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C녹십자·SK플라즈마, 열띤 헌혈에 푹 빠진 이유

김윤화 2024. 1. 1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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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이후 헌혈자 수 급감
혈액분획제제 원료조달 난항
약가정체에 생산기업 채산성 악화

SK플라즈마, GC녹십자가 헌혈 캠페인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헌혈에 대한 인식을 제고해 코로나19 이후 뚝 떨어진 혈장 자급률을 높이기 위해서다. 저출산·고령화에 헌혈 가능 인구가 매년 감소하며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 차원의 대책이 병행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SK플라즈마는 지난해 연말 SK디스커버리, SK가스 등 5개 관계사와 함께 임직원 헌혈 캠페인을 진행했다. 2020년부터 시행한 행사로 SK플라즈마는 지난해부터 코로나19 이후 급감한 헌혈자 수를 감안해 헌혈 횟수를 기존 연 2회에서 3회로 늘렸다.

이보다 앞서 4월에는 세계 혈우병의 날을 맞아 헌혈 행사를 열고 혈우병을 알리는 '레드타이 챌린지'에 참여했다. 혈우병은 선천적으로 혈액응고인자가 부족해 발생하는 질환으로, 혈장을 주원료로 하는 혈장분획제제가 치료제로 쓰인다.

GC녹십자는 지난달 전 임직원을 대상으로 '사랑의 헌혈' 행사를 개최했다. 1992년부터 30년 넘게 지속한 행사로 현재까지 임직원 약 1만5000명이 참여했다. 또 지난해 4월에는 경기도 용인시에 위치한 R&D센터에 세계 혈우병의 날을 알리는 내용의 대형 미디어 파사드(외벽 영상)를 게재했다.

두 회사가 헌혈 캠페인을 적극적으로 펴는 이유는 최근 고령화, 저출산에 더해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감염 우려까지 겹치면서 2020년부터 2022년까지 헌혈자가 급감했고 혈액분획제제 공급 불안이 현재까지 영향을 미치면서다.

혈액분획제제는 혈장에 함유된 혈액응고인자, 알부민, 면역글로불린 등을 분리 정제한 주사제로 혈우병, 파상풍, 간질환 등을 치료하는 데 쓰인다. 쓰임새가 많아 국민보건을 위해 비축·공급해야 하는 국가 필수의약품으로 등록돼 있다. 현재 국내에서 혈액분획제제를 만드는 기업은 SK플라즈마, GC녹십자 두 곳뿐이다.

대한적십자사에 따르면 지난해 헌혈자 수는 총 254만1446명으로 코로나19가 창궐하기 전인 2019년보다 8%(24만명) 줄었다. 또 의약품 제조에 쓰이는 혈장 공급량은 2022년 기준 47만4103리터로 2019년보다 15%(8만 리터) 하락했다. 혈장 총사용량 대비 국내 헌혈혈장 사용량을 뜻하는 혈장 자급률은 2022년 43%로 3년 전보다 약 20%포인트 감소했다.

그러나 혈액제제가 필요한 환자수는 계속 증가하면서 지난해 하반기부터 전국 병원에서 혈액분획제제인 알부민, 면역글로불린 제제가 바닥나는 등 품귀현상이 발생했다. 알부민과 면역글로불린 제제는 각각 소아에게 주로 발생하는 수두, 급성 열성 혈관염인 가와사키병 치료제로 쓰인다.

이에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 등 의료계는 정부에 대책 마련을 촉구했고 미국에 치우친 혈장 수입국을 다변화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특정 국가에 대한 의존도가 높으면 코로나19 등 갑작스러운 상황에 공급이 끊길 위험이 있고, 급격한 가격 변동에 유연하게 대처하기 어려워서다.

실제 미국 적십자사도 지난 2022년 코로나19로 자국 헌혈자수가 줄면서 사상 처음으로 국가 혈액 부족 위기 상황을 맞닥뜨렸다. 다행히 국내 수입이 중단되지는 않았지만 미국 혈장 수입가격은 2022년 기준 리터당 24만원으로 5년 전보다 약 50% 뛰었다. 이는 대한적십자사가 국내기업에 공급하는 혈장 가격의 두 배가 넘는 수준이다.

국내 혈액분획제제는 지난 2017년을 마지막으로 약가 인상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데 값비싼 수입혈장이 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면서 SK플라즈마와 GC녹십자의 혈액제제 사업 채산성은 크게 악화된 상태다. 의약품 제조에 쓰이는 혈장 공급량에서 수입혈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7년 28%에서 2022년 56%으로 그동안 두 배 증가했다.

혈액제제 제품이 전체 매출액에서 99%를 차지하는 SK플라즈마는 지난 3년간(2020~2022년) 누적 영업손실이 250억원을 넘었다. GC녹십자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제출한 원가보전 신청 자료에 따르면 같은 기간 혈액분획제제 제품 원가 손실액은 연간 400여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식품의약품안전처도 현재 혈장 수입국 다변화를 추진하고 있으나 WHO(세계보건기구) 혈액제제 자급자족 원칙, 품질관리 문제 등에 진척이 더딘 상황이다. 현실적인 대안으로 혈액분획제제의 보험약가 상한액을 높이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가격 인상으로 원가를 보전할 수 있게 된 제약사가 해외 혈장 수입을 늘리는 방식으로 환자 수요에 대응할 수 있어서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혈액제제 공급 부족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국내 헌혈이 활성화돼 자급률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녹록지 않은 상황"이라면서 "약가가 인상된다면 국내에서 부족한 혈장을 해외에서 들여올 여력이 커지는 만큼 보다 탄력적으로 수요에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김윤화 (kyh94@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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