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마트 PB 비중 최대 80% 달하는데···제품 진열도 제한하려는 韓

임지훈 기자 2024. 1. 10. 19:0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고물가 해법, PB에 있다] <하> 규제보다 지원에 초점을
알디·트레이더조 PB 절반 훌쩍
이마트 20%·쿠팡은 5%에 그쳐
국가로는 한국 50개국 중 43위
美·유럽 등 '인플레 해법' 보편화
국내선 자사우대 금지 등 '족쇄'
쿠팡 규제 땐 생태계 위축 우려
PB 장점 살리는 방안 모색해야
[서울경제]

영국 런던의 한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 중인 박모씨는 집 근처에 있는 유통업체 테스코보다 조금 더 먼 거리에 있는 또 다른 유통사 알디에서 장을 보기 시작했다. 박씨는 “런던 물가가 살인적이다 보니 아무래도 테스코에서 저렴한 제품 위주로 생활필수품을 구매해왔다”며 “그런데 최근 알디의 자체 브랜드(PB) 제품이 크게는 50%에서 적게는 10~20% 더 싼 것을 알게 돼 알디에서 장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전세계적인 고물가로 생계비 부담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PB가 미국·유럽 등 각국의 물가를 끌어내리는 톡톡히 역할을 하고 있다. 상품 중 PB 비중이 80%인 독일 기반의 다국적 유통사 알디는 높은 매출 성장률을 구가하며 유럽은 물론 미국 등 각국으로 사업 무대를 확대하고 있는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물가 안정과 PB 산업 육성을 위해서는 부작용을 막기 위한 과도한 규제보다는 장점을 제대로 살리기 위한 진흥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10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달 쿠팡에 PB 제품 노출 순위를 조작했다는 조사 사실을 담은 심사 보고서를 발송했다. 직원들이 PB 상품에 리뷰를 작성하는 방식으로 채널에서의 상품 노출도를 높였다는 것이 요지다. 이와 관련, 쿠팡은 “직원이 상품평을 남기는 건 모두 표시하고 있고 임직원 후기는 전체 후기의 0.1% 수준에 불과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공정위는 지난해 초 ‘자사 우대’ 등을 금지하는 ‘독과점 심사지침’을 마련했다. 자사 우대는 자기 회사의 상품과 서비스이 경쟁 사업자의 제품 및 서비스와 비교해 더 경쟁력을 갖도록 취급하는 행위다. 공정위는 한 발 더 나가 일정 수준의 매출과 시장 점유율, 이용자 수가 넘는 기업을 지배적 사업자로 정해 자사 우대를 비롯해 끼워 팔기, 멀티 호밍, 최혜대우 요구 등 4가지 행위를 차단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플랫폼 경쟁촉진법(온플법)’을 입법 추진 중이다.

공정위가 자사 우대에 날을 세우자 고물가 대응 정책의 일환으로 산업통상자원부의 PB 산업 지원책을 기다려온 유통업계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지원책은 커녕 유통사의 PB 제품 진열에 관한 세계 최초의 규제 카드를 꺼내 들었다”며 “저렴한 PB 상품을 ‘최상단 보다 아래에 배치해야 한다’는 식의 진열 방식 규제는 정말이지 ‘갈라파고스 규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최근 유럽연합(EU)이 제3 자의 데이터를 활용한 PB 제품 개발 혐의로 아마존을 겨냥하기는 했다”며 “하지만 이 의혹에 대해서는 아마존이 자진시정안을 제출해 법적 제재가 이뤄지지 않고 사건이 종결됐다”고 덧붙였다.

특히 공정위의 칼 끝이 업계 전반을 향할 수도 있다는 점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공정위가 제정을 추진하고 있는 온플법을 어떻게 유권해석하느냐에 따라서 향후 대형마트와 편의점, 일부 e커머스의 온라인몰도 적용 대상이 될 수 있지 않겠느냐”며 “온·오프라인 차별 논란이 일 경우 오프라인 업체의 PB 생태계도 위축될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업계는 유럽·미국 등 선진국 시장에서 PB가 인플레이션의 한 타개책으로 자리매김한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실제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스태티스타(STATISTA)가 전 세계 주요 50개국의 PB 상품 비중을 조사한 결과 지난해 1분기 기준 한국은 3%로 43위에 그쳤다. 스위스 52%, 영국 46% 등 서유럽 국가들이 1~5위를 휩쓸었다. 미국(17%), 홍콩(14%) 등도 한국보다 순위가 높았다. 업계 관계자는 “우리보다 앞서 높은 인플레이션을 겪었던 국가들에서는 소비자들의 수요 증가로 이미 PB 제품가 대세”라며 “선진국들은 고물가 대응 차원에서도 PB 산업을 장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업체별로 따져봐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지난해 기준 PB 매출 비중은 알디가 78%, 미국 트레이더 조가 59%, 미국 코스트코 34%에 달한다. 반면 이마트(139480) 20%, 롯데마트와 홈플러스 10%, 쿠팡 5% 등 한국 주요 유통업체들의 PB 상품 판매는 저조한 상태다. GS25·CU·세븐일레븐 등 편의점의 PB 매출만 30% 정도 되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PB 산업에 접근할 때 해외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주진열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PB 제품 비중이 더 높이고 있는 알디는 PB 상품을 오프라인 매대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진열해 판다”며 “온라인몰이 PB 제품을 전진 배치했다고 해서 논란이 된 적은 없다"고 말했다.

이동일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PB 제조업체와 소매업체의 섹터가 분리돼야 한다는 논리는 경제 논리와는 맞지 않다”며 “시장의 효율성을 더 강화 시키기 위한 접근을 자사 우대 행위로 규제하는 것이 맞느냐에 대해서는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임지훈 기자 jhlim@sedaily.com

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