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시선] 뉴노멀이 된 지방소멸

김태경 2024. 1. 10.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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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경 전국부 부장
제2차 세계대전 중 스위스는 독일 침공을 성공적으로 막아냈다. 각 마을 단위의 저항이 워낙 강했다. 자기 지역을 지켜야 한다는 자치정신이 빛을 발했다. 상대적으로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였던 프랑스는 속절없이 무너졌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두 국가의 이런 차이는 무엇일까. 요체는 지방분권화다. 국가의 분권화가 잘 조성돼 있느냐에 따라 국가의 존폐가 결정된 대표적 사례다.

우리나라는 지방자치를 실시한 지 벌써 30여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성과는 지지부진하다. 역대 정부가 말로는 지방을 살리기 위해 균형발전을 강조하고 있지만 늘 실패했다.

지방에서 서울로 이동하는 젊은 세대의 행렬은 시간이 지날수록 급증하고 있다. 이에 따른 지역소멸 위험의 경고음은 계속 커지고 있다. 총 89개 지역이 인구감소 지역으로 분류된 가운데 18개 지역이 인구감소 추가 발생지역으로 꼽혔다. 지방의 서울 의존도는 높아지면서 서울에 기대 살길을 모색하는 셈법만 분주하다.

자치의 핵심은 분권이고, 분권의 요체는 재정의 민주화다. 분권과 재정의 민주화가 빠진 모든 균형발전은 '빛 좋은 개살구'다. 지역소멸은 이런 상황에서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서울공화국으로 상징되는 대한민국에서 지방소멸은 이제 '뉴 노멀'이 됐다. 최근 불거진 김포 서울편입 논란도 이런 형편을 반영한다.

프랑스 사례처럼 중앙집권이 강하면 강할수록 국가 구조는 취약하고 지역공동화 현상은 불가피하다. 권력집중에 따른 폐해도 부지기수다. 천문학적 금액을 지원한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지금처럼 중앙정부가 재정을 틀어쥔 채 지방에 찔끔찔끔 지원하는 시혜성 정책과 구조로는 지방소멸을 막기 어렵다.

분권을 위한 개헌 및 제도적 개선이 시급한 이유다. 지방자치 모범국인 독일은 지방자치를 골격으로 지역 균형발전을 국정운영의 원칙으로 삼고 있다.

16개 주로 구성된 연방국가인 독일은 연방과 각 주의 재정비율이 5대 5로 거의 비슷하다. 우리처럼 중앙정부가 독식해 배분해주는 게 아니라 각 주의 재정적 권한의 자율성을 최대한 확보해주고 있다. 우리는 국세·지방세 비율이 7대 3에 불과하다. 그런 만큼 지방소멸을 막고 균형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재정의 자율성 확보가 관건이다.

그렇지만 지금의 정치시스템과 구조로 자치분권 실현은 기대난이다. 인적·물적 자원의 수도권 집중과 그에 따른 지방의 지속적 쇠퇴현상은 지방자치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증거다. 현행 헌법은 서울에 모든 권력을 집중시키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연방제에 준하는 개헌을 이뤄내야만 가능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문제는 우리 정치현실에서 과연 연방제 개헌이 가능하냐는 회의론이 강하다는 점이다.

그러나 연방제는 지방자치의 가장 강력한 형태다. 각 지역이 국가성을 가질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하는 개헌이 이뤄지지 않으면 지방자치는 립서비스에 불과할 것이다. 오는 4월 총선이 다가오면서 각 정당이 독일식 선거제도인 연동형 비례대표 도입을 두고 설왕설래하고 있다.

그마저도 준연동형제나 병립형 등 본질에서 크게 벗어난 선거제 도입을 두고 충돌하고 있다. 이런 정치적 풍경은 결국 지방자치를 제대로 실현하지 못한 결과다.

중앙집권에 의한 국가 발전은 이제 그 한계에 도달했다. 자치분권주의 전략으로 정책 기조를 확 바꿔야 한다. 연방제로의 전환과 마을공동체의 자유를 도모하는 명실상부 분권국가 실현이 그것이다. 개별적, 주체적, 독립적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것은 자치권이 주어질 때 가능하다.

국토의 비정상을 방치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뻔히 알면서도 눈앞의 이해관계에 매몰돼 장기적 국가비전을 소홀히 할 경우 지역소멸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소멸이라는 극단적 결과도 배제할 수 없다.

ktitk@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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