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생방송 중 무장괴한 난입한 에콰도르

최서은 기자 2024. 1. 10.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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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사태 선포에도 마약갱단 폭력 악화일로 ‘대혼란’
뉴스 스튜디오에서 총부리 겨누고 위협…1시간 뒤 13명 체포 에콰도르 무장 괴한들이 9일 오후(현지시간) 최대 도시 과야킬에 있는 TC텔레비시온 방송국에 난입한 뒤 뉴스 생방송이 진행되고 있던 스튜디오에서 방송 관계자를 총기로 위협하고 있다. 괴한 13명은 방송국 난입 1시간여 뒤 군과 경찰에 체포됐다. SNS 캡처
대법원장 자택 앞에선 폭탄테러…교도소 폭동·탈옥 계속
페루 등 주변국들 바짝 긴장…미국도 극심한 우려 표명

에콰도르의 TV 방송국에 무장 괴한들이 난입해 총을 겨누며 위협하는 장면이 고스란히 실시간으로 생중계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대법원장 자택 앞에서는 폭탄테러가 발생했고, 경찰들은 무장 괴한에게 살해됐으며, 교도소에서는 수감자들이 탈옥했다. 마약 밀매 갱단으로 인한 폭력사태가 악화일로로 치달으면서 에콰도르 사회가 통제 불능의 혼란에 빠졌다.

9일(현지시간) 중남미 매체 인포바에 등에 따르면 이날 오후 과야킬에 있는 TC텔레비시온 방송국에 두건과 마스크 등으로 얼굴을 가린 무장 괴한 10여명이 침입해 총과 슈류탄 등으로 방송 진행자와 직원들을 위협했다. 괴한 중 한 명은 “마피아와 장난을 치면 어떻게 되는지 알려주겠다”고 말했고, 일부는 앵커를 인질로 잡은 후 카메라 앞에서 대통령에게 개입하지 말라고 경고하는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15분가량 에콰도르 전역에 생중계된 현장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영상에는 총소리와 함께 고함과 비명소리 등이 고스란히 담겼다.

사건 발생 직후 에콰도르 대통령실은 “다니엘 노보아 대통령은 오늘 에콰도르가 내부 무력충돌 상태임을 선포하는 긴급 행정명령에 서명했다”며 “대통령은 폭력집단을 무력화하기 위한 작전을 수행하도록 군 등에 명령했다”고 밝혔다. 노보아 대통령은 국내 20개의 마약 밀매 갱단을 ‘테러집단’으로 지정하고, 국제인도법의 범위 내에서 범죄조직을 무력화할 수 있는 권한을 군대에 부여했다. 이후 현장에 급파된 에콰도르 군과 경찰은 1시간여 만에 현장을 진압해 13명을 체포한 후 무기와 폭발물 등을 압수했다. 당국에 따르면 이들은 범죄조직 ‘로스 티게로네스’와 연관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번 사건으로 사망자는 나오지 않았지만, 직원들은 부상을 입고 큰 충격에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TC텔레비시온의 뉴스 책임자 알리나 만리케는 AP통신에 “모든 것이 무너져내렸다”며 “이 나라가 아닌 아주 먼 곳으로 떠나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은 에콰도르 정부가 전날 60일간 비상사태를 선포한 상황에서 발생했다. 정부는 에콰도르 최대 갱단 중 하나인 ‘로스 초네로스’의 수장 아돌포 마시아스가 교도소에서 탈옥하자 주민들에게 야간 통행금지령을 내리고, 군경에 강력한 치안 유지를 지시한 상태였다.

그러나 사회적 혼란은 더 가중되고 있다. 이날 새벽 쿠엥카에 있는 이반 사키셀라 대법원장 자택 앞에선 폭탄테러 사건도 발생했다. 사키셀라 대법원장은 “명백한 테러 행위”라며 “나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으로 간주하고 있다”고 밝혔다. 에콰도르 전역에서 폭발, 차량 방화, 약탈, 총격 사건이 보고되면서 이날 오후까지 하루 동안 과야킬에서 폭력 사건으로 사망한 사람은 최소 10명에 달한다. 이 중에는 경찰관 2명도 포함됐다. 에콰도르 경찰은 기자회견을 열고 이 같은 사실을 알리면서 “경찰관이 무장한 범죄자들에게 잔인하게 살해됐다”고 밝혔다. 현재 무장 괴한에게 납치된 경찰관도 최소 7명이다.

교도소의 탈옥과 폭동도 계속되고 있다. 마시아스 탈옥을 전후로 에콰도르 6개 주에 있는 교도소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폭동이 벌어진 데 이어 이날 새벽에도 또 한 명의 주요 갱단 수감자가 탈옥했다. SNS에는 교도관들이 수감자들에게 집단폭행을 당하는 모습이 올라오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현재 에콰도르의 전국 36개 교도소 중 4분의 1을 갱단이 장악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뉴욕타임스는 보도했다.

에콰도르 내 폭력사태가 국가비상사태로 확산되자 주변국들도 긴장하고 있다. 페루 정부는 이날 에콰도르 접경지역에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아르헨티나와 콜롬비아, 볼리비아 등 주변국들은 폭력 행위를 규탄하고 노보아 정부에 대한 연대 의지를 표명했다. 미국 정부 또한 에콰도르의 폭력사태에 대한 극심한 우려를 표하고 지원 제공 의사를 밝혔다. 에콰도르 한국대사관은 “아직까지 우리 동포 피해는 접수되지 않았지만, 향후 오늘과 같은 유사한 위험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며 교민들에게 안전에 유의해달라고 당부했다.

주요 코카인 생산국인 콜롬비아와 페루 사이에 끼어 있는 에콰도르는 몇년 새 유럽과 미국 등으로 가는 마약 거래 통로로 이용되며 갱단 간 분쟁의 한복판에 놓였다. 지난해 에콰도르에서는 마약 카르텔 척결을 내세운 페르난도 비야비센시오 대통령 후보가 대선을 며칠 앞두고 살해되기도 했다.

최서은 기자 ciel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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