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를] 나이에 관한 말,말,말
나이를 많이 의식하고 살지는 않지만, 새해가 되니 ‘나이’가 화두가 되어 경험했던 몇 장면들이 떠올랐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10여년 전 연구 모임을 통해 알게 된 여성분이 이런 말을 했다. “살아보니 나는 50대가 참 좋아요. 젊었을 땐 막연히 싫고 두렵기만 했는데 나이 드는 게 좋은 것도 많아요.” 스쳐 지나가듯 나눴던 이 짧은 얘기는 당시 40을 갓 넘긴 나에게 처음으로 50 이후의 삶을 궁금하게 만들었다.
갱년기 파고 앞에서 크고 작은 몸의 진통으로 힘들어하던 나와 친구들을 곁에서 지켜보던 친구 어머니께서 넌지시 말씀하셨다. “야그들아! 그때가 몸이 제일 시끌시끌한 때더라. 그것도 다 지나갈 터이니 너무 불안해하지들 말거라.” 이 말은 한동안 꽤 효력이 컸다. 몸의 변화만 빼면 확실히 시간과 마음의 여유는 더 생겼다. 친구들과의 모임이 다시 활발해진 것도 이 무렵부터다. 2년 전 친구 자녀의 청첩장을 처음 받았을 때 기분이 묘했다. 직장 동료나 선배가 아닌 이제 우리 자녀의 청첩장을 주고받게 된 시간이 온 거다. “나 할머니 됐어”라는 소식도 곧 들려올 테다.
나이에 대해 남녀의 감도가 다르다는 것도 알았다. 비슷한 연령대의 직장 동료들과 얘기를 해보니 남성들은 50대를 한창 일할 나이로 명쾌하게 생각하는 반면, 나를 포함 여성들은 부정적 워딩과 심리적 위축이 많았다. ‘이거야말로 연구주제감이네’라는 생각을 했다. 작년에 포럼 준비로 인터뷰를 하면서 처음으로 60대의 정체성 혼란에 대해 새롭게 인지하게 되었다. “60을 맞으니 50대보다 더 혼란스럽다. 50대는 그래도 이미 새로운 생애 단계로 인식되어 여러 이름도 나오고 사회적 논의도 활발한 것 같은데, 지금 60은 새로운 중장년층과 이전 노인세대 중간에 끼어 애매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는 것이었다. 소위 말하는 맞벌이 무자녀 가정, 딩크족인 40대 중반의 후배는 노년에 대한 불안을 해소할 대안으로 같은 환경의 지인들과 새로운 모임을 구상하고 있다. 내용과 체감도는 조금씩 다르지만, 모두가 나이 듦 앞에서 혼란을 안고 사는 것 같다.
나이 든 모습을 미리 보여주는 앱이 유행이다. 대다수는 주름지고 늙은 미래의 자신을 바라보며 눈물을 글썽였다. 놀람, 연민, 애잔함 등 여러 감정이 교차하는 것 같다. 그런데 나이 듦에 대한 상상을 너무 외모로만 국한시키는 것은 아닌지 살짝 불편했다. “너희 젊음이 너희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박범신 작가의 <은교> 속에 나오는 이 구절을 보면서 늙음에 대한 두려움과 거부가 늙음을 형벌로 만들어온 것은 아닌지,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시간성의 경험, 나이 듦에 대한 상상이 필요한 시대가 아닐지 반문해본다.
공자의 불혹, 지천명, 이순 같은 연령 규범은 잠시 접어두고 요즘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은 이거다. ‘나 자신에게 더 관대할 것, 삐걱거리는 몸 다스려 가며 꾸준히 운동할 것, 노안 핑계 대지 말고 책 더 가까이하기, 그리고 가까운 사람들에게 다정할 것.’ 나이와 상관없이 어느 때나 필요한 말이지만 지금 내 나이에 꼭 필요한 말인 거 같아 책상 앞에 써 붙인다. 노후를 향한 가장 안전한 연착륙을 위해 또 나이를 들먹인다.
남경아 <50플러스 세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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