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용의 물건漫談] 창 대신 셀카봉을 든 돈키호테

박찬용 아레나 옴므 플러스 피처 디렉터 2024. 1. 11. 03:0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저비용·고성능 유튜브 장비
일러스트=이철원

1년에 한 번 스위스 제네바에서 고급 시계 박람회가 열린다. 나는 2023년 4년 만에 제네바를 찾았다. 그 박람회를 갈 때마다 비슷하게 놀란 구석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중국인 저널리스트였다. 매해 사람이 너무 많이 왔고, 해가 갈수록 거짓말처럼 세련되어졌다. 사람이 외양에서 세련미를 갖추기가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님을 알았다.

또 하나 놀란 건 저널리스트들의 촬영 장비였다. 중국인들은 늘 대단한 촬영 장비를 가지고 왔다. 기술이 최첨단이 아니라 아이디어가 대단했다. 작년에 본 어떤 중국인은 낚싯대 같은 셀카봉을 가지고 와서 드론 없이 항공 촬영 장면을 찍었다(그러고 그걸 주변 모두에게 보여주었다). 휴대용 스튜디오나 소형 촬영 조명도 일상이 되었다. 촬영 장비의 진화는 라이프스타일 저널리스트에게 현실적인 생존 문제다. 최소 인원으로 양질 데이터를 대량 산출한다면 콘텐츠 ‘제조업’의 생산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런 세상이 온 것도 중국의 절륜한 제조업 역량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중국이 세계의 제조업 기지가 된 지 30여 년 지나며 ‘CNC(Computerized Numerical Control·컴퓨터 제어 공작 기계로 하는 가공)’의 대중화 등으로 온갖 물건 품질이 엄청나게 향상됐다. 크기는 작아졌고, 가격은 낮아졌고, 정밀도는 올라갔고, 사용하기는 쉬워졌다. 나는 직업상 프로 사진가와 자주 작업한다. 그들은 좋은 사진을 위해 고가 유럽산 조명 장비를 썼다. 요즘은 중국산을 사는 사진가가 생기기 시작했다. 가격이 저렴한데 유럽산과 품질 차이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이 요소가 모두 더해져 콘텐츠 시장 생산성 경쟁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 되었다. 각종 글로벌 브랜드의 해외 미디어 행사나 국제 규모 박람회에서는 그 경향이 눈으로 보인다. 어디서나 기사를 송고하므로 프레스룸이 덜 붐빈다. 작년에 스위스에서 만난 일본인 저널리스트는 카메라 4대를 동시에 운용했다. 손에는 고화질 디지털 카메라, 어깨에 멘 (마이크를 달아 영상을 찍는) 미러리스 디지털 카메라, 가방 어깨끈에는 액션 캠, 그리고 스마트폰. 그는 저글링을 하듯 그 모두를 쉴 새 없이 사용했다. 그다음 날 바로 그의 미디어 계정에 편집과 사진 보정이 된 프로 수준 게시물이 올라왔다. 단 한 명이 한 일이다.

해외 현장을 다녀와 광화문광장에 서니 새삼 새로운 게 보였다. 작년 유독 잦았던 시내 각지 집회 풍경에 새로운 요소가 추가됐다. 어느 정파의 시위에서든 멀리서 보면 낚싯대 같은 걸 들고 다니며 중얼거리는 이들이 있었다. 자기 계정을 이용해 현장을 생중계하는 정치 유튜버였다. 저렴하고 품질 좋은 물건은 누구나 살 수 있으니까 누구나 온갖 메시지를 송출할 수 있는 세상이 왔다.

기술을 활용한 생산성 증대의 뒷면이 이런 것이다. 최소한의 준비나 책임, 훈련이나 윤리가 없는 사람들이 불특정 다수에게 메시지를 발신하면 상상을 초월하는 파괴력이 생긴다. 오늘날 사람들은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콘텐츠를 ‘큐레이션’한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이 스스로 고정관념과 인공지능의 알고리즘에 쓸려 편향된 콘텐츠의 터널에 갇힌다. 극단적이고 허무맹랑한 주장이라도 한번 그 메시지가 의식에 스며들고 나면 세상이 그리 보인다. 인간의 표현과 학습을 돕는 기술이 역설적으로 인간의 세계를 흐릿하게 만든다.

예전에도 새로운 미디어가 퍼 나르는 가짜 소식에 스며들어 극단적인 생각을 하는 경우가 있었다. 고전 ‘돈키호테’가 사실 이런 이야기다. 라만차의 풍차를 향해 달려간 돈키호테는 용기의 상징처럼 여겨지지만 원작을 읽어보면 전혀 다르다. 돈키호테는 할 일이 없어 당시 신기술인 인쇄기를 활용해 퍼져 나간 대중 문학만 읽는다. 세상에 괴물이 가득해 기사들이 그를 무찌르고 공주를 구한다는 기사문학이다. 돈키호테는 그 세계관에 절어 자기가 정의의 기사라는 착각에 빠진다. 착각 속 돈키호테에게 늙은 말이 명마가 되고 길가의 풍차가 악마로 보인다. 가짜 뉴스에 빠져 그릇된 세계관을 가진 사람처럼. 오늘날의 돈키호테들은 셀카봉을 창처럼 들고 각자의 풍차로 달려들고 있다.

작가 미겔 데 세르반테스는 책 곳곳에서 진심을 드러낸다. “기사 나부랭이의 쓸데없는 무협 이야기에 그렇게도 판단력이 흐려지셨습니까? 마법 운운하는 허황된 이야기를 믿으시다니요?” 17세기 작가의 탄식이 21세기에도 남 일 같지 않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