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유정의 음악 정류장] [113] ‘희망의 속삭임’
노래는 공기와 같아서 어디든 있지만 잡을 수도, 만질 수도 없다. 그래서 노래의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할 때도 있다. 또한 노래가 이 세상에 나오면 운명이 어찌 될지 그 누구도 섣불리 단정할 수 없다. 어떤 노래는 대중에게 다가가지 못한 채 사라지고, 또 어떤 노래는 긴 생명력을 지닌 채 애창되기 때문이다.
“거룩한 천사의 음성 내 귀를 두드리네/부드럽게 속삭이는 앞날의 그 언약을/어두운 밤 지나가고 폭풍우 개이면은/동녘엔 광명의 햇빛 눈부시게 비치네/속삭이는 앞날의 보금자리 즐거움이 눈앞에 어린다”라는 ‘희망의 속삭임’은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는 노래다. 까마득하게 잊고 있다가도 낙담하거나 슬플 때마다 어느 순간 ‘희망의 속삭임’이 천사의 날갯짓으로 우리를 찾아와 토닥이며 달래준다.
이 노래의 원곡은 1868년에 미국의 작곡가 셉티머스 위너(Septimus Winner)가 앨리스 호손(Alice Hawthorne)이란 예명으로 발표한 ‘속삭이는 희망(Whispering Hope)’이다. 남북전쟁 이후 상처받은 많은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기 때문일까? 이후에 짐 리브스(Jim Reeves)를 비롯해서 대니얼 오도넬(Daniel O’Donnell), 존 바에즈(Joan Baez),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 등 유명 가수들이 거듭 불렀고, 지금까지도 대중의 관심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일제강점기에 들어온 것으로 보이는데, 1934년 12월 17일 자 조선일보에 실린 ‘경성방송국’의 라디오 편성표에서 ‘희망의 속삭임’이란 제목을 찾을 수 있다. 또한 이화여전 합창단이 1936년에 이 노래를 음반으로 발매하기도 했다. 1960~1970년대에 특히 유행했는데, 패티김, 배호, 바니걸스, 서수남과 하청일 등 여러 가수가 연이어 이 노래를 녹음해 발표하였다. 캐럴, 서양 민요, 동요, 대중가요 등으로 다양하게 불렀으나 그 어떤 경우라도 ‘희망의 속삭임’이 하루하루 힘들게 살아가는 이들에게 부드럽고도 다정한 목소리로 희망과 위로의 전언을 건넨 것만은 확실하다. 동트기 전이 가장 춥듯이, 햇빛은 폭풍 뒤에 찾아오는 선물이므로 우리에게 인내하고 버티라 격려하기 때문이다.
새해가 밝았으나 전쟁의 포성은 멈추지 않았고 곳곳에는 저주의 말이 넘쳐난다. 그럴 때마다 어디선가 다시 ‘희망의 속삭임’이 들려온다. 장사익이 노래로 만들어 불러 유명한 김강태의 시 ‘돌아오는 길’에서는 채소 파는 아줌마에게 “희망 한 단에 얼마예요”라고 묻는다. 소소한 일상에서 희망을 발견하는 시인의 모습에서 긍정의 기운을 느낄 수 있다. 시 구절처럼 “춥지만, 우리 이제 절망을 희망으로 색칠”했으면 좋겠다. 희망은 힘이 세니까 새해, 다시 희망을 품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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