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리하라의 사이언스 인사이드] 경제적 가치 넘어서는 아이의 본질적 가치
형사재판에서는 공권력이 잘못을 저지른 개인을 단죄하며 그의 자유(때로는 생명까지)를 제한하지만, 민사재판에서는 피고와 원고가 손해득실을 따져, 손해를 입힌 쪽이 손해를 입은 쪽에게 그만큼의 물질적 대가를 지불하는 형태로 이루어진다. 재산상의 손해인 경우에는 차라리 단순하지만, 그 대상이 값을 매길 수 없는 개인의 생명인 경우에는 대립이 첨예해질 수밖에 없다.
<생명 가격표>의 저자 하워드 프리드먼은 ‘서스턴 사건(2013)’의 판결을 통해 사회가 ‘목숨값’을 어떻게 계산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셰릴 서스턴은 지속적 돌봄이 필요한 장애인으로, 당시 뉴욕의 한 발달장애인 병원에 입원한 상태였다. 그런데 2008년 8월30일, 서스턴을 목욕시키던 시설 직원이 갈아입힐 옷을 가지러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발작을 일으킨 서스턴이 욕조에서 익사하는 사고가 일어났고, 이에 분노한 유족들은 병원을 고소한다. 서스턴 가족과 병원의 법정 공방은 5년이나 지속되었고, 결국 2013년 뉴욕주 민사법정은 서스턴의 죽음에 대한 병원의 과실은 인정하지만, 이로 인해 유족들이 신청한 배상금 요청은 기각한다는 판결을 내린다. 서스턴의 죽음으로 인해 발생한 구체적 손해를 입증할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판결 당시 뉴욕주의 법률은 배상의 근거로 금전적 손실과 신체적 고통만을 인정했다. 누군가의 죽음으로 인해 발생할 금전적 손실이란, 현재의 직업과 수입, 향후 기대 수명과 기대 수입, 승진과 연봉 상승 가능성, 은퇴 시기와 부가 수당 및 연금 등을 모두 고려해 정해진다. 그러나 서스턴은 심한 장애로 인해 경제적 활동을 전혀 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향후에도 지속적인 돌봄과 치료를 필요로 했기에 그녀의 죽음이 발생시킬 금전적 손실은 0으로 계산되었다. 신체적 고통 부분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서스턴은 고통스럽게 죽어간 것이 아니라, 발작을 일으켜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 사망했기에 익사의 고통을 느끼지 못했다는 이유로 기각되었다. 의도치 않게 세상을 떠나야 했던 서스턴의 심정,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유족들의 슬픔과 상실감 등의 감정적 피해는 법적 배상에서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이 판결은 당연히 논란이 되었고, 심지어 해당 재판을 진행한 판사조차도 “법에 따라 판결하나, 인간의 생명에 본질적인 가치를 두지 않고 현대적 관습을 반영하지 않는 법을 집행해야 하는 것에 심히 유감이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서스턴의 죽음을 둘러싼 판결이 시대에 뒤떨어진 법률에 의한 부당한 처사였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많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생명의 가치를 금전적 손실로 환산하는 것에 익숙하다. 그중 하나가 저출생과 연결된 아이에 대한 시각이다. 이미 우리나라의 저출생 현상은 위기를 넘어 나락으로 치닫는 수준이다. 그런데 아이를 낳으라는 정부도, 낳지 못하겠다는 국민들도 모두 동의하는 것이 하나 있다면 그건 바로 ‘아이=돈’이라는 등식이다. 이대로 저출생이 지속되면 경제가 위축될 것이 자명하므로 정부는 각종 세제 혜택과 지원금으로 아이 낳기를 유도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한 유인책이 되지 못한다.
날로 뛰는 물가,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집값, 아이가 자랄수록 점점 더 압박해 오는 사교육비라는 3중고의 두려움은 국민들을 주저하게 만든다. 아이는 귀엽지만 돈을 생각하면 망설여질 수밖에 없다. 거기에 지원책들은 하나같이 이런저런 제한과 까다로운 조건들이 붙으니 반발심만 커진다. 쥐꼬리만큼 생색내듯 주면서 국민들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것처럼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 지난한 과정에서 아이와 아이를 키우는 일에 대한 본질적 가치는 더욱 휘발된다. 어린 생명이 주는 순수한 기쁨과 충만한 온기, 양육을 통한 부모 내면의 성장과 자기 성찰, 미숙했던 생명체가 배우고 익혀 자라나는 과정에 대한 경이감, 미래에 대한 희망, 아이라는 약자를 제대로 대우하는 성숙한 사회로의 변화 등의 가치는 모두 사라지고, 모두 아이가 지니는 경제적 값어치에만 주목해 이리저리 계산기를 두드린다.
물론 아이를 키우는 데는 돈이 필요하고 중요한 건 사실이지만, 아이는 금전적 손실을 넘어서는 생명으로써 지니는 본질적 가치가 충만한 존재임을 너무도 쉽게 잊어버린다. 앞으로 저출생의 곡선이 어느 쪽으로 더 휘어질지는 더 지켜봐야겠지만, 한 가지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아이의 경제적 값어치를 우선하는 가치관이 팽배해질수록 저출생이 드리울 그늘은 더욱 깊어지리라는 것을.
이은희 과학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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