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현장] 한국인만 모르는 가치

조민희 기자 2024. 1. 11.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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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인을 괴롭혔던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나고 하늘길과 뱃길이 다시 열리면서 해외를 자유롭게 오가고 있다. 부산에서 외국을 오갈 때 탑승권을 유심히 본 사람이라면 출발지나 도착지에 국내에서 주로 쓰는 ‘김해공항’이 아닌 ‘BUSAN’(부산)이라고 써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또 해외 현지 승무원이나 공항 직원에게 ‘김해공항’(GIMHAE Airport)을 묻는다면 어디인지 잘 모를 가능성이 크다.

국내에서는 공항 건립 당시 지역명을 따 ‘김해공항’이라 부른다. 하지만 전 세계 해운과 항공 물류업계에서는 실제 세밀한 위치나 공식적인 주소보다는 ‘BUSAN’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BUSAN’이 갖고 있는 인지도가 얼마나 높은 지 보여준다.

‘부산항’ 역시 마찬가지다. 캡틴이나 노트(Knot) 등과 같이 항공은 주요 명칭이나 시스템을 더 오래된 역사를 가진 항만이나 해운업계에서 그대로 가져온다. 부산항은 국내 최대 무역항구다. 국내에만 그치지 않고 전 세계 컨테이너 물동량 처리기준 7위, 환적 물량 기준 전세계 2위의 주요 항만이다. 전 세계 10위권 항만 중 중국이 8개를 차지하고 있어 실제 국가만으로 따지면 3위에 해당할 정도의 규모다. 그럼에도 국내에서는 부산항의 국제적 지위를 잘 모르는 사람이 많다. 부산항 관련 이슈나 현안이 소외되거나 평가절하되는 상황이 발생하면 해운항만 관계자들이 으레 하는 말이 있다. 바로 “한국인만 부산항의 가치를 모른다”는 것이다.

해외에서는 오히려 ‘Busan Port(부산항)’를 우리보다 더 잘 알고 대단하다고 여긴다. 특히 해운항만 또는 물류 관계자에게 ‘Busan Port’라고 말하면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엄지’를 치켜들 것이다.

부산시민으로서 유쾌한 얘기는 아니지만 지난해 세계등록엑스포의 부산 유치활동 때도 부산항의 진가가 확인됐다. 당시 정부와 부산시 기업과 민간단체 등이 모두 열과 성을 다해 유치활동을 벌였는데 BPA도 예외가 아니었다. 강준석 BPA 사장은 윤석열 대통령 또는 한덕수 국무총리 등과 함께 크로아티아 루마니아 네덜란드 등을 방문해 세일즈에 나섰다. 크로아티아와 루마니아 정부 주요 관계자는 부산항을 둘러보고 벤치마킹하기를 원했고 우리 정부와 BPA는 항만개발 및 항만 운영 노하우를 전달하기로 약속해 점수를 따기도 했다. 특히 유치활동을 위해 한 국가에 접촉하고자 해양수산부 등 정부 부처가 나섰으나 여의치 않았다. 그런데 BPA가 ‘부산항’을 매개로 쌓은 그간의 네트워킹을 십분 활용해 만남 주선에 성공하기도 했다.

부산항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이렇게 길게 설명한 이유는 바로 경남에서 ‘부산항만공사’의 명칭을 변경하려는 시도를 지속해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산항의 관리와 운영을 담당하는 부산항만공사의 영어 명칭은 ‘Busan Port Authority’(BPA)다. 부산항의 제2신항인 진해신항은 2040년까지 14조 원이 투입돼 총 21선석의 대규모 스마트항만으로 조성될 예정이다. 경남 측은 진해신항이 경남 창원에 위치한다는 이유로 부산항만공사의 명칭을 ‘부산경남항만공사’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부산항’ 브랜드 가치와 의미를 모르고 하는 말이다.

경남의 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인구급감과 주요 산업 침체 등으로 지자체마다 아우성을 치는 와중에 항만산업을 통해 지역 발전과 지역 인지도 제고 및 영향력 확대를 꾀하고 싶은 마음을 왜 모르겠는가. 해수부와 BPA 역시 이 같은 상황에 공감하고 항만위원 확대 등을 통해 경남지역 의견 수렴에 나설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부산항’ 명칭은 전혀 다른 문제다. 1876년 ‘부산포’라는 이름으로 개항해 부산항의 공식 역사만 해도 148년에 달한다. 해운과 물류는 국제적인 인지도와 네트워킹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에서 명칭을 섣불리 변경해서는 안 된다. 절체절명의 시기에 작은 것에 매달려 힘을 빼기보다는 바다처럼 넓은 시야와 깊은 안목을 갖고 부산·경남이 동반 성장을 통해 국가경제발전의 한 축을 담당할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

조민희 해양수산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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