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0억 기부 이영림 “이란서 2천평 대저택 20만원에 거주”(유퀴즈)[어제TV]

서유나 2024. 1. 11. 0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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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캡처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캡처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캡처

[뉴스엔 서유나 기자]

1,300억 모교 기부로 화제를 모은 이란 왕실 주치의 출신 이영림 원장이 믿기 힘든 경험담들을 전했다.

1월 10일 방송된 tvN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이하 '유퀴즈') 227회 '낭만의 시대' 특집에는 18년간 이란 왕실 주치의로 활약하다가 1,300억 원을 모교 경희대에 기부한 화제의 인물 한의사 이영림 원장이 게스트로 출연했다.

이날 이영림 원장은 1976년 관광 목적 여행이 불가능하고 여성에게 여권도 내주지 않던 시절, 이란 왕의 초청을 받아 이란으로 떠나게 된 사연을 공개했다. 당시 졸업 후 한의원을 운영 중이었는데, 이란 사람들이 많이 앓는 '담궐' 증상이 있는 이란 대사에게 침을 놓아 완치시킨 것을 계기로 팔레비 왕실의 초청을 받게 됐다는 것.

친하게 지내며 함께 '경희대 노벨상 프로젝트'를 추진했던 고(故) 신상주 교수의 '연구소 짓게 돈 벌어와라'라는 추천으로 이란행을 결심한 이영림 원장은 "나를 여행으로 초청해놓고 (왕실에서) 붙잡았다. 한 달 관광 갔다가 3년을 붙잡혔다"면서 "(당시 이란에서는) 하늘에서 천사가 왔다고 했다"고 떠올렸다. 그러면서 이란 왕실에게 한국의 2배 월급, 낮 12반 이후 퇴근, 부업 가능, 집과 차 등을 보장받았다고. 이란에서 이영림 원장의 별명은 '골드 핑거'였다.

1979년, 팔레비 왕조는 이슬람 혁명으로 무너지고 호메이니 중심의 이슬람 공화국이 수립됐다. 이영림 원장은 그런데도 이란에 잔류했다며 "혁명이 일어나고 왕이 나갔잖나. 이란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 의사를 다 내보냈다. 나는 그때 건설 회사를 막 만들어 한국인 450명, 이란인 2,000명 거느리고 회사를 하고 있었다"고 밝혀 유재석이 입을 떡 벌리게 만들었다.

이는 역시나 큰돈을 벌어서 노벨상을 위한 연구소를 한국에 짓기 위해서였다고. 이영림 원장은 건설업으로 큰 돈을 벌게 된 계기로는 수억불짜리 고압선 가설 공사를 언급했다.

이영림 원장은 "입찰을 봐둔 건설 공사가 있었는데 내게 치료받으러 온 환자가 공사 담당자 닥터 자한사이였다. 그사람을 치료하면서 '왕실에 제법 힘 있는 분 같은데' 싶어서 침 찔러놓은 상태로 '저는 의사지만 건설업을 하고 싶어 회사를 하나 만들어놓았다'고 거짓말 했다. 당시 회사를 차리려고 변호사만 고용해놓은 상태였다. 이란에선 외국인을 초청해 한다던데 그걸 하고 싶다고 하니까 쳐다보더라"고 회상했다.

결국 이영림 원장은 고압선 가설 공사 입찰 정보를 얻었고, 한국 대사관을 통해 인력 송출을 부탁했다. 1,300억 원을 만든 대범함이었다.

이영림 원장은 "이란은 집에서 회사 운영이 가능하다. 집 큰 걸 얻으려다 보니 2,000여평 되는 집이었다. 이란 최고 부잣집이었다. 국제 규격의 (길이 50m의) 수영장이 마당에 있었다. 식탁이 18K금이었다. 막스라는 개하고 나하고 둘이 살았는데 세 사람이 안을 수 있는 큰 아름드리나무가 집에 24그루가 있더라"고 말했다.

79년도에서 80년대 초 그 집의 가격은 불과 200불이었다. 조세호가 "20만 원?"이라며 깜짝 놀라자 이영림 원장은 "나를 보니까 그집을 지켜주겠다더라. 돈을 필요없고 이 집을 지켜줄 사람을 찾는다더라. 혁명 정부가 뺏어가니까"라고 저렴한 가격에 집을 구할 수 있던 이유를 밝히며 "(이란에서) 나올 때까지 살았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우리나라 들어오니) 말씀 마라. 내가 압구정 한양아파트 37평짜리 아파트에 딱 들어와 앉으니 앞에도 창문, 뒤에도 창문, 여기는 방문. 이게 꿈이냐 생시냐. 비행기 타고 앉아있는 것 같더라"고 토로했다. 2,000평 대저택에 살다 37평 아파트에서 사려니 갑갑했다는 것.

이영림 원장은 "원장님 재력이면 (대저택도) 지을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아무데도 안 쓰고 그 돈으로 (연구소를 지으려 했다)"며 자신을 위해 투자하는 건 아무것도 없음을 고백했다. 심지어 이영림 원장이 현재 입고 있는 옷도 45년이 된 옷, 현재 타는 차는 너무 오래 타 연기가 나오는 차였다.

이영림 원장의 꿈은 오직 연구소 설립이었다. 이영림 원장은 "경희대 의대 고 신상주 교수 때문에 그 생각을 했는데 돌아가셨다. 그래서 (연구소를) 못 지었다. 내가 돌아오니까 몇 달 전에 돌아가셨더라"면서 "교수님이 만들자 해놓고 무정하게 가버렸다. 저승 가서 만나면 빚 갚으라고 할 것. 그 교수님은 경희대가 노벨상을 받는 것 그것밖에 없었다. 한방과 양방이 합하면 노벨상이 틀림없이 나올 거라고 단정했다. '네가 이란에 갔다 오면 어떻게 해야할지 네 눈에 보일 것'이라고. 그걸 하자고 철석같이 약속했는데, 그걸 못 이루고 가서 내가 눈을 감고 죽을지 모르겠다"고 토로해 뭉클함을 자아냈다.

노벨상 수상자 배출을 목표로 산, 그림 등 1,300억 가치의 재산을 모교 경희대에 내놓은 이영림 원장은 "비록 우리나라가 작고 국민이 얼마 안 되지만 독일이 커서 유명한 것이 아니지 않냐. 우리도 전 세계에서 6, 7위에 올라갔다. 최소한 3등 안에 들어가야 한다"며 대한민국 젊은이들에게 한국의 미래를 부탁해 눈길을 끌었다.

뉴스엔 서유나 stranger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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