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번이 져도… ‘빅테크 반독점’ 계속 때리는 美·EU
유럽연합(EU)이 마이크로소프트(MS)의 챗GPT 개발사 오픈AI 투자에 대한 반(反)독점법 조사를 예고했다. 반독점과 공정 경쟁을 담당하는 EU 경쟁총국은 9일(현지 시각) “오픈AI에 대한 MS 투자를 EU 기업결합 규정에 근거해 재검토할 수 있는지 확인하고 있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영국 경쟁시장청(CMA)도 지난달 초 MS와 오픈AI의 투자·협력 관계를 합병으로 볼 것인지 조사하기 위한 예비 자료 수집에 착수했다고 밝힌 바 있다.
미국과 유럽은 2020년대에 들어 빅테크에 대해 끊임없이 독점 규제의 칼날을 들이대고 있지만 그 칼날이 급소를 가격한 사례는 거의 없다. 미 연방거래위원회(FTC)는 지난해 메타와 MS에 대해 반독점법 위반으로 소송을 걸었지만 두 번 다 패소했고 빅테크 반독점 규제 법안도 의회에서 모두 폐기됐다. EU는 디지털 시장법(DMA)으로 빅테크를 규제하려 했지만 오히려 DMA 때문에 지난해 11월 애플에 역으로 소송을 당했다. 미국과 유럽 당국은 왜 빅테크에 매번 지면서도 독점 규제를 계속 시도하는 것일까. 테크 업계에서는 “미국과 유럽이 빅테크가 주도하는 디지털 시대에 적합한 규제를 정립하기 위해 계속 벽을 두드리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반독점 패러다임이 변한다?
미국 반독점법은 자국 경제 산업 구조가 바뀌는 중요한 시기마다 자율 경쟁을 독려하는 역할을 해왔다. 미국은 19세기 말부터 석유, 철도, 담배, 통신 등 핵심 산업에서 독점이 일어날 때마다 반독점 철퇴를 휘둘렀다. 일부 독과점 기업은 여기에 타격을 입고 쪼개지기도 했다.
미국이 빅테크 독점 규제에 나선 것은 2020년부터다. 당시 미 하원은 독점 행태를 강도 높게 비판한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빅테크를 압박했고, 그해 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반독점 규제에 나섰다. 공정 거래 소송을 주로 담당하는 법조인은 “미국이 빅테크 규제를 밀어붙이게 된 것은 독점을 바라보는 시각이 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미국은 특정 기업이 독점적인 산업 구조를 형성해도 효율성 향상으로 제품이나 서비스 가격을 낮춰 소비자 이익을 높이면 반독점으로 판단하지 않았다. 즉, 독점의 폐해를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 경쟁을 저해해 소비자 선택의 폭이 줄이들거나 소비자 권익을 침해했냐는 것이다. 하지만 2010년대 빅테크들이 부상하면서 이런 기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메타, 구글 등이 막대한 자금력을 동원해 신생 업체를 인수하고 문어발식 확장을 하면서 경쟁 기업들의 등장을 막고 있다는 비판이 일었기 때문이다.
이런 반독점의 개념 전환을 주도하는 것이 리나 칸 FTC 위원장이다. 그는 2017년 ‘아마존의 반독점 역설’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통해 “아마존이 시장 지배력을 이용해 가격을 낮춰 경쟁 상대를 위협하고 궁극적으로 소비자를 독점하는 새로운 행태를 보인다”며 “플랫폼 경제에서 독점의 정의를 새로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 정부는 빅테크가 플랫폼과 IT 산업을 독식하면서 신생 기업의 시장 진입을 막고 해당 산업이 성장하지 못할 것을 우려해 새로운 반독점 패러다임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유럽은 자국 산업 보호 위해… 한국은?
빅테크가 거의 없는 유럽은 미국과 상황이 다르다. 애초에 DMA는 미국 실리콘밸리 빅테크 공세에 맞서 자국의 IT·플랫폼 기업을 보호하고 이들을 성장시키기 위해 만들어졌다. 총 6개 기업이 규제를 받고 있는데, 애플·MS·알파벳·아마존·메타·틱톡 등 모두 유럽 밖에 있는 해외 기업이다. EU의 독점 규제의 최종 목표는 유럽 기업들의 경쟁력 회복이다.
한국 역시 일명 ‘온플법’이라는 ‘플랫폼 공정 경쟁촉진법’의 입법을 추진해 네이버·카카오·쿠팡처럼 시장지배자 위치에서 독점적 영향력을 휘두르는 국내 플랫폼 기업을 규제하려고 한다. 플랫폼 업계 관계자는 “독점 규제 목표가 소비자 권익 보호인지, 자율·공정 경쟁 활성화인지, 소상공인 보호인지 확실히 해야 할 필요가 있다”며 “목표가 명확하지 않으면 플랫폼 기업 때리기에 그칠 수도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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