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진] 3m 달하는 거대 유인원의 멸종 원인…“환경 변화 적응 못 해”
강인한 몸의 유인원, 갑작스럽게 멸종
꽃가루와 이빨 화석 분석해 생태계와 행동 분석
지구에 살고 있는 영장류 가운데 고릴라는 가장 몸집이 크다. 키는 1.6m로 같은 영장류인 인간보다 약간 작지만 몸무게는 180㎏로 근육질 몸매를 자랑한다. 하지만 인류 조상이 도착하기 훨씬 전 중국 남부에는 인간이나 고릴라보다 훨씬 큰 영장류가 살았다. 키 3m에 몸무게는 300㎏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는 이 영장류는 ‘기간토피테쿠스 블라키(Gigantopithecus blacki)’로 불리고 있다.
기간토피테쿠스 블라키는 약 200만년 전에 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멸종 시기는 정확히 추정할 수 없지만 인류 조상이 중국에 도착하기 전 이미 멸종했을 것으로 고인류학자들은 보고 있다. 중국과 미국, 호주 과학자들이 그간 베일에 싸였던 기간토피테쿠스 블라키의 멸종 원인을 처음으로 알아냈다.
중국과학원(CAS) 척추고생물학및고인류학연구소가 주도한 국제 연구진은 11일(현지 시각)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기간토피테쿠스 블라키가 급격한 생태계 변화로 먹이를 구하지 못해 멸종했다”고 공개했다.
◇꽃가루 화석으로 초거대 유인원 멸종 단서 찾아
이번 연구를 주도한 장잉치 중국과학원 연구원은 “강한 힘을 자랑하던 기간토피테쿠스 블라키가 멸종한 이유는 고생물학계에서 수수께끼 같은 문제”라며 “지난 10년간 연구가 이뤄졌으나 멸종 원인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중국 남부 광시성의 동굴을 탐사하던 중 기간토피테쿠스 블라키의 멸종 원인을 찾을 결정적 단서를 찾았다. 기간토피테쿠스 블라키의 흔적을 찾기 위해 지금까지 화석이 발견된 지역을 바탕으로 지도를 만들었다. 이 중 가장 많은 화석이 발견된 동굴 11곳과 화석이 발견되지 않은 동굴 11곳을 탐험해 퇴적층에서 꽃가루 화석을 발굴했다.
꽃가루 화석은 당시 기후와 생태계를 알 수 있는 중요한 단서다. 연구진은 꽃가루 화석을 분석해 과거 생태계를 재구성했다. 분석 결과 기간토피테쿠스 블라키가 살았던 지역은 ‘열린 숲’ 생태계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열린 숲은 나무의 높이가 다양하게 구성돼 햇빛이 땅까지 비추는 상태를 말한다. 다양성이 커서 계절과 기후 변화에 따른 영향을 적게 받는다. 반면 기간토피테쿠스 블라키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은 동굴 인근은 ‘닫힌 숲’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열대우림처럼 나무가 울창해 햇빛이 땅으로 비추지 않는 지역으로 주변 환경 변화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연구진은 기간토피테쿠스 블라키가 결과적으로 이런 새 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멸종한 것으로 분석했다. 지금까지 화석 연구로 기간토피테쿠스 블라키의 멸종 원인을 찾지 못한 이유도 설명됐다. 지금까지 발견된 화석은 이빨 2000여개와 턱뼈 4개 밖에 없어 멸종 이유를 찾는데 어려움을 겪어왔다. 키라 웨스트 영국 맥쿼리대 교수는 “그간 동물의 멸종 원인을 찾기 위해 잘못된 단서에만 집중해 왔다”며 “정확한 연대 측정을 통해 과거 환경과 동물의 행동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다”고 말했다.
◇멸종 시기 앞당기고 먹이 변화까지 찾아
연구진은 기간토피테쿠스 블라키의 이빨 화석을 다시 분석해 정확한 멸종 시기도 추정했다. 이빨 화석의 미량 원소를 분석해 연대를 측정하고 치과용 마이크로웨어 조직분석(DMTA)을 사용해 번성기 시절과 멸종기 시절 나타나는 패턴을 비교했다. 비교적 가까운 친척 종인 ‘중국 오랑우탄’의 이빨에서 나타나는 패턴과도 비교했다.
연구진은 29만~21만년 전 기간토피테쿠스 블라키가 멸종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일부 학자들은 이 영장류가 33만년 전에 멸종한 것으로 봤지만 그보다 더 가까운 시기까지 생존했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70만~60만년 전 시작된 급격한 생태계 변화가 멸종을 재촉했을 것으로 분석했다. 서식지가 서서히 닫힌 숲으로 변하면서 계절에 따라 먹이를 구하기 어려워졌고 그에 따른 변화에 미처 적응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기간토피테쿠스 블라키는 기후가 바뀌면서 주식이던 과일이 줄자 대체 식품을 찾았다. 하지만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이 떨어져 상대적으로 영양분은 적고 섬유질이 많은 먹이를 찾을 수 밖에 없었다. 반면 환경 적응 능력이 뛰어난 중국 오랑우탄은 영양분이 풍부한 먹이를 계속 먹으며 생존했다는 것이 연구진의 분석이다.
장 교수는 “환경 변화에 따른 스트레스와 개체수 감소에 직면했다”며 “기간토피테쿠스 블라키는 환경에 적응한 다른 유인원과 달리 도태돼 멸종한 것”이라고 말했다.
참고자료
Nature, DOI: https://doi.org/10.1038/s41586-023-06900-0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10兆 전기차 공장 지었는데… 현대차, 美 시장에 드리워진 ‘먹구름’
- 日, 반도체·AI 분야에 90조원 지원 검토
- “바쁠 때는 ‘미터기’ 꺼놓고 일해요”… 주 52시간에 발목 잡힌 삼성 반도체
- 조선株, 트럼프 말고도 믿을 구석 있다… 韓中 계약금액 격차도 사상 최대
- 가상자산 황금기 오나… 트럼프 효과에 비트코인 10만달러 전망
- [르포] 전기차 하부 MRI하듯 안전 검사… 속도별 배터리 온도 체크하는 시험 현장
- [인터뷰] “韓 저출생 해소, 대통령보다 아이돌이 잘할 것”… 美 유명 경제학자의 아이디어
- “박사급 정예 인력인데 성과급 걱정”… 뒤숭숭한 삼성전자 반도체연구소 직원들
- [르포] 인구 1억 기회의 땅 베트남, 한국 의료가 간다
- 출고도 안 했는데… 기아 EV3, 독일 자동차 어워드서 ‘4만유로 미만 최고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