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공간' 품은 12色 12가구의 공생···아파트숲 대안으로[건축과 도시]

한민구 기자 2024. 1. 10.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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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강화바람언덕 협동조합주택'
담장은 없애되 취향 살린 정원 공유하고
비스듬한 박공 지붕으로 바다 조망 확보
2개의 평면 변형, 각기 다른 열두채 구성
주차장 없앤 마을마당은 주민교류의 장
초입엔 지역민 이용가능한 도서관 유치도
인천광역시 강화군 양도면 능내리 209에 위치한 ‘강화바람언덕 협동조합주택’ 전경. 북동쪽에 진강산을 두고 소나무숲이 북쪽을 감싸는 편안한 형상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건축사사무소인터커드
[서울경제]

2018년 가을, 강화도에 거주하고 있는 대안학교 학부모 몇몇이 함께 모여 살아갈 마을을 꿈꾸기 시작했다. 이들은 하우징쿱협동조합주택과 함께 부지를 물색했고 이듬해 강화군 능내리에 알맞은 터를 발견했다. 이들이 터를 잡기로 한 1700여 평의 땅은 택지를 조성하다 사업이 멈춰 오랜 시간 방치된 부지였다. 계단형으로 땅이 깎이고 최대 15m의 높낮이 차이가 있었지만 남측으로 바다가 보이고 북측으로 수림을 등진 한적한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인천광역시 강화군 양도면 능내리 209에 12가구로 구성된 ‘강화바람언덕 협동조합주택’은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함께 살기 위해 만들어진 주택 단지다. 시행사인 조합원들의 목표는 배타적인 전원마을 조성이 아닌 기존 지역과 관계를 맺으며 이웃 주민과 일정 부분 삶을 공유하는 마을을 만드는 것이었다고 한다.

설계를 맡은 윤승현 중앙대 건축학 교수와 건축사사무소인터커드는 이 같은 목표를 바탕으로 조합원들과 다섯 가지 마을 건립 방향 원칙을 합의했다. 구체적으로는 △부지 현황과 환경을 최대한 유지하기 △자동차에 의해 잠식당하지 않는 안전한 사람들의 공간 만들기 △함께 사는 동네로서 남측을 향한 전경 공유하기 △각각의 집 간 경계 허물기와 함께 외부 공간 가꾸기 △공동체 활동을 위한 공유 공간 확보하기다.

인천광역시 강화군 양도면 능내리 209에 위치한 ‘강화바람언덕 협동조합주택’ 전경. 풍경과 높이차를 위한 벽 외에 담장을 없애고 아스팔트 포장을 최소화해 마을 안이 온전한 사람의 공간이 되도록 했다. 사진 제공=건축사사무소인터커드

첫 번째 원칙을 정한 건 방치됐던 황량한 토사단의 원형을 복원하지 않더라도 잔디를 심어 마을을 주변 숲과 조화시킬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이에 주민들은 계단형 부지를 곧 마을의 틀로 삼기로 했다. 두 번째 원칙인 ‘자동차에 의해 잠식당하지 않는 안전한 사람들의 공간’은 설계로 풀어냈다. 주차장 규제에서 자유로운 단지형 다세대주택을 두 채씩 묶어 건립하는 대신 마을 진입부에 공용 주차장을 확보하기로 했다. 이에 더해 마을 안쪽에는 비상시 진입용 도로 외에 아스팔트 포장 영역을 최소화했다.

부지가 계단형으로 만들어진 만큼 ‘함께 사는 동네로서 남측을 향한 전경 공유하기’를 위해 윗집의 시야를 가리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이에 설계자와 주민들은 각각의 주택을 단층으로 만들기로 합의했다. 더불어 각 집의 지붕을 비스듬한 형태의 박공 형식으로 설계해 높이차에도 불구하고 윗집이 창문을 통해 바다를 바라볼 수 있도록 했다.

네 번째 원칙이었던 ‘각각의 집 간 경계 허물기와 외부 공간 함께 가꾸기’를 위해 높이차와 안전을 위한 벽을 제외하고 모든 담장을 없앴다. 그렇게 만들어진 마당은 각자의 영역은 있지만 집과 집 사이가 명확한 선으로 구분되지 않게 됐다. 눈에 보이지 않는 소위 ‘느슨한 울타리’를 통해 집주인들은 자신들만의 성향에 맞춰 정원을 가꾸고 이를 주민 모두와 공유할 수 있게 됐다.

