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이코노미스트] 무분별 의원입법 방지를 총선공약으로

2024. 1. 10.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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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을 쓰다 보면 이미 여러 번 지적된 내용을 또 써도 되는지 고민이 될 때가 있는데 이번 주제가 그렇다.

그래도 새해가 밝았고 국회의원 총선이 마침 문턱에 와 있으니 늘 반복되는 지적이라도 짚을 가치가 있을 것이다.

이렇다 보니 정부가 번거로운 규제 심사를 피하려고 의도적으로 의원입법을 활용하는 이른바 청부입법도 성행하게 되었다.

무분별한 의원입법을 막아야 한다는 논의는 역대 국회에서 늘 논의되었고, 이번 국회에서도 입법영향평가제도 도입 등 개선안이 제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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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입법 발의 20년새 14배
그만큼 검토·심사 부실해져
의원 성과 법안숫자로 평가
정부 입법 까다로워진 탓도
총선 기회삼아 개선 나서야

칼럼을 쓰다 보면 이미 여러 번 지적된 내용을 또 써도 되는지 고민이 될 때가 있는데 이번 주제가 그렇다. 그래도 새해가 밝았고 국회의원 총선이 마침 문턱에 와 있으니 늘 반복되는 지적이라도 짚을 가치가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의원입법 상황은 비현실적인 단계로 접어든 지 오래되었다. 2000년에 시작한 16대 국회의 의원입법 발의 건수는 1651건이었으나 21대 국회는 아직 5개월을 남기고도 발의 건수가 1월 7일 현재 2만3315건에 달한다. 무려 14.1배로 늘어난 셈이다. 같은 기간 정부의 법안 발의 건수는 595건에서 821건으로 1.4배 늘었을 뿐이다. 16대에 비해 21대 국회의원의 생산성이 14배 높아졌다면 참 고무적인 일이겠으나 이에 동의할 국민이 있을지 의문이다.

이처럼 많은 법안이 발의되니 제대로 된 검토가 가능할 리 없다. 월평균 542건 올라오는 법안 중에서 개별 의원이 시간을 들여 읽고 내용을 따져보는 경우가 몇 건이나 될지 궁금하다. 법안소위의 건당 평균 심사 시간도 10분 남짓이다. 국회미래연구원에 따르면 20대 국회 기준으로 우리 국회의 법안 발의 건수는 프랑스의 20배, 독일과 일본의 60배, 영국의 90배가 넘는다. 우리 국회의원이 이들 나라 의원보다 수십 배 더 일하고 있는 게 아니라면 법안 검토와 심사가 부실해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함량 미달인 법안들이 국회를 통과하는 일은 흔하다. 음주운전에 대한 가중처벌 형량을 높이는 '윤창호법'은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판결을 받았다. 청소년이 심야 시간대에 인터넷 게임을 못하도록 한 강제셧다운제는 실효성 부재, 인권침해, 관련 산업 위축 등 비판에 시달리다가 10년 만에 폐지되었다. 산업을 옥죄는 갈라파고스 규제라는 논란이 끊이지 않는 중대재해처벌법, 화평·화관법, 타다금지법 등도 모두 의원입법의 과정을 거쳤다.

이런 법들의 특징은 국민적 관심이 큰 사건이 터지면 쏠리는 여론을 동력 삼아서 부작용 논란을 무력화하는 과정을 거쳤다는 것이다. 이미 문제점을 알면서도 휩쓸려 찬성표를 던졌다가 나중에 반성하는 국회의원을 여럿 보았다. 한번 잘못 법제화된 내용을 되돌리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지를 생각하면 반성만으로 충분할까 싶다.

의원입법이 비현실적으로 많아진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의원들의 성과를 법안 발의 숫자로 측정하는 문화다. 야근을 많이 하는 직장인, 무의미한 논문·특허를 양산하는 교수들처럼 국회의원들도 숫자의 노예다. 그러다 보니 제대로 읽어본 적도 없는 입법안에 이름만 빌려주는 경우도 많다. 교수가 논문을 그렇게 쓰면 징계 대상이다.

다른 하나는 역설적이지만 정부입법의 절차가 엄밀해졌기 때문이다. 정부입법은 국회로 가기 전에 규제개혁위원회의 깐깐한 심사를 비롯해 최소 여섯 단계의 검토를 거친다. 반면 의원입법안은 10명 이상이 공동 발의하고 법제실의 검토만 거치면 같은 위치에 설 수 있다. 의원들은 공청회 등으로 충분한 의견 수렴을 거친다고 항변하지만 그런 절차를 생략하고 통과된 법도 적지 않다. 이렇다 보니 정부가 번거로운 규제 심사를 피하려고 의도적으로 의원입법을 활용하는 이른바 청부입법도 성행하게 되었다.

무분별한 의원입법을 막아야 한다는 논의는 역대 국회에서 늘 논의되었고, 이번 국회에서도 입법영향평가제도 도입 등 개선안이 제시되었다. 그래도 바뀌지 않는 이유는 국회도 정부도 스스로 발을 묶을 유인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이 적기다. 21대 국회에서 통과되면 좋겠지만 어렵다면 당선 후 기득권이 생기기 전에 제도 개선을 공약하도록 시민들이 압력에 나서야 한다.

[권남훈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경제사회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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