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지는 ‘출산율 붕괴’ 우려, 청년 삶의 문제로 공감할 기사는 적어

고희진 기자 2024. 1. 10.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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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독자위원회 1월 정기회의
경향신문 독자위원회 2024년 1월 정기회의가 지난 3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 회의실에서 김춘식 위원장(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주재로 진행되고 있다. 문재원 기자 mjw@kyunghyang.com

경향신문 독자위원회가 지난 3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2024년 1월 정기회의를 열었다. 김춘식 위원장(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주재로 열린 회의에 김봉신(여론조사기업 메타보이스(주) 이사), 김지원(단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박은정(녹색연합 자연생태팀장), 신지영(고려대 국문학과 교수), 이승환(한국공인회계사회 선임) 위원이 참석했다. 곽경란(법무법인 지평 변호사), 조상식(동국대 교육학과 교수) 위원은 서면으로 의견을 냈다. 경향신문에서는 김준기 뉴스콘텐츠부문장이 함께했다.

회의에서는 연말연시에 사회적 약자들에 대해 따뜻한 시선을 보여주는 송년·신년기획들이 많았다는 평가가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네덜란드 국빈방문 성과 관련 보도에서 경제적 효과에 대한 실증적 분석 없이 대통령실 발표를 단순 전달하는 데 그쳤다는 지적이 나왔다. 출산율 붕괴를 우려하는 기사들이 계속 나오지만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다며 청년들이 삶의 문제로 공감할 수 있는 출산율 관련 기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었다.

1020 마음건강 보고서

온라인 소통 순기능 짚어 ‘차별성’
전문가보다 청년 목소리 채웠으면

김지원 = 지난달에 송년기획들이 많았는데, 그 중 <상처난 젊음, 1020 마음건강 보고서>가 좋았다. 특히 12월22일자에 게재된 시리즈 2회차 <‘온라인’ 위안일까 위험일까>는 청년들이 온라인에서 어떻게 소통하는지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역기능에 대한 보도들이 많은데, 이 기사는 청년들이 위안을 찾을 수 있는 순기능에 대해 말하고 있다. 10대, 20대의 사망 원인 중 1위가 자살이라는 심각한 상황에서 적절한 담론을 제시했다. 기사에 전문가들의 의견을 넣었는데, 이를 배제하고 순수하게 청년들의 이야기로 채웠으면 더 좋은 기사가 됐을 것 같다. 12월20일자 경제면에 나온 <‘월간 246만명’ 트위치 시청자 잡아라…네이버·아프리카TV 힘겨루기 본격화>는 최근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플랫폼에 대한 기사여서 눈여겨봤다. 그런데 기사 내용은 네이버 등이 어떤 것을 선보였다는 등의 단순 소개 수준에 머물렀다. 플랫폼 이용자들의 이동에서 보이는 경제적, 문화적 영향 등을 좀 더 심도 있게 분석하지 못해 아쉬웠다. 12월21일자와 22일자에 종교단체들의 전면광고와 광고특집 등이 실렸다. 이들 단체 중에는 혐오 발언을 쏟아내고 세습을 하는 곳들도 있다. 경향신문이 기사로 전달하는 메시지와 상충되는 광고들이다.

송년·신년 기획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따뜻한 시선
장애인·젠더 이슈 등 적확히 전달

신지영 = 새해 초 발행된 1월2일자 신문은 경향신문이 사회적 약자에 대해 어떤 관점과 태도를 갖고 있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2면에 실린 <“올핸 외면 말고 들어주세요…힘든 이들의 간절한 외침을”-국회 앞 지키는 이들의 소망>에서는 이태원 참사 유가족, 전세사기 피해자들, 고 김용균씨 어머니의 얘기를 다뤘다. 10면 <빼앗긴 공간, 밀려난 사람②-교육부 단협 7개월 만에 “방 빼”…사무실 빼앗긴 장애인 교사들>은 예산 삭감으로 활동이 막힌 장애인 교원 노조에 대한 기사다. 노인무료급식소와 복권 판매점에 늘어선 줄을 각각 대비해 실은 10면 사진도 힘겨운 삶을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줬다. 같은 날 13면 국제면에 실린 사진 두 장도 인상 깊었다. 하나는 파리 개선문에서 새해를 축하하는 폭죽이 터지는 장면이고 하나는 전쟁 중인 가자지구에서 폭격으로 연기가 나는 사진이다. 지구촌 어딘가에서 누군가들이 축하할 때 누군가들은 희생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는 목소리가 전해졌다. 송년기획 중 12월26일자 <2023 한국 사회, 여성의 현실시계는 거꾸로 갔다>는 퇴행했던 지난해 한국 사회의 젠더 이슈를 잘 정리했다. 특히 ‘지우고’ ‘줄이고’ ‘끊고’ ‘공격받고’ ‘죽고’ ‘위협받고’ 등 6개의 부정적 동사와 ‘성취하고’ ‘싸웠다’ 등 2개의 긍정적 동사로 이뤄진 소제목이 우리의 젠더 현실을 한눈에 들어오게 요약해줬다.

