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포럼] 검경의 칼, 신중하고 절제된 행사를
“폭탄 맞은 삶에 주변까지 파편”
과잉수사 논란 속 이선균씨 사망
태양광 비리 수사도 농가로 불똥
“만신창이가 돼 버린 것 같아요. 제 삶이 폭탄을 맞는 바람에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도 파편이 튀어 일상이 깨진 일이 일어난 거니까요.”
2014년 출간된 ‘제국의 위안부’의 저자 박유하 세종대 명예교수가 지난해 10월 대법원에서 무죄 취지 환송판결을 받은 이후 한 월간지와 인터뷰에서 밝힌 소회다. 9년4개월간 겪었을 참담한 고통이 그대로 느껴진다. ‘자발적 매춘’이라는 비판적 인용 등을 문제삼은 친일몰이 광풍에 맞선 여성 지식인한테 경외심마저 갖게 된다.
배우 이선균씨 죽음을 둘러싼 책임에서 언론도 자유롭지 않다. 술집이나 가족관계 등 시시콜콜한 사안이 기사로 다뤄졌다. 단독이라는 표제어로 언론유사매체가 내보낸 녹취록을 받아쓰기에 바빴다. 언론을 참칭하는 일부 SNS채널의 책임이라고 믿고 싶다. 부끄럽게 정통언론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한국언론재단 빅카인즈에 따르면 경찰 내사 사실이 알려진 지난해 10월19일부터 이씨가 숨진 12월27일까지 11개 전국 일간지에서 ‘이선균’이라는 단어로 1014건의 기사가 검색된다.
그렇다고 경찰 책임이 덜어지진 않는다. 경찰은 10월28일, 11월4일, 12월23일 세 차례나 이씨를 공개 소환했다. 1차 조사 때 간이검사에서 음성 판정이 나왔다. 2차 소환에서 체모를 채취해 정밀감정을 의뢰했으나 판독 불가와 음성 결과가 나왔다. 이쯤 했으면 3차 소환을 비공개로 해 달라는 이씨 요청을 들어줬어야 하는 것 아닌가.
마약문제가 심각한 사회적 문제인지라 철저한 단속과 수사는 절실하다. 그렇다고 제보만으로 유명 연예인을 난도질하듯 수사할 정당성까지 주지는 않는다. 이씨는 포토라인에서 플래시세례를 받은 지 4일 만에 목숨을 끊었다. 명예는 땅에 떨어지고 광고 손실액은 100억원에 달한다. 오죽하면 봉준호 감독 등 문화예술인들이 12일 문화예술인 인권 보호를 위한 법령 개정과 보도윤리에 어긋난 기사 삭제를 요구하는 성명을 낸다고 했을까. 협박극 의혹의 실체를 명명백백하게 밝히는 것이 그나마 고인에 대한 경찰의 도리일 것이다.
검찰의 태양광 사업 수사도 불똥이 엉뚱한 곳으로 튀고 있다. 문재인정부가 탈원전을 위해 사업성 낮은 태양광을 무리하게 띄웠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다. 공직자와 사업자가 짬짜미로 나랏돈을 빼먹었다면 엄단해야 할 범죄다. 전국 검찰에서 진행하는 수사로 축사 지붕 등에 태양광 설비를 들인 농수축산인들이 전전긍긍이라고 한다. 저리로 대출받은 정책자금을 고리의 금융권 대출로 갚아야 하는 상황에 내몰린 탓이다.
태양광 정책자금은 이자가 일반대출의 절반으로, 농수축산인만 받을 수 있다. 정책자금을 더 받으려고 서류상 태양광 공사비를 부풀리면서 문제가 생겼다. 설치업자들이 사업을 따내려고 농가 요구대로 100원짜리 공사를 120원에 한 것처럼 부풀려 세금계산서를 끊어준 것이다. 지난해 감사원의 대대적인 고발로 수사대상에 오르면서 처벌까지 받을 상황이다. 태양광을 설치한 농가들은 정책자금 환수조치로 이자 부담이 두 배로 늘게 됐다.
검경이 수사의 칼을 의사의 메스처럼 섬세하게 다룰 순 없는 일이다. 그렇더라도 예리한 수사의 칼은 최대한 신중하게 휘둘러야 한다. 열 명의 범죄자를 놓치더라도 한 명의 억울함을 낳아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인신구속은 최대한 자제해야 한다. 거액의 횡령이 아니라 행정법 위반이라면 벌과금 부과와 행정제재로 충분하지 않을까.
박희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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