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진단 변수 사라져"… 노후아파트 많은 노원·수원 들썩
"정비사업 속도 빨라질 것"
노후 아파트 주민들 기대감
리모델링 추진하던 단지들
재건축으로 선회 잇따를 듯
공사비 급등해 사업성이 관건
"용적률 상향 인센티브 필요"
여야 합의 없으면 불발 우려
◆ 1·10 부동산 대책 ◆
"내 집이 낡아서 못 살겠다는데 안전진단이라는 절차 때문에 주민들만 속 끓이며 살았습니다. (오늘 발표를 보니) 아주 속이 다 시원합니다. 이제는 주민끼리 합심해서 새 아파트 만들 일만 남았네요."(서울 노원구 하계동 아파트 보유자 김 모씨)
10일 정부가 재건축 재개발 규제를 완화하는 패스트트랙 정책을 발표하자 부동산 실수요자는 "이제 정비사업 속도가 빨라질 것"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재건축과 재개발, 리모델링을 추진하는 단지는 "정부가 도와줄 때 빨리 하자"며 정비사업 속도를 높이기 위해 사업 계획을 다시 점검하고 나섰다.
이날 서울 동작구청에 따르면 지난해 예비안전진단을 통과한 동작구 명수대현대는 정밀안전진단을 위해 업체를 선정했다가 취소했다. 정부가 지난해 말부터 안전진단 없이도 재건축을 추진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예고함에 따라 전략을 수정하기 위해서다. 동작구 흑석동에 사는 한 주민은 "안전진단 비용이 부담이었는데 정부가 안전진단의 부담을 덜어 주겠다고 하니 우선 추진위원회를 제대로 설립하는 일이 더 중요하지 않겠냐"며 "이제까지는 빨리 안전진단부터 통과시키고 보자는 입장이었다면 앞으로는 사업 추진을 꼼꼼히 살펴보자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재건축 안전진단 모금 때문에 애를 먹은 단지에서도 "가장 큰 장애물은 피했다"는 분위기다. 정밀안전진단을 받으려면 2억~3억원이 드는데 이를 위해 소유주에게서 모금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서울 강남구 수서동 삼익, 동작구 한강현대, 하계동 청솔아파트를 비롯해 수도권 단지가 정밀안전진단 신청을 위해 모금하고 있었다.
노원구 내 준공 32년 차 아파트를 소유한 이 모씨는 "재건축하면 좋다고 하지만 (안전진단을 위해) 돈을 내라고 하면 50만원도 아까워서 내지 않는다. 이제는 모금도 충분한 시간을 두고 할 수 있어 돈 때문에 안전진단 신청 전부터 갈라서는 일이 적어질 것"이라고 전했다.
정부는 재건축 패스트트랙으로 안전진단을 더욱 완화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1월 안전진단에서 구조 안전성 비중을 줄이고 주거 환경 위주로 평가 항목을 수정한 데 이어 앞으로 "노후도와 생활 불편을 중심으로 개선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준공 30년이 넘는 아파트는 주민 불편이 클 경우 웬만하면 통과시켜 주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시장에서는 사실상 '안전진단 폐지'로 받아들인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한 아파트 입주민은 "소유자가 집이 낡아서 못 살겠다는데 정부가 안전진단이라는 명분으로 가로막는 게 말도 안 됐다. 이참에 다른 재건축 대못도 뽑아야 한다"고 언급했다.
수도권에 준공 30년 이상 된 아파트 중 안전진단을 통과하지 않은 단지는 서울 노원, 강남, 강서, 도봉, 경기 안산, 수원, 광명, 평택에 몰려 있다. 이 지역에서는 안전진단이 워낙 까다로워 엄두도 내지 못했는데, 이제 안전진단 없어도 재건축을 추진할 수 있어 사업성이 높은 곳 위주로 재건축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리모델링 추진 단지가 많았던 1기 신도시에서는 노후도시특별법에 이어 이날 발표 이후 재건축으로 선회하는 단지가 많아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경기 평촌에서 이미 리모델링 허가를 받았던 목련2단지 조합원은 "재건축 벽이 높아 리모델링을 시작했던 건데 이제는 뭐 하러 하겠냐"며 재건축으로 선회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이는 특별법상 재건축 시 용적률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노후 도시 단지에만 국한된 현상일 뿐 나머지 지역에서 리모델링을 추진하던 단지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당초 리모델링을 택한 이유는 안전진단 문턱이 높아서라기보다 용적률이 200%를 넘어 재건축보다 사업성이 낫기 때문이다.
문제는 사업성이다. 서울 노원, 경기 수원 등 수도권에 지어진 지 30년이 넘은 아파트는 용적률이 200% 안팎이어서 획기적으로 용적률을 상향하지 않고서는 수익이 나지 않는다. 게다가 지난 2~3년간 공사비가 급등하면서 기존 재건축 추진 단지에서도 조합과 시공사 간 공사비 갈등으로 사업이 좌초되고 있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이제 안전진단은 형식적으로만 존재할 것"이라며 "앞으로 중요한 것은 사업성이다. 용적률과 분담금을 따졌을 때 사업성이 나오고 주민이 분담금을 낼 여력이 있는 곳, 재건축 의지가 있는 곳에서는 속도가 붙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노후도시특별법 대상뿐만 아니라 서울의 일반 재건축 단지도 용적률을 올려주고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를 유예하는 조치가 동반돼야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정비사업에서 관건은 인허가보다 개별 조합원의 자금 여력"이라며 "(1기 신도시의 경우) 용적률 상향 인센티브가 단지별로 얼마나 적용되는지 아직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막연하게 미래 가치를 기대하는 것은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안전진단 완화는 도시정비법 개정 사항이다. 국회에서 여야 간에 합의가 없으면 실거주 의무 폐지가 통과되지 않는 것처럼 이 또한 '불발'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이선희 기자 / 이석희 기자 / 이희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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