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숨의 위대한 이웃] ‘만두 빚는 중국 여인’ 왕회이제씨

김숨 소설가 2024. 1. 10.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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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세상에, 그녀가 있는 춘천 후평동 거리에도 눈이 내린다.

만두가게 앞으로는 꽤 여러 대의 버스가 수시로 지나간다. 그녀는 버스들의 번호를 살피지 않는다. 그녀는 버스들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그 거리에서 만두가게를 낸 지 5년이 넘었지만 버스를 타고 그 거리를 떠나본 적이 없다.

찜통에서 만두가 쪄지는 사이에 아주 잠깐 담담히 거리를 내다본다. 마침 버스가 지나간다. 그녀는 버스를 타고 멀리 가는 상상에 잠긴다. 멀리, 바다 앞까지 간다.

중국 길림성에서 태어나서 자란 그녀는 벌써 17년 전인 서른 살이 되던 해에 생전 처음 바다라는 걸 봤다. 바다의 이름을 몰라서 ‘그냥 동쪽 바다’로 기억하는 바다가 그녀는 보고 싶을 때가 있다.

그녀는 바다를 보러가고 싶지만 만두를 빚어야 한다. 그녀는 만두 빚는 중국 여인.

그녀가 춘천에서 만두 빚는 중국 여인으로 살고 있는 것은 순전히 사랑 때문이다. “밥 먹었어?” “보고 싶네.” 휴대전화 너머로 더듬더듬 서툰 중국말로 물어주던 한국 남자를 사랑하게 돼 결혼까지 하고, 고립무원과 마찬가지이던 춘천으로 날아왔다. 낯선 땅, 낯선 사람들, 모르는 언어. 무섭지 않았다. 사랑은 무서운 게 아니니까. 걱정 같은 것도 하지 않았다. 사랑은 속이는 게 아니니까.

(그녀의) 사랑은 응답하는 것이다. 그녀가 만두를 빚는 것은 사랑에 대한 응답이기도 하다. 그녀는 만두를 빚어 자신에게 변함없는 사랑을 주는 남편을 먹이고, 딸들을 먹이고, 이웃들을 먹이다, 만두가게를 냈다. 그녀에게 만두는 사랑. 만두를 빚는 시간은 사랑을 빚는 시간이었고, 여전히 그렇다.

일의 거룩함은 그 일의 종류가 아니라 ‘그 일을 대하는 태도’에서 나온다는 걸, 그녀는 깊고 정직한 고요 속에서 혼자 만두를 빚으며 손님들에게 일깨운다.

(그녀가 생각하는) 사랑은 인내와 성실함을 필요로 한다. 그녀는 오늘도 어김없이 새벽 4시30분에 만두가게 문을 열고 들어섰다. 6시30분까지 남편과 함께 만두소를 만들고, 피를 만들 반죽을 치댄다. 남편이 직장에 출근하면 7시30분부터 혼자 만두를 빚기 시작한다. 만두를 빚다 보면, 전날 종일 만두를 빚어 부었던 손가락이 풀어진다. 하루에 만두를 몇 개나 빚는지 그녀는 세보지 않는다. 궁금하지 않다. 준비한 속이 다 떨어질 때까지 잠잠히 빚는다.

(그리고 그녀가 생각하는) 사랑은 꾀를 부릴 줄 모르는 단심이다. 그녀는 늘 하던 대로, 열 손가락을 부지런히 놀려 만두피를 빚는다. 기름종이처럼 얇은 피를 뽑기 위해 처음에는 한 장씩 밀었다. 한 장, 한 장 늘어나 이제 스무 장을 한꺼번에 민다. 누구에게 배우지 않았다. 스스로 터득했다. 기계로 피를 뽑으면 손가락이 편하겠지만 기계로는 그만큼 얇은 피를 뽑을 수 없다. 만두피가 두꺼운 걸 싫어하는 남편의 입맛에 맞는 만두를 빚다 탄생한 만두피다.

(그리고 그녀가 또 생각하는 사랑은) 세심히, 한결같이 살피는 것이다. 만두를 찌는 시간은 4분30초. 그 최적의 시간도 그녀는 스스로 터득해서 찾았다. 오늘처럼 눈이 내리는 날에는 찌는 시간을 조금 더 길게 잡는다. 계절에 따라, 온도와 습도에 따라 찌는 시간을 다르게 한다. 밀가루를 반죽할 때 넣는 물 양도 마찬가지다. 겨울에는 온도가 낮으니까 물 양을 조금 더 많이 잡고, 찌는 시간 역시 조금 더 길게 잡는다. 기온차가 심한 봄가을에는 조금씩 그날그날 조절한다.

문득 “천천히 걷는 사람이 부럽네” 혼잣소리를 중얼거리는 그녀. 그녀는 만두가게와 집, 두 곳을 시계추처럼 오간다. 만두가게를 나서는 시간은 저녁 6시. 걸어서 10분 남짓 거리에 있는 집에 가자마자 딸들의 저녁을 챙기고 집안일을 한다. 10시가 되면 4시30분으로 알람을 맞추고 잠자리에 든다.

그녀는 자신이 정직하게, 성실하게 노동을 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돈을 벌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살아가는 게 부끄럽지 않다.

그녀는 만두를 빚는다. 겸손이, 인내가, 한결같음이, 거룩함이 그녀의 손에서 흰 만두꽃이 돼 피어난다.

그녀가 만두를 빚는 것은 108배이자, 묵언수행이자, 관상기도다.

김숨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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