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미국 애틀랜타에서 바라본 북한인권

강동완 동아대 교수 2024. 1. 11. 03:02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청룡이 비상한다는 갑진년(甲辰年) 새해입니다.

하늘로 웅비하는 용의 기운을 안고 한라에서 백두까지 하나 되는 평화통일의 소망을 담아봅니다.

저는 2024년 새해 첫날을 미국 애틀랜타에서 맞았습니다.

애틀랜타는 인권과 함께 평화의 가치도 지닌 곳입니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강동완 동아대 교수·민주평통 상임위원

청룡이 비상한다는 갑진년(甲辰年) 새해입니다. 하늘로 웅비하는 용의 기운을 안고 한라에서 백두까지 하나 되는 평화통일의 소망을 담아봅니다.

저는 2024년 새해 첫날을 미국 애틀랜타에서 맞았습니다. 애틀랜타는 미국 흑인 인권운동의 상징인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정신이 깃든 곳입니다. 그는 1963년 8월 워싱턴 DC에서 열린 집회에서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라는 명연설로 세계인의 심금을 울렸지요.

북한 인권을 떠올리며 제가 애틀랜타에서 제일 먼저 방문한 곳은 다름 아닌 시민인권센터였습니다. 전시장을 둘러보던 중 유독 눈길이 간 사진이 있었지요. 당시 인종차별 철폐를 요구하며 손에 들었던 피켓 구호였습니다.

그들이 요구했던 건 바로 ‘나는 사람입니다(I’m a man)’는 지극히 단순한 구호였습니다. 1865년 노예해방 이후에도 흑인에 대한 차별은 지속되었지요. 백인들에게 여전히 흑인은 ‘노예’였습니다. 당시 흑인 차별이 얼마나 심했는지 흑인이 백인과 같은 자리에서 밥을 먹는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었습니다.

일명 ‘분리된 평등’이라고 불렸던 ‘짐 크로우 법’을 통해 흑인의 불평등을 합법화하기도 했지요. 백인만이 출입할 수 있는 식당은 물론 학교에서도 백인과 흑인이 출입하는 문이 다를 정도였습니다. 흑인이 이를 위반하면 엄격한 법으로 처벌했지요. 이런 상황에서 1963년 8월의 인권시위는 미국 사회에 경종을 울렸고, 1964년 드디어 짐크로우법은 폐지됩니다. 그리고 이듬해에 마침내 흑인도 투표에 참여하는 참정권을 획득하게 되지요. 21세기를 사는 오늘날 그 누구도 ‘나는 사람’이라고 절규하지는 않습니다. 인권을 가진 인간으로서 그건 너무나 당연한 말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반쪽 조국인 북한에서 이 구호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입니다. 독재의 노예로 살아가는 북한 주민에게 ‘나는 사람입니다’는 요구는 한맺힌 절규입니다. 인간으로서 가지는 기본적인 권리조차 누리지 못하는 그들이기 때문입니다. 극심한 식량난과 코로나 19로 인한 국경봉쇄 여파로 인해 북한 주민들의 삶은 그 어느 때보다 어렵습니다. 아사자가 속출한다는 소식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김정은 독재정권은 “전쟁 준비 완성”이라는 위협으로 한반도를 전쟁의 소용돌이로 몰고 있습니다. 3대에 걸친 김 씨 일가는 핵무기 하나 손에 움켜쥔 채 끊임없이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자신의 군사적 놀음대에 올려놓고 있습니다. 남한을 동포 민족이 아닌 두 개의 조선이라는 말로 선을 그으며 영구분단을 획책하고 있습니다. 지난 7일에는 연평도와 백령도 일대에서 포격 도발을 감행하기도 했지요. 내부결속을 강화하고 ‘김정은 조선’의 공고화를 위해 끊임없이 적대감을 높이고 있습니다.

애틀랜타는 인권과 함께 평화의 가치도 지닌 곳입니다. 조지아주 출신의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을 기리는 박물관은 평화의 상징적인 장소이지요. 1992년 1차 북핵 위기로 한반도의 전쟁 위기가 고조될 때 평양을 방문한 카터 대통령은 김일성을 만나 남북정상회담을 제안합니다. 판문점을 통해 서울로 온 그는 당시 김영삼 전 대통령을 만나 극적으로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켰습니다. 김일성의 사망으로 아쉽게도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은 무산되었지만, 전쟁의 위기를 평화로 전환한 혁혁한 성과를 거두었지요.

카터 전 대통령이 대선 당시 외쳤던 연설문 가운에 한 구절을 북한에 적용해 봅니다. “우리 국민(북한주민)은 새로운 생각과 새로운 지도자를 찾고 있다”는 말이지요. 북한에도 이제 김 씨 일가의 독재가 아닌 새로운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개혁개방을 통해 북한 주민의 삶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리더말입니다. 나아가 한반도 통일을 지향하는 새로운 생각이 절실히 요구됩니다. 70여년 분단의 종지부를 찍고 그야말로 헌법적 가치에 기반을 둔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통일만이 유일한 해법이지요.


그래서 2024년 4월 총선은 한반도의 운명을 결정지을 전환점이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이제 새로운 리더들이 필요합니다. 그 리더는 바로 우리의 선택으로 만들어집니다.

Copyright © 국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