원 경쟁은 줄지 않고 있다. 심지어 출산 지원사업이 지자체의 역량을 보여주는 핵심 분야가 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윤석열 대통령은 2023년 12월26일 국무회의에서 저출생 문제를 지적하며 "비상한 각오로 임해야 한다"라고 언급했다. ⓒ연합뉴스

‘1억원’까지 나왔다. 2023년 12월18일, 인천시가 출산 대책으로 ‘1억 플러스 아이드림’을 발표했다. 부모급여(1800만원), 아동수당(960만원), 첫만남이용권(아동 출생일로부터 1년 내 사용할 수 있는 바우처·200만원), 보육료와 급식비 등 7200만원 정도 지급되던 기존 정부 지원금에 인천시가 2800만원 규모의 지원금을 신설해 얹었다.

눈에 띄는 점은 두 가지다. 첫째, 현금을 더 많이 준다. 인천에서 아이를 낳으면 이미 지급하던 첫만남이용권 200만원에 더해, 아이가 일곱 살이 될 때까지 연간 120만원을 더 받을 수 있다(총 840만원). 이른바 ‘천사(200만원+840만원=1040만원)지원금’이다. 둘째, 현금을 더 오래 준다. 인천시는 7세가 되면 지급이 중단되던 기존 아동수당을 연장해 8세부터 18세까지 월 15만원(연 180만원)씩 지급하는 '아이 꿈수당'을 신설했다. 전국 최초로 학령기 아동에게 수당을 제공하는 가족 지원 대책이다.

평가는 나뉜다. 아동수당을 18세까지 연장 지급해 ‘출산 장려 체감도’를 높인 점은 호평을 받는다. 2023년 10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초저출산 시대의 인구위기 대응 방향’ 보고서에는 현행 가족 지원 투자가 초기 양육비 저감 목표에 치우쳐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보고서는 ‘자녀 양육으로 인한 가구의 빈곤화를 예방’하고 ‘양육가구 소득을 보장’하기 위해 아동수당의 현금급여 대상을 아동 성장기 전체로 넓혀야 한다고 제안한다. 인천시가 이번에 발표한 출산 정책은 이 점을 보완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반면 현금 살포식 저출산 대책의 한계를 반복한다는 지적도 있다. ‘돈만 줘서는 안 낳는다’는 건 이미 증명됐다는 얘기다. 한국지방세연구원에서는 전국 자치단체의 출산 장려 정책을 분석해 2023년 5월 그 결과를 발표했다. 현금성 지원보다 돌봄센터나 놀이시설, 국공립 어린이집처럼 육아 비용을 줄여주는 인프라와 서비스 확충이 출산율을 높이는 데 3배 이상 효과적이라는 내용이다. 2023년 4월 보건복지부와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저출산위)가 20~30대 청년 219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토론회에서도 ‘주거 지원(30.2%)’ ‘일·육아 병행제도 내실화(14.2%)’가 우선 시행되어야 할 저출생 해법으로 꼽혔다. 하지만 인천시가 발표한 1억원짜리 저출산 대책에는 앞서의 지원금과 수당 외에 임산부 교통비 지급 등 현금성 지원 정책이 전부다.

2023년 12월18일 인천시가 ‘1억 플러스 아이드림’ 정책을 발표했다.ⓒ연합뉴스

‘치킨게임’ 닮은 지자체의 출산 지원 정책

단기적인 현금 지원 대책의 한계가 꾸준히 지적돼왔음에도 지자체의 출혈성 출산 지원 경쟁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지자체별로 백화점식 지원 정책이 난무해 수요자가 어떤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파악하는 것조차 혼란스럽다는 말도 나온다. 2023년에 새롭게 시작된 사업도 많았다. 경기 군포시에서는 정관·난관 복원 시술비로 100만원을 지원한다. 충북 괴산군에서는 아이를 셋 이상 낳으면 출산장려금 5000만원을 준다. 산후조리비도 100만원씩 지원한다. 경남 진주시에서는 난임 부부가 시술에 실패한 경우 매회 격려금을 지급하고 소득기준 제한 없이 난임 시술비 본인부담금 전액을 지원한다.

각 지자체들이 상하수도 요금 감면부터 산후조리용 한약 할인, 여성 농업인 출산 시 농가 도우미 인건비 지원 등 다양한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대부분 현금 지원이다. 전국 지자체의 2022년 출산 지원 정책 예산은 1조809억원인데(2021년보다 26.8% 증가) 이 중 절반 이상(69.4%)이 이런 현금 지원 방식이다. 바우처(7.1%), 인프라(6.6%), 상품권(4.6%)보다 비중이 훨씬 크다(〈그림〉 참조).

