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방이 절실해진 미국, 우방을 내치려는 트럼프
[세상읽기] 김양희ㅣ대구대 경제금융학부 교수
올 한해 무려 54개국에서 65건의 선거가 예정되어 있다. 대만을 위시해 러시아, 우크라이나, 영국, 유럽의회 등에서 중요한 선거가 있지만, 단연 세계의 이목을 끄는 것은 11월에 있을 미국 대선이다.
새해 벽두부터 미국 밖에서 ‘트럼프 리스크’ 분석에 심란한 이유는,과거 임기(2017~2020)때 3만573개 거짓말을 하며 온갖 차별과 혐오를 일삼고 내란선동 등 91건의 혐의로 기소된 피의자가 미국의 유력 대선주자라는 당혹감 때문만은 아니다. 트럼프의 재등장으로 인해 미국의 정책이 급변침할 경우 세계가 직면할 불확실성이 가늠하기 힘들어서다. 그는 반세계, 반개입, 반이민, 반우방, 반환경 등 온통 현 바이든 정부의 정책에 반기를 든다. 유럽과 아시아에서 두개의 전쟁을 동시에 치르는 일촉즉발의 안보위기는 미-중 관계와 무관하지 않고, 세계 경제는 여전히 공급망 교란, 인플레이션 등과 악전고투 중인 와중에 말이다.
물론 첫 임기 때도 그랬듯이 ‘모든 수입에 10% 관세 부과’ ‘상호무역법 제정’ ‘인플레이션감축법(IRA) 폐기’ 같은 황당한 공약이 그대로 실현되지는 않을 것이다. 특히 반세계를 넘어 반우방 기조까지 관철할지는 의문이다.
국력이 쇠퇴했다는 트럼프의 진단이야말로 미국이 반우방 깃발을 높이 올릴 게 아니라 내려야 할 이유다. 경제안보 시대에 걸맞게 바이든 정부가 ‘신뢰가치사슬’ 구축에 전력투구한 만큼 마준(S. Majune)과 슈톨첸부르크(V. Stolzenburg)의 연구(2022)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이들이 지난 20년간 수출 품목의 시장집중도, 대체탄력성, 수출액을 기준으로 주요 수출국의 ‘잠재적 병목 품목’ 추이를 분석한 바에 따르면, 미국의 해당 품목 비중은 18.4%에서 6.4%로 급감하고 주요 7개국(G7)도 줄어들었다. 반면 중국 비중은 19.1%에서 36.3%로 급증했다. 사실 미국이야말로 글로벌가치사슬(GVC)에서의 압도적 지위를 바탕으로 상호의존성을 무기화했던 대표적인 나라인데, 이제 그 지위를 중국에 뺏기게 되었다. 이를 막으려면 우방과의 공조가 필수적이다.
바이든 정부가 트럼프와 달리 반도체, 인공지능(AI)과 같은 이중용도 횡단기술에서 선별적으로 ‘보호주의 진영화’에 나선 것은, 그의 선함과 인자함 때문이 아니라 이렇게 변화된 현실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상호의존성이 고도화된 지금은 미국이 홀로 중국을 막아봤자 다른 우방이 중국과의 관계를 이어가는 한 백약이 무효다. 지난 5년간 미국의 저비용 대중 수입 감소 이면에는 중국의 멕시코, 싱가포르, 베트남 등 미 우방을 통한 고비용 대미 우회수출 증가라는 불편한 진실도 있다. 미국은 반도체 장비의 대중 수출규제에 일본과 네덜란드의 조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은 홀로 중국과의 디커플링에 나설 경우 우방이 얻을 반사이익을 막기 위해서도 우방이 절실했다. 미국 최대 메모리칩 제조사 마이크론이 중국의 제재를 받게 되자 백악관이 마이크론의 빈자리를 삼성과 에스케이(SK)하이닉스가 채우지 못하도록 한국을 압박한 연유다.
시장에서 바이든의 ‘신뢰가치사슬’ 구축 시도를 비판하는 지점은, 안보 명분의 과도한 친우방 정책이 결여하고 있는 경제적 합리성이지 반우방 정책에 찬성해서가 아니다. 더욱이 바이든의 보호주의 진영화 전략에 자극받아 중국도 브릭스(BRICS) 확대 등 맞불을 놓고 있는 지금이다. 어느 편에 서기보다 그때그때 실리를 챙기려는 ‘글로벌 사우스’의 존재감도 커지고 있다. 이렇듯 세계는 사안별로 보호주의 전선이 움직이는 느슨한 ‘보호주의 진영화’ 시대로 접어들었다. 홀로 힘의 투사가 가능했던 일극체제는 저물고 다극체제로 변하고 있다. 그런데도 트럼프는 반세계에 반우방까지 외친다. 세계에 대한 무지와 오만이 낳은 헛발질이 분명하다.
이리하여 우방과의 관계도 거래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트럼프는 우방에 또 어떤 거래를 요구할까. 그나마 바이든 정부는 반도체법이나 인플레이션감축법에 대한 우방의 반발을 일부 수용하는 등 당근을 주기라도 했다. 물론 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만일 트럼프가 채찍만 휘두른다면? 미안하지만 미국이 어제의 미국이 아니듯 우방도 어제의 우방이 아니다. 미국은 우방이 절실해졌다. 우방을 내치려는 그는 이러한 관계의 동학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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