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DT인] `아트테라피`로 소년범 마음 치유… "흥미없던 아이들도 3주후면 달라져요"

김세희 2024. 1. 10.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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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혁용 전북대 미술학과 교수
조건부 기소유예 소년범에 처벌대신 예술 통한 치유 프로그램
아내 백혈병 투병때 국악 심취 안정찾아… 예술적 효과에 눈떠
"거쳐간 40명중 재범 한명도 없어… 교육청 예산줄어 걱정이죠"
엄혁용 전북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과 교수<엄혁용 교수 제공>
엄혁용 전북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과 교수<엄혁용 교수 제공>
엄혁용 전북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과 교수<엄혁용 교수 제공>
엄혁용 전북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과 교수<엄혁용 교수 제공>
엄혁용 전북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과 교수<엄혁용 교수 제공>

"엄마, 아빠가 저한테 '도둑놈의 새끼'라는 말도 하셨죠. 일단 많이 죄송했죠."

오토바이를 훔치다 걸린 한 소년범의 부끄러운 자기 고백이다. 그는 얇은 천으로 둘러싸인 장막 안에서 자신의 과오를 솔직하게 밝힌다. 깊은 후회와 함께 사고를 치기 전의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는 바람도 내비친다. 개인 신상을 보호하기 위해 음성은 변조한다.

작품명은 '속마음을 나누는 그림자 인터뷰'. 엄혁용(63) 전북대학교 미술학과 교수가 전주지방검찰청, 법무부청소년범죄예방위원 전주지역협의회와 함께 운영하는 '아트테라피'에 참여한 소년범들의 심정이 담겨 있다.

아트테라피는 조건부 기소유예 소년범들을 대상으로 법적 처벌 대신 예술을 기반으로 치유하는 프로그램이다. 엄 교수는 "예술활동이 갖는 치유적 속성에 근거해 선도대상 청소년의 정서순환과 자기반성, 사회성을 회복시키는 데 목적이 있다"고 밝혔다. 기수당 10~15명의 소년범이 일주일에 한 번, 2시간 30분씩 전북대 예술대학으로 와서 미술 전공자들에게 교육을 받는다.

프로그램은 다양하고 독특하다. 섬유의 결을 따라 천을 찢으면서 과거의 후회를 진솔하게 적기도 하고, 아무렇게나 잘라진 나무 덩어리에 연상되는 동물이나 사물을 그려넣는다. 컵에 부정적인 말과 상처받은 기억을 적어 깨뜨린 뒤, 부서진 조각들을 다시 맞춰 작품을 만들기도 한다. 바위 모양의 스티로폼을 깎기도 하고, 바닥에 큰 다이어리를 놓는 설치미술도 구현한다. 흙을 빚어 그릇을 제작하고, 풍선에 석고를 채워 자신의 마음도 표현한다.

엄 교수는 "아트테라피를 단순히 그림으로만 접근하면 잘 그리려는 욕심이 앞서 청소년들이 스트레스를 받는다"며 "다양한 예술장르로 내 감정과 생각을 끄집어내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매 순간의 과정을 예술로 담아내면서 마음의 상처를 받은 소년범들이 치유가 된다"고 말했다.

