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시대적 발상” “감사 청구” 문체부·체육회 건건이 충돌
체육계가 새해 벽두부터 어수선하다. 체육계를 이끄는 양대 기구인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와 대한체육회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은 지난달 1일 “스위스 로잔에 국제스포츠협력사무소를 조성하는 데 문체부가 미온적”이라고 지적했다. 체육회가 “스포츠 국제 인력 확보와 경쟁력 제고”를 위해 세계 스포츠 행정 중심지 로잔에 사무소를 내겠다는데 문체부가 예산을 내주지 않는다는 불만이었다. 이에 유인촌 문체부 장관은 “세계에서 로잔에 사무소를 둔 나라(체육회)는 없다”면서 이를 위해 필요한 예산(12억원) 집행을 거부하려 했다. 그러자 체육회는 “(유 장관 취임 전에) 국회를 통과한 예산”이라면서 “강력하게 투쟁하겠다”고 반발했다. 그러자 문체부는 일단 이미 결정된 예산은 내주고 향후 운영 성과를 봐서 다시 논의하겠다면서 갈등을 봉합했다.
마찰은 그 뒤에도 이어졌다. 정부는 지난달 20일 체육 관련 정책을 총괄할 목적으로 국무총리 소속 민관 합동 기구인 국가스포츠정책위원회(정책위)를 출범시켰다. 이 과정에서 민간 위원 6명을 선정했는데 체육회가 추천한 인사 3명이 포함되지 않았다. 이 회장은 “문체부와 ‘민간 위원 6명 중 3명은 체육회에서 추천토록 건의한다고 협약했는데 이를 어겼다. 내용도 모르는 관료들 ‘패거리 카르텔’에서 기인한 결과”라며 “이번 여러 사안에 대해 1월 감사원에 공익 감사를 청구하겠다”고 말했다. 이후 이 회장은 당연직 위원으로 참여해야 하는 정책위 회의에 나가지 않고 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별도 국가스포츠위원회(스포츠위)를 따로 만들어 독자적으로 정책 제안 기능을 만들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대한체육회와 체육단체들은 오는 16일 열리는 체육인대회에서 문체부를 규탄하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문체부 관계자는 “(정책위 민간 위원) 체육회 추천은 고려 대상일 뿐 반드시 반영한다는 뜻이 아닌데 오해한 것 같다”면서 “특정 단체가 추천한 인사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건 말이 안 된다”고 했다. 이어 “(체육회가) 독단적으로 스포츠위를 추진한다니 유감스럽다”고 덧붙였다.
문체부가 체육회와 대한올림픽위원회(KOC)를 분리하려고 검토하는 부분도 충돌 양상을 부추기고 있다. 전에는 이게 나눠져 있었는데 지금은 한곳에 몰려 있어 생활체육에 상대적으로 소홀하지 않으냐는 판단에서다. 체육회 처지에선 어떤 식으로든 권한이 축소되는 셈이라 반대하고 있다. 체육회가 지난달 강행한 국가대표 선수 해병대 훈련에 대해서도 유 장관은 “구시대적 발상” “종목별 과학적 훈련을 더 연구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체육회는 문체부 산하 기관이다. 문체부를 통해 매년 정부 예산 4000여 억원을 받아 운영한다. 그럼에도 체육 단체들 사이에선 문체부가 예산권을 무기로 고압적으로 대한다는 불만이 오래전부터 있었다. 이런 분위기를 이 회장이 본인 연임 전략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내년 1월 체육회장 3선을 노리는 이 회장으로서는 문체부에 맞서는 게 손해볼 게 없다는 계산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는 얘기다. 체육계에선 우려 목소리가 많다. 체육계 관계자는 “파리올림픽이 6개월 앞인데 두 단체가 계속 이런 식으로 티격태격한다면 선수단에도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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