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일의 세상만사] '의전서열 8위'에 아부하는 法

노동일 2024. 1. 10.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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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표 재판 직권변경 등
관행과 상식 어긋남 의심
법관직 목숨처럼 여겨야
노동일 주필
"직업정신과 직업윤리가 없는 자들의 민주주의 타령을 불신하면서부터 나는 '정치적 자유인'이 되었다." 한 신문에 기고한 이응준 소설가의 글에서 눈길이 간 대목이다. 작가는 이렇게도 말한다. "정의로움을 자처하는 사람들 대신 나는 자신의 직업을 목숨처럼 여기는 이들만을 믿을 뿐이다." 정치판의 공허한 민주주의 타령 대신 자신의 직업을 목숨처럼 여기는 이들이 많아질 때 정의로움도 민주주의도 실제로 구현되는 게 아닌가 싶다. 특히 전문가들이 자신의 직업정신과 직업윤리를 철저히 지키는 게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법관이라면 전문직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다. 어려운 시험과 오랜 훈련이 필요한 직업이라는 점에서 아무나 하지 못한다. 궁극적으로 신의 영역인 남을 판단하는 일을 대신 하는 법관들이기에 '존경하는 재판장님'으로 부르는 것이다. 법관들 스스로 직업을 목숨처럼 여겨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피습사건을 둘러싼 해프닝을 보면서 씁쓸한 느낌이 드는 건 그 때문이다. 의료진, 소방헬기 운용 책임자 등의 직업정신과 직업윤리 문제는 나중에라도 짚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오늘은 이 대표의 재판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지난 2일 오전 10시47분경 부산에서 피습당한 이 대표는 오후 4시20분부터 6시까지 1시간40분가량 서울대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 중환자실에 있던 이 대표는 3일 오후 5시경 일반병실로 옮겨졌다. 오후 5시58분, 서울중앙지법에서 기자들에게 '형사공보 안내' 문자를 보냈다. "이재명 피고인의 23고합927 사건의 1.8. 자 공판기일은 재판부에서 직권으로 1.22.로 변경하였다"는 사실 등을 알리는 문자였다. 이 대표가 피고인인 '위증교사 사건' 재판기일은 1월 8일에서 1월 22일로, 1월 9일 '대장동 사건' 재판은 기일을 정하지 않고 1월 12일을 공판준비기일로 지정한 것이다. 법률적으로는 문제가 없다. 공판기일 변경은 당사자 신청이나 재판부 직권으로 가능하다. 하지만 일반적 상식과 재판 관행에 비추어 납득하기 어려운 결정이다.

3일 오후 6시경이면 서울대병원에서 이 대표 상태에 대한 공식 설명이 있기 전이다. 수술 당일 예정된 브리핑이 취소된 후 민주당 관계자들의 전언으로 이 대표 병세가 언론에 보도되던 상황이었다. 서울대병원 브리핑은 4일 오전에 있었다. 그렇다면 재판부는 무엇을 근거로 3일 오후에 이 대표의 재판기일을 연기한 것인가. 이 대표나 변호인 측은 기일 연기신청을 한 바가 없다고 한다. 재판에 신경 쓸 겨를도 없었을 것이다. 언론보도만을 근거로 재판부가 기일 연기를 했다는 결론이다. 진단서 등 의료진의 소견도 없이 5일 후 피고인의 출석 가능 여부를 법관이 어떻게 알 수 있다는 말인가. 1월 9일 대장동 재판에 대해 피고인이 출석할 필요가 없는 준비기일을 다시 지정한 것도 마찬가지다. 일반적이라면 변호인의 신청에 따라 기일을 연기했어야 한다. '의전서열 8위'인 야당 대표가 아니라, 갑남을녀인 우리 같은 사람에게도 그런 특혜가 가능할까. 마침 이 대표의 선거법 재판을 맡고 있는 판사가 돌연 사표를 낸 것도 공교롭다. 재판을 끌 만큼 끌다가 결국 선고할 시기가 되니 더 이상 피하지 못하고 사표를 던진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사또' 운운은 상식적인 국민의 귀에 어이없는 변명으로 들릴 따름이다. 양자 모두 갖가지 명분으로 법원을 농락하는 피고인 앞에서 눈치를 본다는 평가를 받고 있던 터라 놀랍지는 않다.

'법불아귀(法不阿貴), 승불요곡(繩不撓曲).' '법은 신분이 귀한 자에게 아부하지 않고, 먹줄은 굽은 것을 따라 휘지 않는다.' 많은 법조인들이 좌우명으로 삼고 있는 글이다. 고금을 막론하고 법조인, 특히 판사들의 직업정신·직업윤리를 상징하는 말이 아닌가 싶다. 지금은 자신의 직업윤리를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 걸 필요도 없는 시대이다. 그럼에도 한없이 가벼워진 법관의 직업정신·직업윤리를 보며 정의도 민주주의도 어려움에 처해 있음을 절감한다.

dinoh7869@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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