사실 엄 교수의 전공은 아트테라피와 거리가 있다. 그는 조형미술박사이자 조각가로서 유명하다. 그런 그가 아트테라피를 시작한 계기는 부인의 아픔에서 비롯됐다. 엄 교수는 "집 사람이 2013년 급성 백혈병에 걸려서 4년 정도 고생을 했는데, 그 과정에서 국악에 심취하면서 안정을 찾았다"며 "그 때 아트테라피가 시각예술, 공연, 음악, 순수미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야심차게 추진하던 국립예술치유센터 건립 좌초는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했다. 실망하고 있을 즈음, 전북대와 전주지검에서 기소유예 소년범들을 대상으로 하는 미술 치유 일을 맡아달라고 제안했다. 공교롭게도 당시 전주지검은 소년범들을 교화·발전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을 고민하고 있었다. 엄 교수는 "기소 유예된 소년범들에 대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우리 학교에서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치유 프로그램 진행이 처음부터 쉽진 않았다. 소년범들은 전혀 수업에 흥미가 없었고, 교사들의 말도 듣질 않았다. 이들은 '목적 수업'이라는 명목하에 자리에 붙어 있을 뿐이었다. 수업을 듣고 수료증을 받아야 기소가 유예될 수 있끼 때문이다. 결석이 2~3차례 지속되면 과정에서 그대로 탈락이다. 엄 교수는 첫 시간부터 '극약처방'을 했다고 전했다. 그는 "미술 치유가 교화로 이어지려면 수업에 적극적으로 따라와야 한다"며 "그래서 첫 시간부터 수업태도가 불량한 아이들에겐 이 수업을 열심히 듣지 못하면 기소유예를 받지 못한다고 직접 얘기했다"고 말했다.

2~3주 정도 지나면 상당히 흥미를 느낀다고 했다. 엄 교수는 "흙과 석고, 스티로폼 등 다양한 재료로 촉감을 느끼고 제품을 만드는 과정에 재미를 붙인다"며 "시간이 가면 갈수록 호응도는 높아진다"고 전했다. 이들이 수업을 통해 만든 작품들은 행사가 끝날 무렵 전시회를 통해 공개된다.

그때쯤이면 학생들에겐 변화가 찾아온다. 프로그램에 매력을 느낀 아이들은 수업 과정에서 느꼈던 감정들을 롤링 페이퍼에 담는다. "경험해 본 적 없던 일을 경험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도자기 깨기 프로그램을 하면서 속에 있던 답답한 마음을 깨뜨렸고 깨진 도자기를 다시 붙이면서 새로운 마음을 다시 새겼다"는 감사 인사를 남겼다. "두번 다시 볼 일은 없어야겠지만…"이라는 의미심장한 메시지도 남기는 청소년도 있었다. 조건부 기소유예 소년범만이 수업에 참여할 수 있어서다. .

재범을 방지하는 데도 큰 효과를 거두고 있다. 엄 교수는 "3기 수업이 끝났을 때 문홍성 검사장이 '아트테라피를 거쳐간 아이들 중 아직까지 재범이 없었다'고 했다"며 "현재가지 40명 정도가 거쳐갔는데 재범이 단 한 번도 발생하지 않은 셈"이라고 말했다.

나아가 엄 교수는 가능하다면 아트테라피를 수료한 청소년 중 1명을 예술대학교 입학생으로 선발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총장께 매년 정원외 특별전형 방식으로 뽑고 싶다고 했다"며 "아직까지 실현은 안됐다"고 했다.

학교 방침뿐만 아니라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흥미를 보였던 수료생들 중에도 미술에 들어가는 비용이나 등록금을 감당하기 힘들어 꿈을 접었던 사례도 있다는 게 엄 교수의 설명이다.

엄 교수는 아트테라피를 안정적으로 정착시키고 싶지만 쉽지 만은 않다. 전북대는 아트테라피 예산을 1기 2000만원, 2기 2500만원, 3기 3500만원으로 차츰 늘려지만 4기에는 초반 수준으로 줄였다. 교육청 지원 예산이 감소한 탓이다. 강사와 인솔자 인건비, 식사비, 재료비, 전시회 팸플릿 제작비 등에 들어가는 예산이 만만치 않은 데 엄 교수 입장에선 고민이 깊다.

엄 교수는 "최소한 1기수당 3500만원에서 4000만원 정도 필요하다"며 "양오봉 총장께서도 크게 관심을 크게 갖고 있는 만큼 예산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셨으면 한다"고 바람을 전했다.

이어 "전북대가 글로컬(Glocal) 대학으로 선정됐는데, 아트테라피는 그 취지에 맞는 사업으로 판단된다"며 "지역에서 단 한 번의 실수로 낙오자가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노력에 관심을 기울여줬으면 좋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김세희기자 saehee012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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