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칼럼]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

김종희 문화공간 빈빈 대표 2024. 1. 11.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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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위기 저출산 등 문제, 복잡하게 서로 얽혀있어
정치 뒤편의 불편한 진실, 해결 고민하는 이 나와야
김종희 문화공간 빈빈 대표

인간의 인식을 앞서가는 시간 앞에서는 언제나 겸손해집니다. 우리는 과거로부터 왔지만, 미래로부터 날아오는 언어에 지도를 그리며 걸어갑니다. 기대어 융기된 산처럼 서로에게 기대고 비추어가며 한 시대를 뜨겁게 건너는 중입니다.

총선이 있는 해입니다. 그래서인지 무지개 빛깔 구호를 담은 현수막이 벽두의 길에 유독 요동치듯 들립니다. 바람에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는 말의 군무를 듣습니다. 정쟁에 뿌리박힌 말이란 언제나 허공에 흩어지는 바람일 뿐입니다. 말은 낱말의 무덤을 나와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심미관에 버무려 타인에게로 건너갑니다. 그런 까닭으로 유사한 말을 사용하는 사람끼리의 결속은 상상 이상입니다. 유사성 안에서 결구된 말들이 걸어온 길을 봅니다. 말이 덩어리로 뭉쳐지면 이 산 저 산으로 휙휙 날아다니는 불덩이가 됩니다. 어느 순간 펄펄 끓는 용광로였다가 또 어느 순간엔 얼어버리기도 합니다. 잠자코 듣고 있으면 집단 지성은 그들끼리의 유사성 안에서만 존재할 뿐입니다. 결국 연줄에 달린 연처럼 달랑거리는 뉘앙스만 남긴 채 흩어집니다. 불편한 진실들은 늘 겉돌기만 합니다. 언젠가는 닥쳐올 문제들은 결코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바퀴와 바큇살처럼 맞물려 있기 때문입니다. 환경위기 저출산 청년위기 주택문제 등 복잡한 문제들은 서로 엮여 있습니다. 그러니 다각적으로 들여다보고 섬세하게 접근해야 합니다. 어떤 징후가 보이면 곧 큰일이 일어남을 비유하는 ‘이상견빙지(履霜堅氷至)’가 어느 때보다 강하게 다가옵니다.

세계가 주목하는 인구 절벽은 어느 날 갑자기 고개 든 문제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교육을 비롯한 과도한 경쟁시스템이 직접적 원인이라는 전문가 진단은 ‘비롯한’이라는 모호함의 함정을 품고 있습니다. 모호함 속에는 무엇을 어떻게 풀어내야 하는지에 대한 집요함이 없습니다. 수년째 그 모호함에 갇힌 정치 언어를 우리는 보고 있습니다. 아는데 모르는 것인지, 진짜 모르는 것인지 지켜보는 우리도 모호할 때가 많습니다. 집이 늘어나는 속도만큼 집이 없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배고파야 나오는 예술이 아니라는 것을, 치열하게 살아온 노년이 불안한 만큼 청년들의 미래가 불안하다는 것을, 바다로 향해 열려있는 해양 한국이 정작 바다를 모른다는 것을, 치솟는 월세 속 불안정한 삶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현재 말입니다.

기후 생태 위기는 곧 지구 생명체의 위기잖아요. 이젠 예견된 미래에 대한 걱정뿐만 아니라 행동이 정말 필요합니다. 우리나라는 바다로 열려있는 해양 국가입니다. 해양의 미묘한 변화는 장차 엄청난 위기로 닥쳐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대상으로서의 바다가 아니라 치열한 삶의 바다에 대한 공부가 우리의 미래 언어가 될 것입니다. 겉으로 드러난 문제의 뿌리는 깊이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다행인 것은 복잡한 듯해도 섬세하게 풀어보면 그 가닥이 잡힌다는 것입니다. 바큇살이 하나라도 부러진 바퀴는 결국 제구실을 못 합니다. 저출산은 나라의 존속에 대한 위기입니다. 출산과 양육, 육아와 돌봄의 문제는 개인의 차원을 넘어 사회 문제입니다. 문제 제기와 진단은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정작 체감할 수 있는 정책실행은 요원합니다. 정쟁의 딜레마 속에 한 시대를 살아내야 하는 사람들의 삶은 언제나 정치 뒷면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그림은 어떤가요? 결혼으로 출발하는 청년들에게 공공임대주택은 20년까지 보장해 주는 것을요. 정부와 기업이 같이 열어가는 공공주택의 보급으로 주거의 안정을 열어가는 것입니다. 주거가 안정되면 삶의 질도 향상됩니다. 안정된 주거와 더불어 육아와 돌봄 또한 지역사회 공동시스템으로 가는 것이지요. 백세시대를 살아가는 오늘, 삶의 경험이 풍부한 베이비붐 세대의 경험을 양육과 돌봄 시스템에 활용한다면요. 그것이 노년 일자리로 연계된다면요. 베이비붐 세대는 다양한 전공의 고학력자입니다. 전공 영역과 일상의 경험이 농축된 세계를 육아와 돌봄 시스템으로 확장하는 것이지요. 예술 아닌 삶이 어디 있나요. 첨단과학의 시작도 이야기였고 호기심이었잖아요. 음악과 그림 식물 이야기가 펼쳐지는 세계, 예술 경험 속에서 자라는 아이들의 미래를 한번 상상해 보면요. 기계적 돌봄이 아니라 예술경험 속에 성장하는 미래, 즐겁지 않나요. 노년에게는 치열하게 살아온 삶에 대한 가치 발견을, 청년들에게는 나이 듦이 주는 불안함을 덜어내는 순환구조를 만들어가는 것이지요.


미래 언어를 열어가는 데는 여야가 따로 없습니다. 아이의 마음으로 지켜보려고요. 섬세하게 미래 언어를 고민하고 제시하는 그런 사람이 누구인지. 불편한 진실 너머에 있는 언어로 미래를 고민하는 그런 사람이 누구인지. 모호함을 벗어던지고 집요함으로 고민하는 그런 사람이 또 누구인지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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