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불법 유출 문화재 회수는 역사의 상처 회복하는 길

김철홍 문화유산국민신탁 충청지방사무소 명예관장 2024. 1. 1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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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홍 문화유산국민신탁 충청지방사무소 명예관장

영국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그리스 유물 '파르테논 마블스' 반환 문제로 갈등을 빚은 여파로 영국과 그리스 정상회담이 당일 전격 취소됐다는 외신을 접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유인즉 '파르테논 마블스'는 그리스가 오스만제국에 점령됐던 19세기 초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에서 떼어간 대리석 조각들로 당시 오스만제국 주재 영국 외교관이었던 '엘긴 백작' 토머스 브루스가 가져가서 '엘긴 마블스'로도 불리는데, 그리스는 이 유물을 도난당했다는 입장이지만 영국은 이를 부인하며 그리스의 반환 요청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와 상황은 다르지만 몇 달 전 백제역사 유적지구의 하나인 백제의 마지막 왕도인 익산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미륵사지와 왕궁리 유적 그리고 국립익산박물관 등 경관과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는 복합문화공간을 일행과 함께 답사한 기억이 떠오른다.

미륵사지에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석탑이자 최대 규모인 국보 '익산미륵사지석탑(서탑)'은 무왕 때의 화강암 석탑으로 목탑에서 석탑으로 이행하는 과정의 구조를 보여주는 중요한 탑이며, 백제의 대가람 미륵사지에 남아있는 기념비적 문화유산으로 원래 9층으로 추정되나 반파된 상태로 6층 일부까지만 남아 있는 상태로 2001년부터 콘크리트로 보수된 석탑을 해체하여 복원하기 시작했고 무려 18년의 기다림 끝에 2019년 4월에야 모든 복원 과정을 완료할 수 있었다. 조선시대에 미륵사가 없어졌고 이후에 서탑과 당간지주만 남았으나 서탑도 무너질 위기에 처하자 일제는 처방으로 콘크리트를 잔뜩 부어 조치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때 전국의 문화재를 제멋대로 복원하거나 콘크리트를 부어 훼손시켰는데, 그중 1915년 벼락으로 붕괴 직전의 미륵사지 석탑이 콘크리트 범벅으로 복원의 희생물이 됐다. 동탑은 2년 만에 먼저 복원돼 졸속 복원이라는 비판을 면치 못했다. 화강암을 기계로 깎아내어 탑을 쌓아 기존의 서탑과 부조화가 심하고 표면 질감이 너무 매끈하여 상당히 부담스러운 건축물로 평가받고 있다.

서탑의 복원은 과거의 졸속 문화재 복원을 반성하고,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 상당히 조심스럽게 진행됐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일제가 사용했던 콘크리트 185톤에 대한 제거 작업으로 석탑에 사용된 원석과 붙어있는 콘크리트를 완벽하게 제거하기 위해 치과용 드릴을 사용한 것이다. 현재 우리가 '미륵사지 석탑'이라고 부르는 미륵사지 서탑은 그렇게 세상에 다시 제 모습을 드러냈다는 설명에 문화유산 지킴이의 한 사람으로서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처럼 기분 좋은 또 하나의 사례로 2012년, 과거 일제에 의해 강제 매각된 주미 대한제국공사관을 재미 한인사회의 꾸준한 관심 속에 문화재청과 문화유산국민신탁이 매입해 102년 만에 우리 품으로 돌아온 것이다. 주미 대한제국공사관은 대한제국 시절 첫 재외외교공관이며 유일하게 원형이 남아 있는 건물로 1889년에 2만 5000달러에 매입하여 일제에게 외교권을 빼앗긴 을사늑약(1905년)까지 16년간 사용했으나 일제는 1910년 한일 강제 병합 과정에서 소유권을 5달러에 빼앗아 1만 달러에 미국인에게 되팔았다는 사실이 알려져 우리 국민의 공분을 샀다.

우리는 오랜 역사 속에서 찬란한 문화를 만들어 왔지만 구한말 서구열강의 침탈, 일제강점기, 한국 전쟁 등으로 아픈 역사를 겪고 산업화의 바람에 안타깝게 잃어버린 문화유산들이 너무 많다. 특히 혼란스런 시기에 불법적이거나 부당한 이유로 해외에 유출됐거나 합법적으로 구입, 기증, 외교 선물, 수출 교역 및 우리 문화재에 관심이 많은 외국인에게 수집되는 등 해외로 유출된 이유는 다양하다.

국외에 소재한 문화재는 일본의 도쿄국립박물관 등 393곳에 9만 5622점(41.64%), 미국의 메트로폴리탄미술관 등 170곳에 6만 5241점(28.41%) 등 총 27개국 784곳에 22만 9655점으로 파악되고 있다. 국외로 반출된 문화재는 지난해 일본에서 매입한 대동여지도, 묘법연화경 권 제6(고려 사경), 고려 나전국화넝쿨무늬상자 등 지금까지 1204건 2482점을 환수 조치했는데 환수율은 4.8%에 불과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최근 영국의 영국박물관, 미국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이 불법적이거나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문화재들에 원소유 국가에 반환했거나 반환을 준비하고 있고 독일, 일본, 이스라엘도 이러한 움직임에 동참하고 있다. 제국주의 시절의 약탈적 문화재 수집 행위에 반성적인 분위기가 국제적으로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를 활용하여 우리 정부는 국외 소재 우리 문화재는 우리의 아픈 역사를 대변하는 만큼 우리 문화재 반환 협상을 위한 실태조사 등 다각적인 준비와 적극적인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정부와 문화유산국민신탁이 보전가치가 있는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지키기 위한 노력과 활동을 하고 하지만, 그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지금도 어디선가 소중한 문화유산이 허물어지고 사라져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김철홍 문화유산국민신탁 충청지방사무소 명예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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