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국무 4번째 중동 급파에도 '빈손'…오히려 위기 고조(종합)
헤즈볼라와 충돌도 격화…공격 완화·전후 계획 요구 무색
(서울·이스탄불=연합뉴스) 김정은 기자 김동호 특파원 = 가자지구 전쟁이 석 달 넘게 이어지며 확전 우려가 커지자 미국이 또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을 급파했으나 이렇다 할 소득을 거두지 못한 모양새다.
블링컨 장관의 중동 순방은 작년 10월 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하며 전쟁이 발발한 이후 벌써 4번째다.
'맹방' 미국의 중재 노력에도 이스라엘이 하마스를 지지하는 레바논의 친이란 헤즈볼라와 충돌 수위를 높이면서 이번 분쟁이 중동 역내 전체로 확산할 수 있다는 위기가 오히려 고조하고 있다.
9일(현지시간) 이스라엘에 도착한 블링컨 장관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만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민간인의 추가 희생을 피해야 한다며 군사작전의 방식을 변경할 것으로 우회적으로 압박했다.
이날 네타냐후 총리실이 지난 3차례 만남과 달리 이번에는 블링컨 장관과의 회의록을 공개하지 않으면서 양측 간 '불협화음'이 있다는 관측을 낳았다.
당일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블링컨 장관 면전에서 하마스 지도부를 찾고 인질을 구출할 때까지 가자지구 남부 최대도시 칸 유니스에서 작전을 강화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지상전이 저강도 작전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미국의 기조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발언이었다.
지난 4일 튀르키예 방문으로 시작한 블링컨 장관의 일정은 그리스, 요르단, 카타르, 아랍에미리트(UAE), 사우디아라비아, 이스라엘과 서안을 거쳐 11일 이집트까지 8일간 이어진다.
그는 사우디 등 먼저 방문한 중동 국가에서 지도자들을 만나 '두 국가 해법', '민간인 희생 최소화', '조기 평화 정착' 등 원론적인 얘기를 주고받았을 뿐 돌파구를 마련하지는 못했다.
올해 대선을 앞두고 중동에서 내심 외교적 성과를 바랄 바이든 미 행정부의 기대가 무색하게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을 둘러싼 갈등은 오히려 점증하는 양상이다.
블링컨 장관이 텔아비브를 방문하는 동안 레바논 남부에서 헤즈볼라 드론부대 책임자 알리 호세인 부르지가 이스라엘군의 공격에 사망했다.
지난 8일 헤즈볼라 정예 라드완 부대의 고위급 지휘관 위삼 알타윌이 폭사한 데 이어 공군부대 지휘관 부르지까지 숨지면서 양국 국경의 긴장도 한층 더 높아질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이처럼 양측의 충돌이 전면전으로 치달을 위기에 놓이면서 레바논 남부에서도 주민 수만 명이 피란 행렬에 나서고 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보도했다.
가자지구에서는 이스라엘군이 지상군 작전 지역을 북부에서 남부, 최근에는 중부까지 확대하면서 가자지구 면적의 60%가 대피 명령을 받아 민간인이 살 수 없는 곳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가자지구 3분의 1가량에 해당하는 얼마 남지 않은 안전지역에 엄청난 수의 피란민이 몰려들면서 가자지구의 인도주의 위기도 계속 악화하고 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쟁 후 중동 내 미군 기지를 겨냥한 공격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10월 이래 이라크와 시리아 내 미군 기지가 127차례 공격을 받았다.
블링컨 장관은 10일 요르단강 서안에서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을 만나 전쟁 이후 팔레스타인의 통치 방식과 독립국가 수립을 논의했으나 이스라엘과 '합의'가 전제돼야 하는 사안인 만큼 원칙적 입장 확인에 그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중동 순방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8일 사우디 실권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를 만나 사우디가 이스라엘과 관계정상화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는 점이다.
양국의 수교는 중동의 정세 지형을 완전히 바꿀 수 있는 역사적 계기인 만큼 미국이 이스라엘의 태도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 동력으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과 사우디는 작년 10월 가자지구 전쟁 직전까지 국교 수립에 상당히 근접한 정도로 논의를 진척했으나 전쟁 발발로 모두 중단됐다.
kje@yna.co.kr, d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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