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 되는 것 막으려 범행 저질렀다"…장기간 치밀하고 계획적인 준비

권경훈 2024. 1. 10.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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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관적 정치 신념" 때문, 5번 실행 시도
와이셔츠 칼라 관통 안 했으면 치명상
'남기는 말' 전문도, 당적도 비공개 논란
우철문 부산경찰청장이 10일 오후 부산 연제구 부산경찰청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피습 사건과 관련해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피습 사건'의 범행 동기는 이 대표가 대통령이 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피의자의 주관적 정치 신념 때문인 것으로 드러났다. 피의자가 범행을 오랜 기간 치밀하게 계획한 구체적 정황도 밝혀졌다.

부산경찰청 수사본부는 10일 오후 최종 수사 결과 브리핑에서 이같이 밝혔다. 경찰이 확보한 피의자 김모(67)씨가 범행 전 작성한 ‘남기는 말’에는 “사법부 내 종북세력으로 인해 (이 대표에 대한) 재판이 지연돼 단죄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이 대표가) 곧 있을 총선에 공천권을 행사하면 좌경화된 세력들에게 국회가 넘어간다”고 적혀 있다. 또 “(이 대표가) 대통령이 돼 나라가 좌파세력들에게 넘어가게 되니 이를 저지하기 위해 범행을 한다”면서 “나의 의지를 알려 자유인들의 구국 열망과 행동에 마중물이 되고자 실행한다”는 취지의 글이 담겼다.

'남기는 말'은 모두 7,746자로 구성돼 있는데 경찰은 전문을 공개하지 않았다. 오랫동안 국민의힘 당원이었다가 최근 민주당에 '위장입당'했다는 김씨 주변인의 진술 등이 나온 상황에서 김씨의 범행동기를 파악할 수 있는 핵심정보인 김씨의 당적을 비공개한 것은 물론이고 '남기는 말'도 일부만 공개한 점에 대해서는 이번 사건의 정치적 폭발성을 의식한 경찰의 선별적 정보 공개라는 비판이 나온다.

경찰은 김씨의 범행이 장기간 철저히 준비된 계획에 의한 것으로 파악했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지난해 4월부터 범행을 결심하고 온라인으로 등산용 칼을 10만 원에 구입해 범행에 용이하도록 개조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남기는 말'의 초안도 이 무렵 작성했고 이후 몇 차례 수정을 했다.

이후 6월부터 정당(민주당) 홈페이지에서 이 대표의 일정을 파악한 뒤 5번의 일정을 따라다니다 6번째 일정인 부산 가덕도 방문 때 범행을 저질렀다. 김씨는 자신의 가방에 미리 준비한 흉기와 ‘남기는 말’을 출력해 항상 가지고 다니면서 범행 기회를 노렸다. 경찰은 “봉하마을을 비롯한 5번의 습격 시도는 당시 많은 군중과 경호 등으로 이 대표에게 접근이 어려워 시도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지난 1일 봉하마을에서도 김씨가 범행을 시도하려 한 것으로 본다. 하지만 실패하자 김씨는 단념했고 귀가하려다 울산역에서 무슨 이유에서인지 마음을 바꿔 다시 부산역으로 돌아왔다고 경찰은 전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2일 부산 가덕도 신공항 부지 현장에서 괴한의 불상자로부터 피습당한 모습. 뉴스1

사건 현장인 가덕도 대항항전망대에서는 이 대표에게 의심을 받지 않고 접근하기 위해 김씨는 자신이 만든 ‘내가 이재명’이라고 쓰인 종이로 만든 왕관을 쓰고, ‘총선 승리 200석!’이라는 문구가 적힌 종이를 들었다. 이 종이 밑에는 A4용지로 싼 흉기를 숨기고 있었다.

경찰이 공개한 피습 당시 이 대표의 와이셔츠 사진을 보면 목 아래로 와이셔츠의 3분의 1가량이 피에 젖은 붉은색이었다. 경찰은 “흉기가 피해자(이 대표) 목으로 들어오는 과정에서 와이셔츠 칼라를 뚫었다”며 “흉기가 피부에 직접 닿았으면 심각한 결과가 발생할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이 대표의 와이셔츠 칼라 바깥쪽은 1.5cm, 안쪽은 1.2cm 찢겼다.

김씨는 범행 전날인 지난 1일 부산으로 오면서도 자신의 행적을 숨기려는 용의주도함을 보였다. 김씨는 이날 충남 아산 자택에서 자신의 승용차로 천안아산역으로 이동해 주차를 하고 평소 자신이 이용하던 휴대전화와 지갑을 차량에 남겼다. 경찰 추적을 피하기 위해 휴대전화의 유심은 제거했다. 그는 이후 자신의 업무용 휴대전화만 이용하고 현금만 사용했다.

앞서 김씨는 지인인 70대 A씨에게 봉인한 ‘남기는 글’ 7부를 주면서 자신이 범행에 성공할 경우 5부를 언론 매체 등에, 실패하면 가족에게 2부를 우편으로 보낼 것을 부탁했다. 김씨는 CC(폐쇄회로)TV가 없을 것으로 보이는 아산지역의 우체통을 직접 지정해 주기까지 했다. A씨는 약속대로 2부를 우체통에 넣었지만 가족에게 배달되기 전 경찰이 압수했다. 김씨의 범행을 사전에 알고도 이 같은 약속을 한 방조 혐의로 불구속 입건된 상태다.

그래픽=김대훈 그래픽뉴스부 기자

한편, 경찰은 지난 9일 신상정보공개위원회를 열어 김씨의 얼굴, 이름 등을 비공개 결정한 뒤 비공개 이유를 밝히지 않아 논란이 된 것과 관련해 “참석 위원 다수가 범행의 중대성과 공공의 이익이라는 신상정보 공개 요건에 미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고 뒤늦게 해명했다.

경찰은 단독 범행이었다는 김씨 진술을 확보한 뒤 압수물 디지털 포렌식 조사, 통화내역, 거래계좌, 행적 수사 등을 통해 현재까지 공모범이나 배후세력은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검찰과의 협의를 통해 관련 수사를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경찰은 이날 오전 10시쯤 부산 연제경찰서 유치장에 있는 김씨를 검찰로 구속 송치했다.

부산= 권경훈 기자 werthe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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