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이재명 대표 부산대→서울대 전원이 남긴 것 / 김윤

한겨레 2024. 1. 11.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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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처지·결정 이해되지만
정치적·의료적 잘못된 결정
진정성 있는 지방의료대책을
부산 방문 일정 중 흉기에 피습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태운 헬기가 지난 2일 서울 용산구 노들섬 헬기장에 도착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윤 | 서울대 의대 교수(의료관리학)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피습 사태가 엉뚱한 논란으로 번져가고 있다. 상대방에 대한 혐오를 끊임없이 부추기는 ‘편가르기 정치’가 낳은 폭력이라는 사건의 본질은 사라지고 엉뚱하게 ‘특혜이송’ 논란이 끝없이 증폭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부풀리기, 말꼬리 잡기 같은 소모적 논쟁을 넘어 일부 의사단체가 정치폭력으로 피해를 본 야당 대표와 수술을 집도한 서울대병원 교수를 고발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편가르기 혐오 정치에서 비롯된 폭력 사태가 또 다른 편가르기식 정치 논란으로 변질하지 않으려면 이에 대한 객관적 평가가 필요하다.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가 부산대병원을 놔두고 서울대병원에서 수술받기로 한 결정을 의학적 측면, 야당 대표의 결정이라는 정치적 측면, 환자와 가족의 측면에서 객관적으로 평가해보자.

먼저 의학적 측면에서 서울대병원으로 가기로 한 것은 적절한 결정이 아니다. 환자를 이송하는 과정에서 대량 출혈이 발생할 수 있고, 그렇게 해서 생긴 핏덩어리가 기도를 눌러 환자를 질식시킬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외상으로 사망한 환자 연구결과에 따르면, 중증외상 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옮기면 사망확률이 2배 증가한다.

부산대병원은 우리나라에서 아주대병원 다음으로 중증외상환자를 많이 진료하는 외상센터다. 대개 중증환자를 많이 보는 병원이 치료 성적도 더 좋다. 미국 의사협회지 논문을 보면, 연간 중증외상환자를 연간 650명 이상 진료하는 외상센터의 사망률은 환자 수가 적은 병원의 절반밖에 되지 않았다. 2021년 부산대병원이 진료한 중증외상환자 수는 810명이었던 데 반해, 서울대병원은80명정도로 추정된다. 부산대병원은 이재명 대표처럼 칼이나 유리, 철근 등 관통상 환자를 매년 120명 정도 수술하고 있다. 부산대병원을 놔두고 서울대병원에서 수술받으면 치료 결과가 더 좋을 것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서울대병원을 선택한 것은 정치적으로도 올바른 결정이라고 하기 어렵다. 이제까지 지방의료를 강화하기 위해 지역의사제를 도입하고 공공의대를 세워야 한다고 주장해 온 민주당의 진정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게 됐다. 여기에 민주당 의원들이 “대량 출혈이 우려되는 상황” “후유증을 고려해 (수술을) 잘하는 병원에서 해야 한다”고 발언하면서 여론을 더 악화시켰다. 대량 출혈 위험이 있는데 몇 시간씩 걸려 다른 병원으로 간다는 게 앞뒤가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지방 대학병원에 대한 은근한 불신을 내비치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헬기를 탈 수밖에 없는 서울대병원으로 옮기느라 ‘특혜 이송' 논란을 자초했다.

하지만 야당 대표 이재명이 아니라 느닷없이 괴한의 습격을 받아 칼에 목을 찔린 보통 환자와 가족이 내린 결정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은 아니다. 외상진료에 전문적 지식이 없는 환자와 가족은 부산대병원이 잘 치료할 수 있는 병원이라는 사실을 몰랐을 것이다. 좋은 병원에서 수술받자고 한 결정이 지방의료를 불신했다는 정치적 비판으로 돌아올 것이라 예상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평소 응급실 뺑뺑이 같은 사건이 일어나면 의사와 병원 편만 드는 의사들이 이런 일이 생기면 벌떼처럼 일어나서 정치적 공격을 일삼는 것을 비판할 생각은 없다. 우선 민주당이 잘못했기 때문이다. 먼저 잘못한 것은 잘못했다고 솔직하게 사과해야 한다. 지방의료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선 야당 대표가 지방 대학병원을 놔두고 서울대병원에 선택한 것, 앞뒤가 맞지 않는 말로 그런 결정을 정당화하려고 한 것은 사과해야 한다.

이와 함께 지방의료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발언이 진정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줄 실질적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어떻게 하면 지방에 사는 국민이 자기가 사는 곳에 있는 대학병원이 서울의 빅5 병원만큼 좋은 병원이라고 믿게 만들지, 응급환자가 생기면 대도시까지 나가야 하는 의료 취약지에 사는 국민에게 어떻게 필수의료를 보장할지, 아이가 아프면 갈 병원이 없어 큰 도시로 이사해야 하나 고민하는 젊은 부모의 고민을 어떻게 해결할지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지방의료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국민에게 약속한 180석 거대 야당에 걸맞은 말과 행동을 보여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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