박은정 = 김용균씨 5주기와 대법원 판결을 맞아 릴레이 기고를 실었는데 12월7일자 김씨 어머니 김미숙씨의 기고 <온 힘을 다해 싸울게, 일터에서 더는 사람들이 죽지 않도록>이 감동적이었다. 김미숙씨의 인터뷰 등은 기존에 많이 나왔지만 김씨가 직접 쓴 장문의 편지글이 독자들로 하여금 이 사건에 훨씬 더 감정적으로 빠져들게 해준 것 같았다. 같은 날 나온 <엄마 아빠가 떠난 뒤 남겨진 아이들의 세상이 오늘보다 나아지길…>은 발달장애 자녀를 둔 아버지들의 힘든 삶을 그들의 편지와 인터뷰를 통해 소개했다. 아이와 함께 겪는 희로애락을 아버지들의 목소리로 그대로 담아준 것이 인상 깊었다. 12월11일자 <인권침해 호소 ‘외면’ 희미해진 ‘존재 이유’>는 세계인권선언 75주년을 맞아 국가인권위원회의 현주소를 조명한 의미 있는 기사다. 우리나라에 왜 인권위가 만들어졌고 어떤 의미를 가지며 왜 중요한지에 대해 짚어주었다면 엉망진창이 된 현 인권위의 문제점을 좀 더 부각시킬 수 있었을 것 같았다. 12월13일자 <네덜란드 간 윤 대통령 1조원 투자 유치 삼성 반도체 장비업체 ASML과 MOU>는 윤석열 대통령의 네덜란드 국빈방문 성과를 소개한 기사다. 그간 대통령 순방에서 체결되는 양해각서(MOU)들이 부풀려졌다는 지적이 많은데 이 기사에서는 이번 MOU의 경제적 효과가 실제 얼마나 있는지 등에 대한 분석이 없어 아쉬웠다.

이승환 = <엄마 아빠가 떠난 뒤 남겨진 아이들의 세상이 오늘보다 나아지길…>과 함께 세계인권의날 주간을 맞아 12월12일자에 실린 <이들에게 놀 권리를 허하라-그가 놀이기구 타기까지, 3142일이 걸렸다> 등 지난 연말에 경향신문다운 따뜻한 기획기사들이 많았다. 특히 같은 면에 실린 <있지만 없습니다…프레임 밖 밀려난 MZ 장애인> 기사에서 ‘휠체어 타고는 못 찍는다…MZ 만남 필수코스 네컷 사진’이란 중간 제목을 적절하게 잘 달았다. 지난해 마지막으로 발행된 12월30일자 신문 1면에 <‘극단 정치’ 저물고…포용의 해 떠오르길>이라는 제목의 사진은 농성 중인 천막들 너머로 보이는 국회의 야경이 우리 정치의 현주소를 잘 보여줬다. “2024년에는 상처받은 이들을 어루만져주는 정치가 되길 소망한다”는 사진설명의 마지막 문구도 인상적이었다. 큰 사건이 터지면 언론은 분석을 하는 기획기사들을 많이 생산한다. 그러나 사건이 터지기 전에 예방적인 차원의 기획은 부족하다. 태영건설 워크아웃 신청 등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 부실 문제와 홍콩H지수 기초 주가연계증권(ELS) 손실 등 우리 경제에 큰 타격을 주고 개인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줄 수 있는 사건들이 잇따르고 있지만 경향신문을 비롯한 언론들은 이를 미리 감지해 예방하는 기사들을 쓰지 못했다.

김봉신 = 12월9일자 1면에 실린 <급식카드 손에 든 아이들, 편의점 전전 않게…식당 사장님들이 보여준 ‘어른의 품격’>은 감동과 울림을 줬다. 고물가에도 급식카드를 이용하는 아이들을 위해 음식 가격을 인상하지 않거나 아예 공짜로 주는 가맹식당 사장님들에 대한 이야기가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만들어주었다. 국방부가 장병 정신교육 교재에 독도를 분쟁지역으로 기술한 것에 대해 12월29일자에 1면 <‘독도는 분쟁지’…어느 나라 국방부인가>를 비롯해 2·3면에 걸쳐 여러 기사를 다뤘다. 중요한 사안에 대해 여러 각도로 집중적으로 보도해 효과를 높였다. 12월15일자에 <0.65명(2025년) 또 깨진 최저 출산율 전망> 기사가 실렸다. 언론에서 지속적으로 출산율 붕괴의 위험성에 대해 보도하고 있지만 청년들에겐 전혀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다. 거시적인 측면이 아니라 미시적인 삶의 문제로 접근해 청년들이 공감할 수 있는 출산율 관련 기사가 필요하다. 12월26일자 <민주당 지지율 3.1%P↓…골치 아픈 성적표에 쇄신이냐, 현실 안주냐>는 공감이 가는 기사다. 쇄신은 하지 못하고 오히려 퇴행하는 모습을 보이는 더불어민주당에 대해서는 더 강한 비판이 필요하다.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이 여당의 비상대책위원장이 되면서 ‘검사 독재’라는 지적이 나온다. 검사 출신들은 여당뿐 아니라 야당에도 있다. 여당의 검사 출신들은 독재를 하고 야당의 검사 출신들은 지고지순한 정치를 한다고 볼 순 없다. 여야를 막론해 검사 출신 정치인들을 전수조사해 객관적 잣대로 평가해보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조상식 = 12월28일자 사설 <내신 상대평가와 고교학점제는 모순, 입시가 교육 흔든다>는 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고교 교육과정 정책과 입시 정책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잘 도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최근의 우리나라를 둘러싼 상황을 감안할 때 한반도 안보 문제와 거시경제 점검 등의 주제가 사설에 많이 등장해야 한다고 생각된다. 12월28일자 <취업률, 공학계 72%·인문계 60%…대학 이과 선호 이유 있었네>는 일견 데이터를 기반으로 실증적으로 분석한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드러나지 않는 요인들을 소홀히 해 주제를 왜곡할 수도 있는 위험이 있다. 이과 선호 문제는 기본적으로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국가교육위원회의 난맥상을 지적한 12월25일자 <‘사회적 합의’는 어디로…‘교육부 거수기’ 된 국가교육위>는 시의적절한 비판 기사다. 기사에서 언급한 대입 정책 결정 외에도 국가교육위에 많은 문제가 있는데, 이에 대해서도 추가로 기사화됐으면 한다. 12월22일자 <“한국 유학갔다가 범죄자 취급받고 돌아와”> 등 한신대의 외국인 유학생 강제출국 조치에 대한 일련의 기사들은 당사자들의 목소리와 심층 분석이 포함된 정성이 들어간 기사로 평가된다.

