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상'이 '자상'보다 덜 심각하다?[노컷체크]
흉기 피습 8일 만에 퇴원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상처가 왼쪽 목 빗근 위 1.4cm의 자상으로 밝혀졌다. 사건 직후 경찰과 소방당국에서 밝힌 '1cm 열상 추정'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난 셈이다.
피습 초기 '경상 추정'이라는 발표로 인해 일각에서 "열상이니 그리 심각하지 않다"는 식의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실제 일부 누리꾼은 2006년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 피습 사건을 언급하며 이 대표를 조롱하는 댓글을 달기도 했다. 박 대표는 '11cm 자상'이었지만 이 대표는 '1cm 열상'이라는 것이다.
언론들도 2006년 지방선거 직전에 발생했던 '박 대표 피습 사건'을 재조명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일부에서 이 대표의 상태가 심각하지 않다는 주장을 펼치자 "목 부위 1cm 열상 보도는 명백한 가짜 뉴스"라고 대응했다. 결과적으로 이 대표는 '자상'이었다.
그렇다면 열상은 자상보다 덜 치명적인 신체적 손상일까. CBS노컷뉴스가 전문가 의견을 종합해 팩트체크한 결과, 손상의 정도는 에너지양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열상이라고 해서 자상보다 심각하지 않다고 할 수는 없다. 물론 처음 잘못 알려진 대로 '1cm 열상'의 경우에는 상처가 대부분 깊거나 크지 않기 때문에 부상이 심하지 않은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다만 피습 초기 이 대표의 상처를 '열상'이라고 추정한 것은 해석의 문제였을 뿐, 결과적으로 부상의 정도를 오해하게 만들었지만 잘못된 추정은 아니라는 의견도 나온다.
속목정맥 손상으로 혈전?…"뇌손상 가능성 배제 못해"
목 부위는 좁은 공간 안에 정맥과 동맥 그리고 미주신경, 기도, 식도가 모여있어 손상에 대한 조사 및 치료는 관련 부위와 영향을 받은 구조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
대한외상중환자외과학회 하태순 대외홍보이사는 "Zone 위치에 따라 중증도, 수술적 치료의 응급 정도도 달라지게 된다"며 "목 부위 자상은 위치 특성상 1.4cm의 피부 손상 길이보다는 얼마큼 깊이 들어갔는지가 손상의 정도를 평가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손상이 깊다면 단순히 근육뿐 아니라 혈관, 신경, 기도, 심한 경우 식도까지 손상이 동반될 수 있으므로 이에 대한 조사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속목정맥의 60%가 예리하게 잘려있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속목정맥과 속목동맥은 거의 밀착되어 지나가기 때문에 방향에 따라 속목동맥이 손상당할 가능성이 크게 증가하게 된다"며 "속목정맥 손상의 경우 적절한 지혈과 치료가 없다면 출혈량이 많을 수 밖에 없으며, 출혈이 목 안쪽으로 지속되는 경우 혈전에 의해 기도압박이 생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속목정맥의 손상으로 혈전이 생기는 경우 혈전으로 인한 뇌손상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면서 "속목동맥 손상이 동반되었다면 심장과 가까운 곳에 있어 높은 압력으로 대량출혈이 발생하고, 단시간에 과다 출혈로 인해 쇼크로 사망에 이를 가능성이 아주 높다"고 부연했다. 이런 이유로 목 손상이 있을 경우 치료 알고리즘이 존재한다는 점도 덧붙였다.
이 대표 수술을 집도한 민승기 서울대병원 이식혈관외과 교수는 지난 4일 수술 소견과 관련해 "좌측 목 뒤끝 흉쇄유돌근(목빗근) 위로 1.4cm의 칼로 찔린 자상이 있었다. (칼이) 근육을 뚫고 근육 내 동맥이 잘려 있었고, 많은 양의 혈전(피떡)이 고여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근육 아래의 속목정맥의 앞부분이 전체 원주(둘레)의 60% 정도 예리하게 잘려 있고, 피떡이 고여 있었는데 다행히 속목정맥 안쪽 뒤쪽에 위치한 속목동맥의 손상은 없었다"고 밝혔다.
그는 "목 부위는 중요한 혈관, 신경, 기도, 식도 등이 밀집돼 있는 곳이라서 겉에 보이는 상처의 크기가 중요하지 않고, 얼마나 깊이 어느 부위가 찔렸는지가 중요하다"면서 "속목동맥 혈관 재건술은 난이도가 높은 수술이었다. 수술의 성공을 장담하기 어려운 상태였다"고 전했다.
