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크리처’ 작가 “사람이 사람에게 그러면 안 된단 거 말하고파”
강은경 작가 “731부대 생체실험 모티브”
이야기의 시작은 1991년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MBC)였다. “‘하림(박상원)이 있었던 어떤 방역 부대’라는 표현이 잠깐 나와요. ‘이게 뭐지?’ 하면서 자료를 찾아보다가 충격을 받았어요. 입봉도 하기 전인 20대였었는데 그때부터 줄곧 731부대 생체실험에 관심을 가졌어요. 사람이 사람한테 그러면 안 되는 거라는 걸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10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강은경 작가는 넷플릭스(OTT) 드라마 ‘경성크리처’를 집필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경성크리처’는 1945년 경성과 크리처(괴물)의 만남이 주목받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핵심은 일제강점기 조선인을 상대로 한 끔찍한 실험이었다. 일본인만 드나드는 옹성병원에서 수상한 일이 벌어지고 괴물도 실험의 희생물이었던 것이다. 강 작가는 “외국에서는 한국의 역사에 관심이 없을까 봐,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해서 크리처물을 접목한 것”이라고 했다. 괴물이 되는 엄마 최성심(강말금)과 윤채옥(한소희)의 관계도 실제 731부대의 잔혹한 모성본능 실험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작가의 우려와 달리 일제강점기 역사가 이 드라마를 살려냈다. 지난해 파트1(1~7회) 공개 이후 기시감 드는 내용과 빈약한 서사에 혹평이 쏟아졌지만, 지난 5일 파트2(8~10회)에서 731부대 생체실험으로 인한 역사적 아픔을 명확하게 담으면서 전세가 뒤바뀌었다. 이야기의 핵심이 ‘그 시절을 사는 청춘’에서 ‘731부대 생체실험’으로 옮아가자 반응이 뜨거워진 것이다. 일본에서조차 “731부대가 실제로 존재했느냐”며 역사를 들여다보기도 한다. 오티티 순위 사이트 플릭스패트롤을 보면 일본에서 ‘경성크리처’ 순위는 9일 기준 6위다.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5일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경성크리처’로 인해 일본 교육에서는 거의 다뤄지지 않았던 731부대와 생체실험 등의 역사적 팩트가 일본 누리꾼에게 잘 전달된 점은 큰 의미가 있다”고 짚었다.
강 작가는 이런 반응이 놀랍다고 했다. 그는 “키워드를 ‘생존’과 ‘실존’으로 잡고 친일-반일 프레임보다 이 시대를 아프고 힘들게 견뎌낸 사람들의 이야기에 포커스를 맞춘 것”에서 사람들의 눈길을 끈 요인을 찾았다. ‘경성크리처’에도 목숨 걸고 조선인을 구해내는 윤채옥과 각성하는 장태상(박서준) 등이 영웅처럼 등장하지만 여타 일제강점기를 다룬 작품과 다른 점이 있다. 바로 잔혹한 고문 앞에 무릎 꿇은 사람들을 탓하지 않는 것이다. “손톱·발톱 생으로 뽑혀본 적 없지요? (…) 거꾸로 매달려서 콧구멍에 고춧가루 탄 물을 한도 끝도 없이 들이부으면 거기까지 가면 더는 사람이 사람일 수가 없는 기라. (…) 그런 상황에서 배신한다 해도 절대로 원망 안 할 겁니다.”(극 중 나월댁) 강 작가는 “그 시대를 살아보지 못한 우리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공포다. 그 공포는 매일매일 죽음과 직면하고 있다. 그들은 그저 살아내야 하는 거였다고 말해주고 싶었다”고 했다.
파트2에 대한 관심은 일제강점기의 진실이 트렌디한 드라마에 충분히 녹아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간 일제강점기는 시대극이나 사극에서 무겁게 다뤄지다 2018년 ‘미스터 션샤인’(tvN)을 거쳐 ‘경성크리처’에 이른 것이다. 2012년 ‘각시탈’(KBS2)은 배우 섭외가 되지 않아 고충을 겪었지만 이제는 이병헌과 김태리(‘미스터 션샤인’), 박서준과 한소희(‘경성크리처’) 등 스타급들이 일제강점기를 다룬 드라마에 거리낌 없이 출연한다. 강 작가는 “한국 콘텐츠의 위상이 높아진 것이 영향을 준 것 같다”며 “‘경성크리처’ 홍보물이 미국의 타임스스퀘어에 걸리는 걸 보고 이런 시대가 오는구나 감격했다”고 했다. 그는 데뷔 이후 줄곧 731부대 생체실험에 관심이 있었지만 투자받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일본에서 한류가 시작되면서 한때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일제강점기가 사라졌어요. 일본하고 분위기가 이렇게 좋은데 이런 이야기는 좀 그렇다는 반응이 많았죠.”
그랬던 드라마가 이제는 그 시대 일본의 만행을 고발하고 책임을 물으며 우리에게 잊지 말자고 다짐한다. 극 중 장태상은 말한다. “그래놓고 저들은 세상 앞에 시치미를 떼겠지. 그런 짓은 하지 않았다고, 그런 일은 존재하지도 않았다고. 이게 그들의 방식이다. 덮어버리고 없던 일로 만드는 것.” 강 작가는 “극 중 윤채옥이 ‘기억해달라’고 하는 것은 그 시대가 우리에게 하는 이야기일 수 있다”며 “우리에게 이런 과거가 있었고 이걸 이겨내고 여기까지 왔다는 자부심을 느끼기를 바란다”고 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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