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류·여론에 편승하지 말고, 공정·합리적 보훈행정 해야
[왜냐면] 진진화ㅣ(예)육군 대령
지난 한 해 소모적 논란으로 국론이 분열된 대표적 사례를 꼽으라면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문제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미 항일 무장 투쟁의 선봉장으로 국민통합 및 민족정기 선양에 크게 기여한 인물로 평가받는 분께 정부가 느닷없이 경직된 이념적 잣대를 들이대며 지금까지 불필요한 논란을 양산하는 현실이 너무 안타까웠다. 이러한 현상은 정부가 시대 상황이나 외부환경의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을 만큼 굳건한 기준과 원칙을 확립하지 못한 데서 기인한다.
마찬가지로 보훈 행정 분야에서도 공정하고 합리적인 체계를 정립해 국민의 신뢰와 정책 투명성을 높이지 않으면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고 대한민국의 미래 번영을 도모하는 정신적 기반 마련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오랜 기간 육군 장교로 복무하며 국방·보훈 관련 업무를 몸소 체험했던 필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집권 3년 차 반환점에 들어서는 정부의 보훈 정책 추진 방향에 대해 몇 가지 제언하고자 한다.
우선, 상식적인 보훈 행정 정착을 위해 전상과 공상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국가보훈부와 국방부의 전·공상 판정 기준을 일원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현행법령 상 국가유공자법 시행령의 전·공상 판정 기준이 군인사법 시행령의 기준보다 좁게 인정하고 있어, 국방부에서 공상 판정을 받은 사안을 국가보훈부에서 모호한 심사기준과 광범위한 재량권을 내세워 정반대의 결론을 도출해 행정심판·소송 등의 불필요한 분쟁을 유발하고 보훈 심사의 객관성에 대한 불신을 초래하고 있다.
전·공상자 판정 기준이 정부 기관별로 다른 것을 일반 국민의 상식으로는 납득하기 어렵다. 각 기관이 각자의 업무 영역을 확보하려는 조직 이기주의의 산물이 아닌가 하는 강한 의구심도 든다. 지금 이 순간에도 국가를 위해 피땀 흘리고 있을 국군 장병의 명예를 온전히 지키기 위해서라도 각 기관이 통일적 전·공상 판정 기준을 마련하는 데 적극 참여해야 한다.
또한 국가유공자 의무등록신청제 도입, 신청인의 입증 책임 완화 등 국가보훈 대상자로 진입장벽 자체를 낮추는 혁신적 조치를 통해 보다 많은 희생자가 보훈 혜택을 누릴 수 있게 해야 한다. 현행법은 국가보훈부의 국가유공자 등록을 ‘임의규정’으로 둬 대상자가 직접 등록·신청해야 하는데, 적어도 군 복무 중 발생한 부상이나 질병으로 인한 ‘의병전역’은 대상자의 동의를 받아 국가 차원에서 ‘의무적으로’ 국가유공자 신청 및 심사를 이행하도록 개선해야 한다. 보훈 제도에 대한 정보 부족과 생계 활동 전념 등으로 인해 등록신청 시기를 놓치는 경우도 여전히 많고, 의병전역 뒤 상당 기간이 지나면 신청인 개인이 군 복무와 질병, 사고의 인과관계를 증명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에 위와 같은 제도 개선은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국가유공자의 체계적 심사를 위한 관계기관 협조체계 구축과 군 사건·사고 관련 기록물 관리 강화도 꼭 필요하다. 6·25전쟁 당시 학도병, 유격군, 노무자 등 비군인 신분으로 참전한 분들과 월남 참전 고엽제 피해자들 대부분이 고령이고 적지 않은 분이 사망한 점을 고려해 참전 사실의 입증, 고엽제 노출과 발병 원인 간의 상관성 입증에 있어 민원인 개인에게 자료 제출 부담을 지우기보다는 국가기관이 보다 많은 행정력을 투입해 단 한 명의 억울한 사례도 발생하지 않도록 더욱 적극적으로 권리구제 역할을 다할 필요가 있다.
끝으로, 모호하게 적용하는 국가유공자 및 보훈보상대상자 요건 심사기준들을 보다 구체화해 투명하게 공개하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동일·유사한 사안을 두고서도 보훈 심사위원들이 어떤 기준을 적용하고 어느 정도의 재량권을 행사하느냐에 따라 심사 대상자들의 예우에 엄청난 차이가 발생하는 현실에서 원하는 심사 결과를 얻지 못한 사람들이 다른 국가유공자들에게 예우가 부여되는 것에 승복하고 박수를 쳐줄지 의문이다. 특히 보훈심사위원회가 자문을 의뢰한 전문기관의 소견에만 치중하거나 관련 법 규정을 지나치게 축소 해석한 나머지, 등록 거부 결정을 남발하는 행태를 막기 위해서라도 심의 사례들을 정기적으로 공개하고 예측 가능한 객관적 심사기준을 축적해 심사의 공정성을 강화해 나갈 필요가 있다.
부디 갑진년 새해에는 여론이나 시류에 편승하는 정책이 아닌 공정하고 합리적인 보훈 로드맵을 제대로 마련해,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고 국가유공자와 제복 입은 영웅들을 존중하고 예우하는 보훈 문화 원년이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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