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칼럼] 학교폭력 제도가 교육의 본질에서 벗어나선 안된다.

김의성 변호사 2024. 1. 1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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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성 변호사

2011년 대구중학생 자살 사건부터 지난해 정순신 변호사 자녀 사건까지 우리나라는 심각한 학교폭력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엄벌주의 방향을 강화하였다. 그러나 학교폭력을 둘러싼 민원과 법적 분쟁은 오히려 크게 증가하고 있다. 학생 간의 사소한 다툼이나 감정적 분쟁에 관하여도 심각한 학교폭력 사안과 동일하게 강력한 처벌 위주의 제도를 적용하면서 당사자들이 사안처리 결과에 승복하지 못하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빈번한 분쟁 속에서 학교는 학부모의 신뢰와 교육적 중재 역량을 잃었고, 학생들은 교우관계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스스로 해결해 나가기보다는 고소·고발 및 소송 등 법적 절차를 통해 상대방과의 분리 또는 상대방에 대한 처벌을 요구하는 경향을 보인다. 교사들을 상대로도 법적 분쟁에 나서면서 교권의 하락까지 가속화되었다. 지난해 발생한 안타까운 교사 사망사건들이 학교폭력 민원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정부는 오는 3월부터 학교폭력 전담조사관 제도를 통해 교사의 학교폭력 사안조사 업무를 덜어내겠다고 한다. 교사의 본질적 업무인 수업과 생활지도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안조사란 풀어 말하면 '학생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를 파악하는 일이다. 과연 교사의 본질적 생활지도 업무가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이 대책을 두고 '교육의 사법화', '교육의 외주화'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이다.

교사가 학교폭력 업무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두 가지 측면이다.

먼저 교육적으로 충분히 해결이 가능하다고 판단하는 사안임에도 학생·학부모의 감정분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학교폭력예방법은 학생의 신체·정신 또는 재산상의 피해를 수반하는 행위가 학교폭력에 해당된다고 폭 넓게 규정하여 항상 분쟁의 소지를 안고 있다. 학교폭력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진 교육현장에서 '학교폭력'이라는 용어가 사용되는 순간부터 학생들의 교육적 관계회복은 어려워진다. 교사의 관계회복 노력은 학교폭력 은폐·축소로 몰리기 십상이다.

이러한 어려움은 학교폭력 전담조사관 제도로 해결하기 어렵다. 학생들 간의 내밀한 감정다툼, 사소한 언쟁까지도 외부 전문가가 개입하여 사안을 조사한다면 그 부담은 학생과 학부모의 몫일 뿐이며, 교사의 본질적 역할을 훼손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또 하나의 어려움은 학부모들이 학교가 조사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학교 밖 폭력 사안이나 사이버 폭력에 대해서까지 학교의 신속하고 철저한 조사를 요구하며 교사의 책임을 묻는다는 점이다. 학교폭력 전담조사관 제도의 시발점이 되었던 고민이기도 하다. 이 부분에서 학교의 사안조사 책임을 덜어주는 것은 의미가 있으나, 수사권한을 가진 경찰이 아닌 교육청 위촉 학교폭력 전담조사관이 갖는 행정적 조사권한은 한계가 분명하여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무엇보다 우려되는 것이 있다. 우리 사회에서 교사들은 학교폭력과 관련해 더 이상 학생들에게 아무런 권한도 없고 관심도 없다고 오해하는 현상이 만연하는 것이다.

교사들은 여전히 학생들의 교우관계에 관심이 많고, 교육적 해결이 가능한 다툼에는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사실을 확인하고 관계회복에 나설 것이며 또 그래야 한다. 무상급식이 시행되고 무상교복이 지급된다고 하여 학부모가 자녀를 먹이고 입히는 일이 더이상 부모의 역할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학교의 본질적 역할을 되살리기 위한 고민이 계속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올해에는 대폭 개정된 학교폭력예방법 외에도 개정 교권보호 4법과 아동학대처벌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된다. 지금까지 우리가 외면해왔던 교사의 어려움에 공감하는 취지가 담겨있다. 다만 교사의 과중한 업무를 덜어주는 것이 교육의 본질적 역할까지 덜어내는 것은 아님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김의성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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