‘강화바람언덕 협동조합주택’은 두 가지 평면을 바탕으로 변형된 각기 다른 열두 채의 모습으로 지어졌다. 사진 제공=건축사사무소인터커드
‘강화바람언덕 협동조합주택’은 두 가지 평면을 바탕으로 변형된 각기 다른 열두 채의 모습으로 지어졌다. 사진 제공=건축사사무소인터커드

마지막 원칙이었던 ‘공동체 활동을 위한 공유 공간 확보’는 단지 중심부에 모두가 활용할 수 있는 마을 마당을 조성해 해결했다. 주민들은 이곳을 작은 공연을 개최하거나 아이들과 함께하는 목동 체험 프로그램을 여는 교류의 장으로 삼고 있다. 마을 초입에는 커뮤니티동을 두고 지역민들도 이용 가능한 공공 도서관을 유치했다. 마을이 주민들만의 ‘닫힌 공간’이 아닌 지역의 아이들과 함께하는 ‘열린 공간’이 되도록 한 설계였다. 당초 주민들과 설계자는 청년 주택도 마을에 유치하려 했으나 예산 부족으로 이는 실현되지 못했다.

공간 계획이 완성된 후에는 조합원들이 살고 싶은 각기 다른 열두 채의 집을 만들 차례였다. 아파트 거주 환경에 익숙해진 조합원들에게 외부 공간으로 확장되고 이웃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방식으로 고안된 두 가지 유형을 우선 제안하고 각각의 생활 방식과 기준에 맞추어 덧대어주는 참여형 설계 방식으로 진행됐다. 윤 교수는 “각자의 취향과 꿈만 반영할 수도 없고 아파트와 같이 한두 타입의 일률적인 공간이 주민들의 성에 찰 리 만무했다”며 “산을 등지고 바다가 보이는 한적한 환경 특성을 살려 두 가지 평면을 우선 선택하도록 한 뒤 미팅을 통해 하나하나 변형해갔다”고 설명했다.

윗집의 시야가 가려지지 않도록 박공 형식 지붕을 활용해 주민 모두가 남서쪽의 경작지와 바다 전경을 공유할 수 있도록 했다. 사진 제공=건축사사무소인터커드

조합원들과 삶의 방식에 맞춰 변형해나간 주택은 결국 열두 채의 각기 다른 모양을 갖게 됐다. 두 타입의 평면 유형에서 시작된 각각의 집은 두 채씩 붙어 있는 모습과 윗집 시야를 배려하기 위해 취한 박공 형식 지붕으로 열두 채 모두 닮았지만 다른 형상의 집이 될 수 있었다. 마을 전체 디자인에도 자연스레 통일감이 부여됐다.

이렇게 만들어진 마을은 현재 주민들이 세운 자치규약으로 운영되고 있다. 규약은 강화바람언덕의 목적을 “모두의 삶이 행복한 마을, 이웃과 공생하는 열려 있는 마을, 지역 활성화의 중심이 되는 마을, 느리지만 지속 가능한 삶을 추구하는 마을”로 정하고 있다. 이웃 그리고 지역사회와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며 ‘함께 살아간다’는 의미에 충실하자는 취지다.

아파트는 태생적으로 세대가 단절돼 ‘함께 산다’는 의미를 찾기 힘들다. 전원주택 단지라고 하더라도 높은 옹벽·담장과 아스팔트 도로로 집집마다 분리되는 식으로 설계됐다면 그 형국이 아파트와 다르다고 하기 어렵다. 함께 살 사람들이 모여 어디에, 어떻게 집을 지을지 숙의하며 설계된 마을은 ‘함께 산다’는 의미에 충실했다는 평가와 함께 ‘2023 한국건축문화대상’에서 주택 부문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심사위원은 “산다는 것은 내가 살고, 가족이 살림살이를 이루며,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며 과거에 존재했고, 현재의 우리도 알고 있는 삶의 기본 원리”라며 “강화바람언덕 협동조합주택이 이룬 함께 사는 논리는 아파트 위주의 주거 공급 체계에 대항하기에는 연약해 보이지만 인상적인 대안”이라고 평가했다.

‘강화바람언덕 협동조합주택’ 초입에 위치한 커뮤니티 센터에는 지역 도서관을 유치해 마을이 동네 주민들과 교류하도록 했다. 사진 제공=건축사사무소인터커드
한민구 기자 1min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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