겉에서 보이는 상처는 1.4cm였지만 내부에선 목정맥의 60%가 훼손돼 부상 상태가 가볍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부상 정도 오해하게 만든 '1cm 열상'…"잘못된 추정 아냐" 주장도
그렇다면 열상이 자상보다 덜 심각하다는 일각의 주장은 사실일까? 결과적으로 손상의 정도는 에너지양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반드시 열상이 자상보다 심각하지 않다고 할 수 없다.
다만 같은 에너지양이라면 열상보다 자상이 '보다 심각한 손상'을 야기한다. "1cm 정도의 열상은 대부분의 경우 에너지양이 크지 않기 때문에 상처의 깊이도 깊지 않고 일반적으로 심하지 않은 상처로 생각할 수 있다"는 게 학회 측 설명이다.
다시말해 경찰과 소방당국이 이 대표의 상처를 '1cm 열상'으로 추정했다면 일반인들은 물론 의료인들조차 이 대표가 큰 부상이 아니라고 판단할 수도 있었다는 뜻이다.
경찰이나 소방당국이 피습 직후 이 대표의 상처를 열상으로 추정해 발표한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라는 의견도 있었다.
대한외과의사회 이세라 회장은 "일반적으로 찔리거나 깎이거나 해서 피부가 손상되는 것을 모두 다 열상이라고 해야 된다"며 "의사나 일반인이나 열상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의 문제인데, 돌에 맞아서 찢어지든 도끼에 맞아서 찢어지든 넘어져서 쇠에 부딪히면서 피부가 찢어지든 피부가 찢어진 것은 모두 열상"이라고 설명했다.
이 회장은 "처음 열상(추정) 보도는 그렇게 생각하면 맞는 것"이라며 "(이 대표의 부상이 심각하지 않다고) 오해할 수 있다. 글이나 말로 표현한 언론도 오해할 수 있으며 잘못된 표현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실제 소방당국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 대표의 상태를 피습 직후 '1cm 열상'으로 추정한 것에 대해 "(피습한) 도구를 정확히 모르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현장에서는) 정확하게 1cm인지 1.5cm인지 알 수 없었다. 도구를 모르는 상태에서 찔린 상처인지 찢어진 상처인지 판단할 수 없어서 대부분 라세레이션(열상)이라고 표현한다"는 것이다.
열상 심하면 '장기손상'까지…"자상 환자는 다른 손상도 확인해야"
열상이란 신체조직, 일반적으로 피부가 찢기거나 절단돼 발생하는 상처로 상처부위의 가장자리가 불규칙하거나 울퉁불퉁한 것이 특징이다. 열상은 피부의 바깥 층만 손상되는 표재성 손상이 흔하지만 에너지양에 따라 피하조직, 근육, 또는 장기까지 손상되는 경우도 있다.
자상이란 칼이나 이와 유사한 도구 등 날카롭거나 뾰족한 물체가 피부와 기저조직을 관통하는 외상의 형태로 부상의 위치와 깊이에 따라 심각도가 달라질 수 있다. 특히 자상은 내부 장기, 신경, 혈관 또는 기타 중요한 구조물을 손상시킬 수 있기 때문에 위험할 수 있다.
열상과 자상은 에너지가 작용하는 기전이 다른 개념으로, 상처 가장자리의 차이뿐만 아니라 에너지 대비 상처의 깊이가 다르고 그 결과 구조물 손상의 정도가 큰 차이를 보인다. 따라서 자상을 입은 환자는 반드시 피부 손상 안쪽으로 다른 손상이 있는지 여부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민주당은 이 대표 피습 이후 이번 사건을 '민주주의를 겨냥한 테러'로 규정하며 사건 초기 '1cm 열상' 보도 경위와 관련 정보의 출처 등을 밝혀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특히 전현희 민주당 당대표정치테러대책위원장은 이 대표 피습 당일 '대테러종합상황실' 명의로 유포된 '소방, 목 부위 1㎝ 열상으로 경상 추정' 문자메시지와 관련해 "사건 초기 배포된 괴문자가 중대한 살인 미수, 정치 테러 사건을 단순히 경상에 불과한 폭행 사건 정도로 축소·왜곡한 주요 진원지"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 대표는 10일 오전 11시 서울대병원에서 퇴원해 당분간 인천 계양구 자택에서 치료를 이어갈 예정이다. 이 대표는 이날 "우리 부산 시민 여러분, 그리고 생사가 갈리는 그 위급한 상황에서 적절하고 신속한 응급조치로 목숨을 구해주신 부산의 소방, 경찰 그리고 부산대 의료진분들께 각별한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며 "수술부터 치료까지 최선을 다해 주신 서울대병원 의료진분들께도 감사 말씀을 전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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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송정훈 기자 yeswalk@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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