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개발도 ‘덕질’하듯이…진심을 다해야 합니다”
지역 노포와 청년 상점 공존 고민
인천에서만 파는 맥주로 차별화
“서울 흉내내는 건 금방 티가 나
고유의 철학·서사로 승부해야
덕질하고 있다면 더 깊게 해보길”
“진심이 중요합니다. 정보가 많아진 시대에 흉내내는 것은 금방 티가 나거든요.”
인천 구도심을 활성화한 ‘개항로프로젝트’의 기획자인 이창길씨(46)는 최근 펴낸 책 <로컬의 신>에서부터 성공적인 지역 활성화 프로젝트의 요건으로 ‘진심’을 강조한다. 이씨는 지난 9일 인천 중구 개항로프로젝트 본부 사무실에서 “디자인이든 음식의 맛이든 대한민국(명소)은 상향 평준화됐다”며 “상품의 질로 경쟁하는 시대가 지났고, 그래서 철학과 서사, 자신이 진심으로 할 수 있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씨는 ‘독채 펜션’ 개념이 생소하던 2008년 제주도에서 낡은 집을 리모델링해 ‘토리코티지’라는 독채 펜션을 기획했다. 지금은 자신이 자라온 인천 구도심에서 오랜 세월을 지킨 노포와 외부에서 온 청년 상인이 연 카페·술집·편집숍 등이 공존하는 개항로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그는 지역 활성화 프로젝트를 하려는 청년들과 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강연하면서, 자신의 경험을 책 <로컬의 신>으로 정리해 펴냈다.
이씨는 책의 부제를 “서울을 따라 하지 않는다”로 정했다. 그는 “(특정 지역을) 서울과 똑같이 만들면 서울 사람들은 지역에 갈 이유가 없다. 롯데리아나 김밥천국을 갈 거면 멀리 갈 이유가 없지 않으냐”며 “경주의 불국사 근처를 ‘불리단길’이라고 하더라, 불국사가 경리단길보다 가치가 훨씬 높은데도 지역에서 그렇게 일컫는 건 철학이 부족해 생긴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배후 인구가 많은 서울은 지역의 모습을 카피해도 성공할 수 있지만 지역은 그렇지 않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래서 “(서울에서) 카피되지 않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서사와 철학은 서울과 지역을 차별화하는 필수적인 요소다. 그가 인천 구도심 노포를 지역 활성화의 무대로 삼은 이유도 노포에 담겨 있는 역사는 다른 데서 베낄 수 없다는 점 때문이었다. 지역 기업과 협업해 인천 구도심에서만 판매하는 맥주 ‘개항로’도 지역의 고유성을 살리기 위해 서울에서 팔지 않는다. 이씨는 “‘한라산’ 소주를 전국에서 팔면서 돈은 더 벌었을지 모르지만 제주도의 브랜드 가치는 떨어졌을 것”이라며 “서울에서 팔면 돈은 더 벌었을지는 모르겠지만 사회적으로는 실이 더 크다. (지역에서만 파는) 결정이 맞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씨는 “서사와 철학이 풍부하다고 알려진 유럽은 산업화가 빨랐고 시간이 오래 흘렀다”며 “서사와 철학이 지역 활성화에 부족한 건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다만 “모든 지역이 성공적인 한 분야(의 활성화)를 따라 하는 건 문제”라고 말했다. 지역의 철학과 서사를 발굴하기 어렵다면, 프로젝트 기획자 개인의 서사, 또는 ‘진심을 다해 좋아하고 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이씨는 강조했다. 그러면서 “덕후가 인정받는 시대. 덕후가 아니면 성공하기 어려운 시대가 올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이씨는 스스로를 ‘공간 덕후’라 칭하기도 한다. 지난해 방송에서 자유분방한 삶을 보인 웹툰 작가 기안84가 MBC 연예대상을 수상하는 것을 가리켜 “포털이나 책에서 볼 수 없는 삶이 인정받기 시작한 것”이라고도 말했다.
이씨는 “서울은 비싼 임대료 때문에 ‘장사가 잘될수록 쫓겨날 가능성’이 크다. 서울이 세계적 도시가 돼 갈수록 서울에서 지속 가능한 지역 개발을 하긴 어려울 것”이라며 “로컬(지역)에서는 청년들이 보다 적은 비용으로 지속 가능성 있는 사업과 지역 활성화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과 비슷한 지역 개발을 꿈꾸는 20·30대 청년들에게 “지치지 않고, 계속할 수 있는 일을 찾았으면 한다”며 “덕질을 하는 게 있다면 더 깊게 하라고 부탁하고 싶다”고 말했다.
윤승민 기자 me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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