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앞두고 ‘규제 완화’ 꺼낸 尹…수도권 표심 흔들까
“1기 신도시 재정비, 임기 내 착공”…절대 열세 수도권 공략
도정법 개정 사안이라 국회 문턱 넘어야…총선용 승부수?
(시사저널=허인회 기자)
"재개발, 재건축 사업절차를 원점에서 재검토하여 사업속도를 높이겠다." (2024년 1월1일 신년사)
"우리 정부는 재개발 재건축에 관한 규제를 아주 확 풀어버리겠다." (2024년 1월10일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
윤석열 대통령이 재개발·재건축 사업을 활성화할 뜻을 분명히 했다. 지난 1일 신년사 이후 열흘 만인 10일 도시정비사업 규제 완화 정책의 윤곽을 공개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도심 내 주택 공급을 확대하겠다"면서 30년이 넘은 아파트는 안전진단을 거치지 않고 바로 재건축 절차에 착수하고, 재개발은 노후도 요건을 완화하는 방식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번 규제 완화 조치로 수도권이 혜택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총선을 3개월여 남은 상황에서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모으고 있다.
재건축은 5~6년, 재개발은 3년 단축될 듯…사업 급물살
윤 대통령은 이날 경기 고양시 아람누리에서 '국민이 바라는 주택'을 주제로 열린 두 번째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전국에 수많은 노후주택들이 재건축, 재개발을 기다리고 있다"면서 "우리 정부는 재개발, 재건축에 관한 규제를 아주 확 풀어버리겠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이를 위해 30년 이상된 아파트를 재건축할 때 안전진단 의무를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안전진단 면제, 용적률 상향, 공공 이주단지 조성 등을 통해 노후 계획도시 재정비를 임기 내 시작하겠다"고 강조했다.
1기 신도시 5곳 재정비에도 속도를 낸다. 올 하반기 중 선도지구를 지정하고 내년 중 특별정비계획을 수립해 2027년 착공 및 2030년 첫 입주를 목표로 추진한다. 신도시 재정비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하기 위해 12조원 규모 미래도시 펀드도 조성한다.
정부도 이날 '국민 주거안정을 위한 주택공급 확대 및 건설경기 보완방안'을 발표하며 구제적 내용을 공개했다. 우선 준공 30년을 넘긴 아파트는 안전진단 없이도 재건축에 착수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안전진단은 사업시행인가 전까지만 통과하면 된다. 노후도가 높은 아파트의 경우 안전진단이 걸림돌로 작용하지 않도록 안전진단 기준도 대폭 하향한다. 사실상 '안전진단 폐지'라는 평가가 나온다. 정비 사업의 속도를 높이기 위한 조치다.
국토부 관계자는 "종래 재건축 기간보다는 많게는 5~6년 단축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생활불편 노후도 중심으로 가서 안전진단이 재건축의 걸림돌이 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재개발 규제 완화에 대해서는 "노후도 요건을 현행 66%에서 60%로 완화하겠다. 안전진단 절차는 없지만 최소 3년 정도 사업이 앞당겨질 것으로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규제 완화 조치에 대해 이은형 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안전진단도 정책 목표에 따라 평가 항목이나 배점 등이 수정될 것으로 예상한다"면서 "그렇게 되면 안전진단은 단순한 절차상의 단계가 될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사업 소요기간 단축과 비용절감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에 정비사업을 추진하는 사업지에서는 긍정적 요인"이라며 "시장 침체기에는 규제 완화가 가격 급등으로 연결되지 않으므로 나중을 대비해 제도를 정비하는 것은 적절한 방향"이라고 덧붙였다.
노후 주택 집중된 수도권, 총선에서 호응할까
이번에 안전진단 없이 재건축 사업에 착수할 수 있도록 한 것은 노후 주택이 많은 서울 및 경기 등을 겨냥한 것으로 분석된다. 안전진단 의무화가 사실상 사라질 경우 서울에서는 노원구, 강남구, 강서구, 도봉구가, 경기에선 안산, 수원, 광명, 평택 등이 수혜를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당장 시행되기는 어렵다. 안전진단을 없애려면 현행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일명 도정법)을 개정해야 한다. 해당 법 제12조 1항은 정비계획 입안권자가 재건축 사업 정비계획 입안을 위해 정비 예정 구역별 정비계획 수립 시기가 도래한 때에 안전진단을 실시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국회 협조가 필요한 사안인 셈이다.
하지만 야당이 이번 정책에 협조할지는 미지수다. 당장 정부가 지난해 내놓은 분양가상한제 주택의 실거주 의무 폐지 정책은 지난 9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법안심사 소위원회가 무산되면서 본회의 상정도 하지 못했다. 여소야대 국면에서 번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국토부는 이날 "실거주 의무 폐지는 아직 불씨가 꺼진 게 아니고 이달 중 원포인트로 소위를 하려고 노력 중이다. 조기에 통과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결국 이날 공개한 정책은 오는 4월 총선 이후 꾸려질 22대 국회에서 다뤄질 가능성이 높다. 아울러 도정법이 통과하기 위해서는 여당이 다수당 지위에 올라야 한다. 이번 재개발·재건축 정책이 총선용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이유다. 특히 안전진단 폐지로 수혜 받는 대다수 지역이 여당 열세라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서울에서 노후 주택이 많은 노원구, 강남구, 강서구, 도봉구의 의석은 11석이다. 이 가운데 현재 8석을 민주당이 차지하고 있다. 경기도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앞서 언급한 안산, 수원, 광명, 평택의 경우 총 13석 가운데 국민의힘 소속 의원은 1명뿐이다. 아울러 윤 대통령이 임기 내 재정비에 착공하겠다고 밝힌 1기 신도시(분당·일산·중동·평촌·산본) 역시 현재 야당이 절대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다.
지난 9일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CBS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 인터뷰에서 "이대로 가면 저는 10석 정도가 가능할까(싶다)"며 "지금 전국에서 보면 경기도가 가장 어렵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번 규제 완화 정책이 수도권 판세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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