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의 눈’으로 세상을 봐서인가
[뉴스룸에서] 김경락|경제산업부장
떼어놓고 보면 논란은 있을 수 있되 보수정부라면 해봄 직한 정책이 쏟아지고 있다. 그런데 그 정책이 마련되는 시점이나 시행되는 기간을 보면 공교롭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다. 정부의 경제·금융정책이 총선 시계에 맞춰 돌아가고 있다는 세평이 귀에 박히는 것이다. 하나하나 꼽아보자.
우선 주식투자 소득에 대한 과세 완화. 지난해 12월 마지막째 주 별안간 상장주식 대주주 과세 기준이 대폭 완화됐다. 1999년 도입 이후 20여년간 꾸준히 과세 범위가 넓어져온 조세 정책 물꼬를 바꾼 것이다. 나아가 이를 위한 시행령 개정안 입법예고 기간은 단 이틀. 그 기습성도 놀라웠다. 해가 바뀐 뒤론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드라이브를 걸었다. 올해 경제정책 밑그림을 담는 ‘경제정책방향’엔 없던 내용이 갑자기 툭 튀어나왔다. 세제당국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취재하는 기획재정부 출입기자들은 깜짝 놀랐다고 한다. 여하튼 세금 깎아준다는 데 반대할 사람보다 좋아할 사람이 더 많은 건 따져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줄잡아 수만~수십만명이 수혜를 본다.
두번째는 은행들의 캐시백. 지난해 9월 논의가 시작되더니 석달도 안 돼 지원 규모부터 대상과 지급 시기까지 뚝딱 방안이 나왔다. 지급 시기는 2월부터 두달이다. 큰돈 아니지만 대출 있는 영세자영업자·소상공인은 예상 못 했던 돈 수십만~수백만원(최대 한도 300만원)을 총선 두세달 앞두고 손에 쥐게 된다. 그 수혜자는 정부·은행 추산 약 180만명이다.
신용사면도 추진된다. 연초 대통령 주재 민생토론회에서 튀어나왔고 주무부처인 금융위원회가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기 때 영업이 어려워져 원리금을 제때 갚지 못해 연체한 이들을 돕자는 취지인데, 구체적인 방안은 대통령 주재 행사에서 조만간 발표될 예정이란다. 역시 그 수혜자는 수만~수십만명에 이를 전망이다. 코로나19 거리두기가 풀린 지 2년 지나 불쑥 신용사면이라니, 이 역시 공교롭다.
조금 더 거슬러 가면 공매도 금지도 있겠다. 실제 수혜로 이어질지 모르겠으나 일단 이 청원은 그 뿌리가 개미투자자란 점에서 환호하는 사람은 또 수십만~수백만명은 될 것이다. 한시적 공매도 재개 시점은 일러야 오는 6~7월이다. 총선이 지나고 난 뒤다. 그러고 보니 최근 보름여간 뜨거웠던 태영건설 워크아웃도 총선 뒤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맺는 일정이다. 총선 때까진 정부가 채권단을 을러 사달 나지 않도록 끌고 가려는 것 아니겠냐고 생각하는 이들이 적잖은 이유다. 검사 시절 윤석열 대통령과 한솥밥 먹어 실세로 불리는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총대를 메고 대통령실 고위 인사까지 으름장 놓는 상황 전개는 호사가들의 이런 ‘썰’을 그럴듯하게 만든다.
열거한 정책의 또 다른 공통점도 있다. 공론화·여론수렴 과정은커녕 정부 내 숙의 과정이 없다시피 하다. 또 주무부처는 부정적·소극적인데 대통령실이 찍어 누르는 모양새가 반복된다. 요즘 공무원들은 정책전문가라는 자부심은 포기하고 앵무새가 됐고, 시장 참여자들은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용산만 바라본다는 말이 세간에 넘친다. 범부들 얘기라고 흘려듣기 어렵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런 정책에는 정부 돈이 안 들어간다. 경기가 어둡고 힘든 사람이 많으면 정부가 돈 쓰는 게 바른길이다. 시장의 가격 조절 기능에 손댔다가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이 무섭거니와 시장의 실패를 보완하는 게 정부의 몫이어서다. 하지만 이번에 쏟아지는 정책은 대부분 남의 돈이 지렛대다. 재정은 축내지 않으면서도 생색은 정부·여당이 낸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 기획자에게 상 줘야겠다 마음먹고 있을까.
이런 정책들을 밀어붙인 결과 표는 얻을지 모르겠으나 결과가 아름다울지는 모르겠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흔히 나오는 ‘이익 사유화, 손실 사회화’란 표현을 빌리면, ‘이익은 정부·여당이, 손실은 시장·국민’이 안을 수 있다는 얘기다.
지난해 말 탈당해 신당 창당을 추진 중인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 1일 “돼지 눈으로 세상을 보면 돼지만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발표·추진되는 경제·금융정책이 총선 시계에 맞추고 있다는 의심도 정부·여당의 진심을 외면하는 돼지의 눈에만 그리 보이는 것 아닐까.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경제 현장을 뛰는 공무원·기업인·투자자들은 총선 뒤가 두렵다고 한다.
sp9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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