배우 이선균씨 사망 보도

혐의 기정사실화하다 태세 전환
이중적 태도 비판 피하기 어려워

곽경란 = 영화배우 이선균씨 사망에 관한 보도는 유감이다. 12월27일 나온 <배우 이선균 차에서 숨진 채 발견…피의사실 공표, 폭로성 의혹 보도 도마에>와 12월28일 나온 <경찰-언론-유튜브…이 비극의 ‘공모자들’>이 특히 그렇다. 경향신문은 어느 언론사 못지않게 이씨의 피의사실을 보도했다. 이씨와 무관한 마약 압수 통계 보도나 정치부의 마약 관련 당정 보도, 심지어 <마약, 왜 하는 걸까?>라는 뉴스레터에서까지 이씨 사진을 싣거나 이름을 언급하며 이씨의 혐의를 기정사실화하는 데 힘을 보탰다. 경향신문은 사과를 했어야 하고, 그럴 자신이 없다면 침묵이라도 하는 것이 좋았을 것이다. 갑자기 태도를 바꿔 우리는 아니라는 자세로 언론의 문제를 지적하고 비판하는 것은 무책임하고 이중적이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상처난 젊음, 1020 마음건강 보고서> 기획의 관점이 좋았다. 기성세대는 청소년과 청년층이 물질적으로 풍요로운데도 유약하다고 못마땅해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청소년과 청년층의 정서적 결핍에 대한 이해 부족이 세대 간 갈등의 배경이 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송년기획에서 이 문제를 짚어준 것은 참신하고 의미가 있었다. 공동체의 해체, 온라인 공간에 대한 의존 내지 중독이 심화됨에도 산업을 점검하지 못하고 있다는 전문가의 지적도 인상 깊었다.

윤 대통령 국빈방문 성과 보도

대통령실 발표 단순 전달에 그쳐
부풀려진 효과 ‘실증적 분석’ 필요

김춘식 = 1월1일자 신년호에 실린 경향신문의 신년여론조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직무수행 평가에 대해 ‘매우 잘하고 있다’ ‘잘하고 있는 편이다’ ‘어느 쪽도 아니다’ ‘잘못하고 있는 편이다’ ‘매우 잘못하고 있다’ 등 5점 척도로 조사가 이뤄졌다. 현재 많은 여론조사기관들이 ‘어느 쪽도 아니다’라는 중간지대 항목을 배제하고 ‘잘하고 있다’ ‘잘못하고 있다’ 등 2점 척도나 4점 척도로 조사하고 있는 것과 다른 방식이다. ‘어느 쪽도 아니다’라는 생각을 가진 중간지대의 국민들이 분명히 존재하는데도 불구하고 2점 척도나 4점 척도로 조사하면 잘하고 있는지나 잘못하고 있는지 중 하나를 강제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 현실을 왜곡할 수 있다는 얘기다. 어느 쪽도 아니다라는 의견이 많이 나온 결과를 원치 않는 여론조사기관이나 언론사 등에서 편의적으로 2점 척도와 4점 척도를 사용한다고 본다. 경향신문의 이번 조사는 잘못된 관행에서 벗어난 좋은 시도라고 본다. 다만 4점 척도 등을 사용하는 다른 여론조사의 수치와 5점 척도를 사용한 이번 조사의 수치를 평면적으로 비교할 순 없다. 4점 척도 조사 결과에 익숙한 많은 독자들이 이번 조사 결과를 연결해 판단할 우려도 있기 때문에 기사에 이런 상황을 설명해줬으면 더 친절한 보도가 되지 않았을까 한다.

정리 | 고희진 기자 go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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