재정이 열악한 지자체도 인구 뺏기 경쟁에 참여할 수밖에 없어졌다. 지자체의 ‘작은 곳간’에서 저출생 대책 예산의 비중이 증가함에 따라, 출산 지원사업이 지자체의 사업 역량을 보여주는 핵심 분야가 되는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 앞서 언급한 한국지방세연구원의 ‘지자체 출산 지원 정책의 효과분석 및 정책적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2018~2020년 전국 지자체가 사회복지 부문에 사용한 자체 사업 규모는 5.1조~6.8조원이다. 그중 2조~4조원이 출산 지원사업에 쓰였다. 노인·일자리 등 타 사회복지 부문 사업에 들어가야 할 예산이 출산 대책에 연동돼 줄거나 늘었다는 의미다. 지자체 간 지원 격차가 커지면서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는 민원도 이어지고 있다. 출산율 제고의 실효성이 명확히 검증되지 않은 ‘현금 살포 사업’이지만 지자체로서는 울며 겨자먹기로 지원금을 늘려야 한다. 한번 늘린 지원금은 줄이기도 어렵다.

2023년 12월13일 국회에서 열린 정책 토론회에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위원 등 참석자들이 저출산 위기극복 선포식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런 지자체의 곤란을 해결하는 방법은 정부의 개입이다. 앞서 보고서를 작성한 박혜림 한국지방세연구원 지방재정연구실 연구원은 “현금 지원을 없애자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각자 할 일을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프랑스의 출산 지원 정책은 정부가 일관성 있는 현금 지원을 하고, 지방정부에서는 일·가정 양립을 돕는 시간제 보육 지원이나 여름캠프 같은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집중한다. 우리도 중앙정부는 OECD 회원국 평균(2.12%)에 못 미치는 GDP 대비 가족 관련 현금 지원 규모(1.37%)를 지속적으로 늘리고, 지자체는 지역 맞춤형 서비스를 구축하는 것이 출산율 제고에 효과적이다.” 청소년 공부방, 영어 원어민 교사 배치 등 교육 인프라 확충에 예산을 할당한 강원 화천군, 체육과 여가를 즐길 수 있는 군립형 키즈카페·가족 놀이시설 등을 설립한 인천 강화군 등이 주목할 만한 사례다.

하지만 정부가 맡아오던 출산 지원사업까지 지자체로 넘어오는 상황에서 중장기 대책을 세울 여력이 없다는 현실적인 푸념도 나온다. 지자체로 떠넘겨진 대표 사업이 난임 부부 지원이다. 난임 부부 지원사업은 국가 주도로 이루어지던 2021년까지 국비와 지방재정비를 매칭해 운영했다. 하지만 2022년부터 지방 이양 사업이 되면서 지자체별로 여건에 따라 자율적으로 예산을 정하게 됐다. 2023년 경기도가 편성한 예산이 568억원, 충북은 35억원이었다. 지자체 재정 상황에 따라 지원 격차가 수십 배씩 난다.

지자체는 중앙정부 중심의 일관성 있는 현금 지원 정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2021년 감사원이 발표한 ‘저출산·고령화 대책 성과분석’ 감사보고서에는 ‘(지자체의) 현금성 지원사업이 과다하므로 중앙정부 차원의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부산광역시 의견이나 ‘지자체의 다양한 소규모 지원보다 국가 차원에서 총괄하며 대규모 현금 지원을 해야 한다’는 전라남도의 의견이 담겼다. ‘1억 플러스 아이드림’ 발표를 하며 인천시 역시 정부 차원의 개입을 요구했다. 산발적 보조금 제도를 전면 개편하고, 출생 정책의 총괄 전담부서로 예산 편성권과 집행력을 가진 인구정책처를 신설하자는 등의 내용이다.

하지만 2024년부터 펼쳐질 정부의 저출생 대책에 이 같은 요구가 반영될 여지는 없어 보인다. 최근 대통령 직속 저출산위가 교육예산(지방교육재정교부금)에서 연간 11조원씩 저출산 대응 예산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저출산위가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진 정책은 육아휴직급여 상한 상향(현행 150만원에서 200만원으로), 아동수당 지급 연령 확대(현재의 7세에서 17세로 상향) 등이다.

각 항목만 살펴보면 지금보다 나은 정책이다. 다만 여전히 현실적 한계를 타개할 방법은 빠져 있다. 육아휴직급여 상향에 앞서 육아휴직을 쓸 수 있는 직장과 쓸 수 없는 직장의 격차를 좁히는 방법은 아직까지 논의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상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인구평가모니터링센터장은 “저출산 정책이 오히려 출산율을 떨어뜨리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누릴 수 있는 자원이 늘어나는 ‘좋은 직장’과, 그것이 없는 ‘나쁜 직장’의 격차는 점점 더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격차를 좁히지 않는 저출산 정책은 제자리걸음만 하는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김다은 기자 midnightblu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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