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윤희칼럼] 영끌 권하는 달콤한 정책대출
특례보금자리론 이어
저금리 신생아대출 시행
집값 부양용 영끌 부채질 안돼
최근 부동산 온라인 커뮤니티에 '영끌족 진지해요'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다들 지금 아니면 안 된다던 시기, 2020년 서울 도심 소형 아파트 사서 전세 2년 뒀다가 현재 실거주 중인데 한 달 이자 115만원에 허덕이네요. 프리랜서이다 보니 수입이 일정치 않은데 씀씀이를 줄여도 힘들어요."
월수입 200만~300만원에 혼자 산다는 그는 "전세를 주고 오피스텔 월세로 옮길까, 매도할까 고민"이라고 적었다. 그러면서 "던져도 받아줄 사람이 없을 것 같다"는 우울한 심경도 밝혔다. 그러자 동병상련의 댓글들이 이어졌다. "내 집에 내가 못 살고 쫓겨나네요" "알바·투잡 등으로 수입을 늘려라" "월세 싼 곳으로 옮겨라" "상승장 올 때까지 버텨라" "하락장 예상되니 팔 수 있으면 팔아라" 등 공감과 조언이 담긴 글이었다.
이 사연에는 2019년 하반기부터 광풍처럼 몰아쳤던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다)'이라는 시대적 현상과 그 그림자가 모두 담겨 있다. 당시 영끌을 부추긴 것은 '지금 안 사면 영영 못 산다'는 '패닉 바잉(panic buying)' 열풍. 조급함에 집을 산 20·30대들이 2022년부터 계속된 고금리에 쩔쩔매고 있는 것이다. 이자 부담이 심각하기도 하지만 이들을 짓누르는 것은 속절없이 떨어지는 집값이다. '영끌족의 성지'라고 불리는 노도강(서울 노원·도봉·강북구)은 최고가의 반 토막에 거래된 집들이 속출하고 있다. 이젠 '패닉 셀(panic sell)'이란 말이 나온다. 이자 부담을 못 견디고 경매로 쏟아지는 영끌족 매물도 급증하고 있다.
영끌은 부동산시장이 고점이었던 2021년 막을 내리는가 싶었다. 하지만 끝난 게 아니었다. 영끌 광풍은 지난해 다시 휘몰아쳤다. 일명 '2차 영끌'. 이들을 매매시장에 뛰어들게 한 건 정부의 달콤한 정책대출 상품이었다. 지난해 1월 주택금융공사가 출시한 특례보금자리론은 9억원 이하 주택을 대상으로 연 4%대 금리로 최대 5억원까지 대출해준다는 조건이었다. 소득 제한도 없었다. 특례보금자리론 유효 신청액은 지난해 말까지 43조원에 달했다. 지난해 1~11월 전국에서 아파트를 가장 많이 매입한 연령이 30대로 나타난 것도 특례보금자리론 영향이 컸다는 분석이다. 고꾸라지던 집값 하락세도 멈추게 했다. 정부는 서민과 실수요자들의 이자 부담을 덜어주는 정책이라고 취지를 밝혔지만 '빚으로 집 사라'며 은근슬쩍 매수 심리에 불을 지핀 셈이다. 기준금리를 올리며 긴축에 나선 한국은행과도 엇박자를 낸 것이다. 가계부채가 비상이라면서도 집값 경착륙을 막는 데 정부가 더 무게를 둔 것 아니냐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그런데 정부가 또 영끌을 부추길 수 있는 정책을 하겠다고 한다. 이번에 꺼내든 카드는 신생아특례대출. 올해 1월부터 출산만 하면 연 1.6~3.3%대로 최대 5억원의 주택자금을 빌려주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무주택 청년이 분양받을 경우 최대 80%까지 빌려주는 '청년주택드림 대출'도 선보인다. 두 개를 합하면 규모가 50조원. 낮은 금리는 2030들의 영끌 욕구를 자극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신생아를 둔 가정에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주변에서 "이참에 애를 낳아야겠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러나 저출산 해소 방안이라기보다는 꺾이는 부동산시장을 떠받치려는 정책이라는 해석이 무성하다.
청년들이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신생아대출의 파격 금리는 5년 후에는 변동금리로 변경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지금은 집값 하락기이고 금리는 생각만큼 빨리 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집값 거품이 꺼지면 '하우스 푸어'로 전락할 우려도 있다. 달콤하지만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빚을 내는 데 더 신중해야 하는 이유다. 정부도 청년 정책대출이 자칫 영끌을 부채질할 위험성을 살펴야 한다.
[심윤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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