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 폐교와 도시의 시골화
합계출산율 0.7명을 밑도는 인구감소는 비단 지방만의 문제가 아니다. 서울에서도 학생 수 감소로 폐교가 생기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올해 38만명인 초등학생 수가 2028년이면 28만명으로 감소한다. 중고등학생까지 합치면 같은 기간 80만명에서 68만명으로 줄어든다. 자연히 학급 수와 학급당 학생 수가 적어지는 것을 넘어 폐교가 나온다. 서울시내 학교 수는 1300여개인데 이 중 학교 통폐합으로 인한 폐교가 40여개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에는 여전히 과대학교(1200명 이상)와 과밀학급(28명 이상)이 19%이지만 전교생을 합쳐 300명 이하인 과소학교가 13%에 이른다.
일부 지역에서는 고령화를 실감할 수 있다. 일례로 강북구에 가면 ‘어린이보호구역’ 대신 ‘노인보호구역’이라는 표지판이 있다. 느린 걸음이나 보행기에 의존해 다니는 노인들을 위해 차량 속도를 30㎞ 이하로 유지하라는 경고이다. 이곳에서 자란 자녀들이 진학, 취업, 결혼 등으로 집을 떠난 다음 부모세대만 고스란히 남았다고 주민들은 말한다. 도시 속 시골처럼 느껴지는 이곳에는 수려한 산과 계곡, 텃밭이 있고 저층 주거지와 마을도 있다. 서울시의 마을공동체 지원사업이 집중됐던 곳이기도 하다.
손바닥만 한 땅도 귀한 서울에서 나오는 폐교는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신년계획에서 폐교에 대한 두 가지 구상을 밝혔다. ‘주교(住敎) 복합형태의 도시형 캠퍼스(분교) 확대’와 ‘생태독서문화공원 조성’이다. 첫 번째는 행정업무를 없애고 교육 기능만 남겨 인근 학교의 분교 형태로 과소학교를 운영한다는 것이다. 노는 땅에는 학령기 자녀를 둔 청년세대와 다자녀 가정이 입주하는 주거시설을 넣어 학교 공간을 유지하면서 출산 지원정책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생태쉼터, 도서관, 돌봄시설, 청소년 및 지역 교육문화복합시설이 결합한 ‘생태독서문화공원’의 모델을 만들고 확대해간다는 것이다. “학생 수 감소에 따라 대거 출현하는 폐교부지를 도시의 에코존으로 보존해 서울을 생태도시로 만드는 데 기여한다. 전체적으로는 생태공원의 성격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한다.
이미 사례가 있다. 2020년 폐교된 강서구 공진중학교 부지는 서울시교육청과 환경부가 협력해 생태전환교육파크(에코스쿨)로 조성되고 있다. 기후위기, 탄소중립, 에너지전환, 농업과 먹거리 등 생태전환교육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올해 폐교될 예정인 도봉고등학교의 경우 인근 그린스마트미래학교(노후 학교를 친환경·디지털 학교로 개축하는 사업)의 공사 기간 중 임시교사로 당분간 활용될 예정이지만 그 용도가 열려 있다. 시민사회에서는 도심형 농업학교를 제안하기도 했다. 덕수상고와 성수공고도 올해 문을 닫는다. 계속 나오는 폐교부지를 소속기관의 편의대로 활용하기보다는 다양한 논의와 마스터플랜이 필요한 상황이다.
교육은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기에 인구감소로 주어진 폐교라는 선물 역시 미래를 위해 활용해야 한다. 그 시작으로 ‘도시의 시골화’를 시도하면 어떨까 한다. 지금 서울에서 자라는 아이들에게 절실한 것은 자연이다. 주말마다 붐비는 고속도로를 뚫고 도시에서 벗어나 눈썰매를 타거나 산천어를 잡는 것도 자연을 접하게 해주려는 부모의 마음이다. 자연에서의 시간은 바른 심성, 자신감, 몰입을 가르치며 기후가 나빠지는 미래에는 생존의 기술이 된다. 서울시교육청이 학생들의 농촌유학을 추진한 것도 같은 이유이지만 서울시의회의 반대 등 여러 어려움을 겪었다. 서울의 폐교는 도시 속 시골이 될 수 있다.
그러려면 폐교라는 공간을 커먼즈(공유지)로 삼아야 한다. 커먼즈는 원래 토지, 어장, 산림 같은 자연물이었으나 현대에는 지식정보까지 확장되었다. 그것을 사용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규율을 만들어 공동 관리하며 이익을 얻는다. 몇몇 사례가 있다. 서울의 경의선공유지 운동은 개발이 중단된 폐철도부지에서 다양한 삶과 예술, 활동과 운동을 펼쳤다.
제주도의 ‘공풍(公風)’ 운동은 바람이 풍력발전기를 세운 기업의 것인지 질문함으로써 사업 전반에 주민 참여와 이익 공유가 이뤄졌다. 한살림에서는 고령화로 유기농업이 어려워진 농민들의 땅을 공유지로 확보해서 땅이 없는 농부들에게 빌려주는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각자의 방식은 달라도 우리 주변의 가치 있는 자산이 누구의 것인지 묻는 것만으로 발상의 전환이 이뤄진다. 서울의 학교는 누구의 것일까? 지역공동체가 어떤 방식으로 참여해야 진정한 에코존이 될 수 있을까? 폐교의 활용은 또 하나의 흥미로운 커먼즈 실험이 될 수도 있다.
한윤정 전환연구자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무료 공영주차장 알박기 차량에 ‘이것’ 했더니 사라졌다
- ‘블랙리스트’ 조윤선 서울시향 이사 위촉에 문화예술계 등 반발
- [전문] 아이유, 악플러 180명 고소…“중학 동문도 있다”
- 미납 과태료 전국 1위는 ‘속도위반 2만번’…16억원 안 내고 ‘씽씽’
- 고작 10만원 때문에…운전자 살해 후 차량 불태우고 달아난 40대
- 평화의 소녀상 모욕한 미국 유튜버, 편의점 난동 부려 검찰 송치
- “내가 죽으면 보험금을 XX에게”···보험금청구권 신탁 내일부터 시행
- 경북 구미서 전 여친 살해한 30대…경찰 “신상공개 검토”
- 가톨릭대 교수들 “윤 대통령, 직 수행할 자격 없어” 시국선언
- 김종인 “윤 대통령, 국정감각 전혀 없어” 혹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