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80명씩 태어나는데 포성은 계속... "임산부·신생아엔 더 가혹한 전쟁"

권영은 2024. 1. 10.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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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겁이 나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피란민이 된 아야 크라이스(26)는 만삭의 임신부다.

전쟁 트라우마도 임산부·신생아의 건강을 위협한다.

로스차일드는 "(임산부와 어린이가)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는 유일한 기회는 지금 당장 전투가 멈추고 의료 서비스가 복구·재건되는 것인데, 전쟁이 길어질수록 전망도 어두워진다"며 "전쟁이 끝나길 간절히 바란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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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전·산후, 소아과 의료 서비스 못 받아 
"당장 전쟁 끝나야 건강한 삶 가능해져"
확전 양상 속 레바논 남부도 피란 행렬
이스라엘군의 공격을 피해 가자지구 남부 라파로 피란을 떠난 팔레스타인 어린이가 지난 6일 난민촌 임시 천막 기둥에 기대어 있다. 라파=로이터 연합뉴스

"정말 겁이 나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피란민이 된 아야 크라이스(26)는 만삭의 임신부다. 가자지구 북부 가자시티에서 치과의사로 일했던 크라이스는 개전 후 5번이나 거처를 옮겼다. 때로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몇 ㎞씩을 걷기도 했다. 가자 남부의 친척 집에선 열한 가구 74명과 함께 지냈다. 물과 음식, 의약품, 전기는 늘 부족했고, 기본 위생을 지키기도 어려웠다. 산전 관리는커녕 산부인과 진료조차 힘든 현실. 이제 배는 남산만 해졌는데 몸무게는 그대로다. 지난달 산부인과 의사는 "양수가 과다하니 제왕절개를 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수술을 할 돈도, 회복할 안식처도 없다.

미국 하버드 의대 조교수를 지낸 산부인과 전문의 앨리스 로스차일드가 9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NYT)에 전한 전쟁의 참상이다. 로스차일드는 "비극의 정점엔 어린이와 여성이 있다"고 짚었다.

가자지구 남부 라파의 아부 유세프 알나자르 병원에서 한 여성이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숨진 아기를 끌어안은 채 오열하고 있다. 라파=로이터 연합뉴스

석 달간 어린이 9000명 장례식... 사망자 40%가 아동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가자지구엔 약 5만 명의 임신부가 있었다. 석 달이 갓 지난 지금까지, 전쟁통에도 하루 평균 180명의 신생아가 태어났다. 새 생명이 빛을 보는 사이, 9,000명의 어린이가 스러졌다. 팔레스타인 보건부가 추산한 개전 후 가자지구 누적 사망자(최소 2만2,835명)의 약 40%가 아동이라는 얘기다. 여성도 5,300명 이상 숨졌다.

언제나 그렇듯, 전쟁의 최대 피해자는 이번에도 어린이와 여성이다. 특히 가장 취약한 상태인 임산부와 신생아는 산전·산후나 소아과 의료 서비스도 받지 못한다. 가자지구의 산모들 중 15%는 합병증을 겪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추정되는데, 응급 치료는 언감생심이다.

산모 사망의 주요 원인인 출혈이나 감염, 고혈압 등 합병증 예방·관리는 가자지구에선 사치다. 수많은 여성이 차 안이나 길거리, 과밀한 대피소에서 아이를 낳는다. 국제구호단체 케어(CARE)는 "마취 없이 응급 제왕절개 수술을 받거나 출산 후 3시간 만에 퇴원하는 여성도 많다"고 밝혔다.

게다가 임산부 대다수는 식량 부족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로스차일드는 NYT에 "영양실조는 그 자체로 합병증을 유발할 가능성이 크다"며 "영양이 부족한 임산부는 출혈, 빈혈뿐 아니라 사망 위험이 증가한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10월 16일 이스라엘군 공습에 부상을 입은 가자지구 주민들이 가자 북부 가자시티에 있는 알시파 병원으로 향하고 있다. 가자=AP 연합뉴스

가자지구 유아 사망률, 전쟁 전에도 이스라엘의 7배

전쟁 트라우마도 임산부·신생아의 건강을 위협한다.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소말리아, 코소보 등 무력 분쟁 지역에서 전쟁을 겪은 여성의 경우 △유산 △사산 △조산 △선천적 기형 △산모 사망률 등이 증가했다는 연구 논문이 2017년 'BMJ 글로벌헬스'에 발표된 바 있다. 2014년 가자지구 분쟁 당시 태어난 아기는 감각 운동이나 인지·정서 발달에 부정적 영향을 받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UNRWA)는 이스라엘의 오랜 봉쇄로 의약품과 의료장비 등 반입이 제한된 탓에 전쟁 이전에도 가자지구 유아 사망률이 이스라엘의 7배에 달했다고 밝혔다.

로스차일드는 "(임산부와 어린이가)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는 유일한 기회는 지금 당장 전투가 멈추고 의료 서비스가 복구·재건되는 것인데, 전쟁이 길어질수록 전망도 어두워진다"며 "전쟁이 끝나길 간절히 바란다"고 호소했다.

그러나 현실은 반대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스라엘과 레바논 무장 정파 헤즈볼라 간 무력 충돌이 격화하면서 전장은 오히려 가자지구 바깥으로도 넓어지는 분위기다. 영국 가디언은 "레바논 남부에서도 주민 수만 명이 피란 행렬에 나서고 있다"고 전했다.

권영은 기자 yo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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