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피로 쓰이는 안전수칙
새해 첫날 일본 이시카와를 강타한 지진 취재로 정신없던 지난 2일이었다. 저녁 5시 47분쯤 ‘도쿄 하네다공항 화재’라는 속보 알림이 울렸다. JAL(일본항공) 여객기가 불탔고 탑승자 전원(379명)이 무사히 탈출했다는 것. 지진과 무관할 거라고 여겼을 즈음, 화재의 원인이 노토반도 지진 현장에 물자를 보급하려 이륙 준비 중이던 해상보안청 항공기와의 충돌이란 걸 몇 분 지나지 않아 알았다. 탑승 직원 중 기장을 뺀 5명이 사망했단 소식은 그로부터 세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접할 수 있었다.
400명에 육박하는 승객을 전원 탈출시킨 JAL에 경의를 표한다. 항공업계 ‘90초 룰(사고 시 90초 이내 탈출)’을 끊임없이 훈련한 결과라는 평가다. 미국 CNN은 “과거 항공기 희생자들의 ‘피로 쓰인’ 안전 수칙을 지켰다”고 했다. 안타까운 건, 300여㎞ 떨어진 지진 현장에 피난민 생활과 생존자 수색을 위한 물자를 실어 나르려던 해상보안청 직원들에겐 이 수칙이자 가호가 닿지 못했다는 것이다. ‘본적’이 바다인 이들은 항공기 사고 시 규정이 JAL 같은 항공사보다 비교적 숙달돼 있지 못했을 것이고, 무엇보다 길이 20m 남짓한 보안청기가 대형 여객기와 부딪힌 순간 전 기체가 화염에 휩싸여 손쓸 틈이 현저히 부족했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 해상보안청 슬로건은 ‘사랑한다, 지키자, 일본의 바다’다. 새해 벽두부터 자국을 덮친 지진 현장을 소생시키려던 이들에겐 이 사명감이 가슴 깊이 박혀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이들이 ‘지켜야 한다’는 대상은, 지진 현장 구호란 임무를 받았을 순간부터 본인보다 어딘가 살아있을지 모를 생존자와 그들을 살릴 물자에 가깝지 않았을까.
우리에게도 이처럼 안타까운 사고가 낯설지 않다. 2014년 7월 세월호 실종자 수색을 위해 집을 떠난 강원 소방관 5명이 헬기 추락으로 세상을 떠났다. 2021년 6월 경기 이천 쿠팡 물류센터 화재 현장에 투입된 50대 구조대장은 갑작스레 쏟아진 불덩이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끝내 숨졌다. 당시 사회부 기자로 이천 화재 현장을 찾았을 때, 불이 난 건물에서 수백m 떨어진 공터에 앉아 흐느끼던 유족들을 목격한 기억이 있다. 취재를 위한 발걸음이 유독 무거웠던 하루였다. 이번 일본 해상보안청 사고를 접하고도 그때와 비슷한 사무침을 느꼈다.
소설가 김훈은 “남의 재난에 몸 던져 뛰어드는 직업은 거룩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가 쓴 ‘살려서 돌아오라, 살아서 돌아오라’란 글귀는 한국 소방관들의 사명감을 상징한다. 살리러 갔다가 살아 돌아오지 못한 이들. 이들의 피로 쓰일 새 안전 수칙이 남은 임무를 대신할 동료들의 안전을 지켜주길 기도한다. 일본 해상보안청 직원들이 사랑한 드넓은 바다와 차마 발길이 닿지 못한 지진 현장이 이들을 기억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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